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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레인지가 뭐예요
가스레인지가 뭐예요
개량된 1960년대 인천 주택의 부엌 모습. 마치 북한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1973년).
사진 1은 지금부터 꼭 40년 전인 1973년, 인천 어느 집 부엌의 모습이다. 마치 북한에서 살포한 체제 홍보 삐라에 게재된 것으로 혼동할 만한 사진이다. 주거 개량 정책으로 지어진 시범주택인 듯한데 살림살이가 빈약해 보인다. 타일로 내부를 마감한 부엌에는 무쇠 솥과 양은 솥 그리고 곤로와 나무 찬장이 전부다. 천장에 달린 소켓에는 백열전구가 비어 있다. 개량은 했지만 여전히 아궁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부엌이 낮게 설치돼 있어 장마 때는 종종 물이 스며들곤 했을 것이다.
인민복 같은 옷을 입고 머리에 머플러를 둘러쓰고 밥을 짓는 저 여인은 가스레인지, 오븐, 냉장고, 김치냉장고, 전기밥솥, 정수기, 믹서 게다가 식기세척기까지 있는 오늘날의 주방을 상상이나 했을까.

태극기가 게양된 도화동 국군묘지(1968년)
인천에는 1968년까지 국군묘지가 있었다. 현재의 남구 세화초교 운동장 언저리와 선인체육관 아래 부분에 6·25 전쟁 때 전사한 국군 379위(혹은 358위)의 주검이 안장되었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면 이곳에서 추념행사가 진행되었다. 다음은 1964년 6월 6일 동아일보의 기사다.
‘제9회 현충일을 맞아 6일 상오 10시 이곳 도화동 국군묘지에서 호국영령 추념식이 많은 유족과 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었다. 이곳에 묻힌 358위의 영령 무덤 앞에 여학생들이 머리 숙여 헌화를 할 때 1천546명의 유족과 시민들은 한결같이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을 맞아 이곳 운수업자 및 극장 측은 유족들에게 무임승차와 무료관람 봉사로 위로했고 향군경기도지부를 비롯한 시중 각 기업체에서는 광목 48필, 식방 500개, 타올 120개 등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도화동 국군묘지는 1968년 이곳에 묻힌 시신들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면서 폐쇄되었다. 사진 2는 이장되기 전의 도화동 국군묘지의 모습이고 사진 3은 1968년 8월 17일 수습된 유골들이 헌병차의 호위 속에 동작동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도화동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던 전몰장병의 유해를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모습(1968년)
여름 송충이의 공포가 스멀스멀 몰려온다. 나뭇잎이 무성한 이맘때쯤이면 송충이 ‘낙하’ 공포에 모두들 기겁을 한다.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송충이가 머리 위로 수없이 떨어지곤 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길바닥에는 ‘로드킬’ 당한 송충이들의 역겨운 모습 때문에 보행이 힘들 정도였다. 학교마다 인근 산을 하나씩 배정받고 송충이 잡이에 나섰다. 끈 달린 깡통과 나무젓가락은 필수 도구다. 집에서 만들기도 했지만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기도 했다. 한두 시간만 지나도 깡통에는 송충이가 수북했다. 송충이는 깡통 채 구덩이에 던져지고 학생들은 불 속에서 지글거리는 송충이의 최후를 보고나서야 하산했다.
사진 4는 1967년 6월, 자유공원의 숲을 방제하는 모습이다. 화재 진압 대신 벌레를 죽이기 위해 소방차가 동원돼 나무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자유공원 숲을 방제하는 소방차(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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