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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바다 젖줄 만석부두
쪼그라든 바다 젖줄
만석부두
숨어 있는 포구를 이제야 ‘발견’했다. 만석부두에는 두 개의 포구가 있다. 쌍용기초소재 공장의 긴 담장을 끝까지 따라가면, 출항신고를 관리하는 파출소가 있는 곳, 그곳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두가 있다. 다른 하나는 쌍용 공장 정문과 만석낚시점 사이로 들어가면 작은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만 포구가 있다. 바로 그 포구를 처음 본 것이다. 남의 공장에 들어가는 길인 줄 지레 짐작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전혀 몰랐다. 파출소 쪽 포구는 콘크리트로 깔끔하게 성형을 했다면 조선소 쪽 포구는 화장기 하나 없는 쌩얼 그 자체다. 그 포구에는 오랜 시간 바다를 젖줄 삼아 온 굴막이 있다. 바다 바람, 세월 바람에 스러진 굴막은 공장 담벼락에 기댄 채 마치 어두운 굴(窟) 속에 있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다.
글·사진 유동현 본지편집장
물때가 집합시간이었다. 살을 에는 겨울 새벽바람을 맞서며 하나둘 포구로 모였다. “오늘도 지각생은 또 늦네”. 어린 자식들 때문에 배 떠날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지각생 아줌마가 멀리 모습을 보이자 그제서야 수복호는 힘찬 발동을 건다.
배는 희뿌연 새벽 바다를 가른다. 판유리공장, 북성부두, 대성목재, 월미도가 옆으로 비켜간다. 금자엄마, 섭섭이 할머니, 넙순이 영배 엄마, 화수동 꼬부랑 할머니, 경상도 할멈, 뻐꾸기 할머니, 수열네…. 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 눈만 빼꼼이 내놓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다. 이들은 20년 넘게 한배를 탄 식구들이다. 너도나도 뱃질을 잘하는 수복호를 타려고 안달이다. 많을 때는 100명 가까이 끼어 탔다. 입·출항신고가 허술하던 시절이었다.
자리 잡은 아낙들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챙겨 온 도시락을 꺼낸다. 집을 나설 때는 온기가 있었는데 찬바람에 보리 주먹밥은 이미 꽁꽁 얼었다. 배 한 귀퉁이에 핀 연탄불에 데운 물을 밥에 붓고 김치를 찢어 먹는다. 그나마 오늘은 파도가 심하지 않아 불을 피울 수 있어 다행이다.
3시간 넘게 물살 헤쳐 간 배는 이작도 옆 작은 무인도에 머리를 들이댄다. 바다에 떠 있는 이 섬들은 굴까는 아낙네들에게서 이름을 받았다. 할아버지섬, 진달래섬, 참섬, 뽕아리섬, 개발섬, 돌때리는 섬….
김보섭
화도진 도서관 제공
상륙 후 흩어져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쪼새로 쉴 새 없이 바위를 쪼아댄다. 살집 좋은 굴이 딱딱한 껍질 속 마다 가득하다. 쉴 틈이 없다. 목마르고 허기지면 그냥 굴을 삼킨다. 섬 가득 바위 쪼깨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손 빠른 사람은 하루에 80㎏짜리 2.3포대씩은 거뜬하다.
오늘은 ‘묵세기’가 아니다. 당일치기다. 묵세기는 배에서 며칠씩 지내면서 굴을 따고 다듬는 작업이다. 짧게는 1박2일, 길게는 5박6일을 지낸다. 20여 명이 배 밑 어창에서 먹고 자고 한다. 발을 뻗을 공간도 없어 기대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비를 걸치지만 젖은 옷을 그냥 입고 잔다. 준비해 간 식량이 떨어지면 조갯살, 홍합을 캐서 국물을 만들어 먹는다.
굴 포대를 잔뜩 싣고 포구로 향하는 배는 그 무게 때문에 위험하다. 가끔 파도가 험하게 치면 다들 쪼그리고 앉아 교대로 물을 퍼내야 했다. 그나마 엔진이 꺼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한번은 바다 한가운데서 기계가 고장 나 가마니로 돛을 만들어 섬으로 피신한 적도 있습니다.” 수복호 선장의 둘째 아들로 이제는 수복2호 선장이 된 최영식(64)씨의 빛바랜 회고담이다.
멀리 판유리 공장의 둥근 급수탑이 보인다. 포구에 거의 다 온 것이다.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 담장에 늘어선 굴막까지의 운반이 만만치 않다. 배에서 굴 포대를 끌어내리고 얼기설기 엮은 나무다리를 건너는 일은 위험하고 힘에 부친다. 잘못하면 포대와 함께 바닷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마지막 힘을 다해서 굴막 안으로 끌어 놓았지만 일이 끝난 게 아니다. 굴 까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굴 장사에게 바로 팔아 버리기도 하지만 그러면 이문이 박하다. 어떤 이는 손수레에 싣고 집으로 가지고 가서 식구들이 다 모여 굴을 깐다. 이도저도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캐온 굴을 굴막에서 바로 깐다. 굴을 까자마자 바로 하인천역 근처로 달려가 노점을 펼친다. 물이 좋아서 내놓자마자 팔려간다.
굴막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30여 년 전에 한 두사람이 무거운 굴 포대를 이동하느니 포구에 움막을 짓고 작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짓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거적대기로 만들었고 후에 판자와 비닐을 사용해 ‘하꼬방’ 같은 임시거처 겸 작업장을 만든 것이다. 한창 많을 때는 굴 캐는 사람이 300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굴 파시였다. 그때 포구에는 40여 개의 굴막이 늘어섰다. 한 집에 두어 명씩 들어가 밤새 작업을 했다.
“명절이나 김장철에는 주문이 많아 집에도 못 가. 백중사리 때는 굴막 앞까지 물이 찰랑 거려 오도가도 못해. 그냥 굴막에서 촛불을 켜고 굴을 까며 밤을 지새곤 했지.”
45년 전 굴막에서 일을 한 넙죽이 영배 엄마(74)의 이야기이다. 그는 심한 관절염으로 고생해 요즘 굴 따러 가는 대신 용돈벌이를 할 겸 조경 작업에 가끔 나간다. 갯벌에서 하루 일하면 3, 4일 벌이를 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겨울에는 진통제를 맞고서라도 다시 굴 따러 갈 맘이 있다.
바닷가에서는 닭 대신 갈매기가 새벽을 깨운다. 갈매기 우는 소리에 눈을 비비고 굴막 문을 열고 다시 배 타러 나간다. 굴막을 잠시 비우더라도 문단속을 단단히 해야 했다. 그곳에는 이불, 곤로, 옷, 호롱불, 라디오 등 귀한 세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굴막에는 1호, 2호라고 글씨를 적어 놓거나 아예 문 앞에 문패를 달기도 했다.
만석포구의 굴막은 이제 폐허가 되었다.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집주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았고 아직 쪼새를 놓지 못했을지라도 이곳에서 더 이상 굴 까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만석동 고가 밑 알루미늄새시 굴막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이제는 섬으로 나가 직접 굴을 따기 보다는 받아서 까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만석포구 굴막이 완전히 가동이 중지 된 것은 아니다. 서너 채는 여전히 ‘영업 중’이다. 날이 차지면 몇 집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온다. 그런데 이 마저도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화수부두-만석부두-북성포구를 잇는 포구둘레길이 입안되고 있다. 둘레길은 이 굴막 앞을 지나가게 된다. 누추하고 불편한 이 굴막은 철거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만약에 이 굴막이 없어지면 인천은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의 한 편, 작게는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 현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은 전혀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2008년 ‘수복호 사람들’이란 사진집을 낸 사진가 김보섭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만석부두는 한때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밑줄 쫙 그어질 만큼 큰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때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선들이 모여들었고 구한말에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화도진으로 가려고 미국 슈펠트제독이 그곳에 내렸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수공장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제작한 잠수정이 진수되기도 했다. 광복을 맞아 진수되지 못한 두어 척의 잠수정이 60년대 초반까지 이곳에 녹슨 고철이 돼 나뒹굴었다. 6·25 전쟁 때는 황해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이 부두를 통해 인천으로 들어 왔고 휴전 후에는 원조물자들이 이곳에 하역돼 굶주린 우리나라 사람들의 뱃속을 달래주기도 했다.
만석부두는 이제 할머니의 쪼그라든 젖가슴처럼 말라비틀어진 채 조용히 한편으로 물러서 있지만 여전히 굴배 15척, 낚시배 30척 등 60여 척의 배를 품어주고 있다.
사진가 김보섭은 지난 2008년 사진집 <수복호 사람들>을 출간했다. 그는 인천만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작업하며, 인천 중에서도 특히 인천 사람들의 생활의 냄새 짙은 삶과 개발로 인해 사라져 가는 인천 모습을 집중적으로 담는다. 수복호는 인천 근해의 작은 섬으로 굴을 따는 아주머니들을 싣고 다니는 배다. 작가는 ‘굴 따는 배’ 수복호를 함께 타고 다니면서 그 배의 선주와 굴 따는 아주머니들을 흑백사진에 담았다. 총 88장의 ‘끈끈한 바닷바람과 소금기가 진하게 밴’ 흑백사진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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