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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공간’ 동네서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2013-09-03 2013년 9월호

 

‘추억의 공간’ 동네서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동네의 이정표였고, 사랑방이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만남과 약속의 장소였다. 잠시 서서 책을 구경하며 딱히 살 책이 없이 가도 시간 때우기 좋은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낭만의 장소였고 배고픈 영혼을 달래 주었다. 그런 서점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인천이 ‘2015년 책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우리 동네 서점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인천의 문화와 추억을 품은 서점을 찾아가 본다.


글 이용남 본지편집위원  사진 양진수 자유사진가

 

대한서림  예전 모습

 

대한서림
세월따라 대한서림도 변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대한서림이 망했다’ 등. 최근 대한서림의 변화에 많은 시민들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들이 서점을 지켜주지 못해 저리 변한 것 같아서였다. 친구와의 약속장소였고, 책을 사보던 대한서림에 빵집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적잖은 충격이었다. 작년 8월 대한서림은 1,2층을 빵집으로 자리를 바꿨다. 지금은 대한서림의 간판보다 빵집의 상호가 더 눈에 뛴다.
동인천역 건너편에 있는 대한서림은 1953년 오픈했다. 온라인 서점의 활성화와 불황이 겹치면서 점점 책 읽는 인구가 줄고 있지만 대한서림의 건재는 추억을 음미할 공간이 존재한다는 데 안도감을 준다.
대한서림은 60여 년간 인천 서점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 김순배(70) 회장이 대한서림을 운영한 것은 1978년부터다. 한창 중동바람이 불 때 잘나가는 엔지니어로 각광을 받았던 김 회장이 장인이 운영했던 서점을 이어받으면서다. 그는 공학도답게 업계 최초로 전산화를 시작했고, 서점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착용하게 했다. 당시 서점 연구를 하면서 앞으로 전문화, 대형화를 예견했고, 대한서림을 국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서점으로 키워냈다.

 


지금 대한서림이 있는 건물은 70년대 젊은이들의 집합장소였다. 별다방, 별제과, 별음악감상실 등 당시 젊은이들이 즐겼던 문화가 이 건물에 다 모여 있었다. 김 회장은 1989년 이 건물을 사들이고 대한서림을 이전했다.
대한서림은 90년대 말까지 전국에서 성장률이 가장 빠른 서점이었다. 대한서림은 인터넷시대를 예견 10년간 온라인서점 ‘싼데로 닷 컴’을 운영하기도 했다. 온라인 사업을 확장하려 했으나 온라인 서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영업을 접었다. 
대한서림은 2005년 이후 인터넷과 온라인 서점의 성장, 동인천의 쇠락으로 명성이 예전같지는 않다.
시대가 변한만큼 서점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서점의 변신은 김 회장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책만 보는 공간이 아닌 사람도 만나고 차도 마시면서 책도 사는 공간으로 변해야 서점에 미래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회장은 책읽는 시민들이 늘어나기 위해선 가정마다 ‘우리 집 주말은 서점가는 날’을 정해 부모와 아이들이 손잡고 서점을 찾는 습관을 갖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이 서점을 찾고, 책을 읽으면 나라의 미래가 있고, 아날로그 서점도 희망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회장은 대한서림이 운영하는 빵집에 빵을 먹으로 왔다가 아이와 엄마가 책을 사고 보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다.   
문의 : 761-7337

 

 

시민문고
주안 옛 시민회관 건너편에 자리한 시민문고는 79년 문을 열었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녔던 안수복(62) 사장은 책을 좋아해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서점을 냈다. 장사꾼이 아닌 문화사업자가 되고 싶었다.
10평의 작은 서점은 처음 2~3년간은 너무 어려워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안 사장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서 서점을 냈는데 배고프다고 일을 접으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심기일전했고, 결국 서점을 일으켜 세웠다.
몇 년 고전하던 서점은 84년부터 93년까지는 매출이 좋았고,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운영이 괜찮았다. 한참 잘될 때는 직원이 7명이나 됐다. 예전에는 소설, 참고서 등 모든 책을 포장했기에 7명의 직원과 안수복 사장, 부인까지 동원돼 책을 포장할 정도로 항상 손이 모자랐다. 다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시민문고는 33년간 한곳에서 서점을 운영하다 보니 단골손님이 많다. 안 사장은 단골 손님들의 책 취향을 이미 꿰고 있다. 손님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알려 주고, 책은 보고 싶은데 뭘 볼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들한테도 알맞은 책을 추천하는 북 마스터 역할까지 한다.
중·고등학교때 책을 사갔던 학생들이 지금은 부모가 되어 자식하고 책을 사러 다시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손님들을 볼 때면 서점을 연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안 사장은 인천시가 세계 책의 수도로 지정됐는데 서점이 없는 책의 수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10년 전만해도 주안, 동인천, 석바위, 신기시장 주변으로 서점이 20군데가 있었지만 시민문고와 대한서림만 살아남았다. 지금은 서점이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프랑스 같은 문화국가도 오래된 서점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인천도 서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을 밝혔다.  
문의 : 864-5577

 

 

부평문고
부평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은 부평문고다. 91년 문을 열어 올해로 22년째를 맞고 있다. 동네에 서점은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문서적이나 수험서적을 사려면 동인천이나 서울로 가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그야말로 문화 취약지대였다. 부평 토박이인 부평문고 장덕훈(64) 사장은 부평을 미군 기지촌, 외지사람들이 그저 거쳐가는 곳으로 만 여기는 게 부끄러웠다. 부평에도 문화의 자긍심, 뿌리를 세우고 싶었다. 부평문고가 생기고 나서 어떤 시민들은 부평에 대형문고가 생겨서 좋다며 박카스와 초콜릿을 사올 정도로 환영했다.
부평문고는 손님들이 자신의 원하는 책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서가가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또 시민들이 마음 편히 책을 볼 수 있도록 쉼터를 마련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부평문고도 손님의 70% 이상은 단골이다. 20년 전 다녔던 책 손님들이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부평문고가 한창 잘 될 때는 1천500개의 출판사와 거래했고, 직원도 24명이나 됐다. 장 사장은 지역서점이 살기 위해선 완전도서정가제를 실시해 오프라인 서점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되도록 전국체인의 대형서점보다 동네서점을 많이 이용하는 것이, 지역서점을 살리는 길이라고 덧붙인다.
또 도서관들이 책을 구입할 때 지역서점을 많이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동별, 지역별로 도서관을 많이 짓고, 시에서 도서예산을 많이 책정해 서점과 책이 함께해야 진정한 책의 수도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의 : 529-0077

 


만화전문 새인천문고
슬램덩크, 원피스, 명탐정코난, 드레곤볼 등 유명 만화시리즈부터 ‘은밀하게 위대하게’, ‘그대를 사랑합니다’, ‘순정만화’, ‘미생’ 등의 인기 웹툰이 가득차 있다. 구월동의 새인천문고는 인천의 유일한 만화전문서점이다. 이곳에선 유명만화 뿐만 아니라 요즘 뜨고 있는 웹툰, 판타지·무협 소설, 여행서적을 총망라한다. 새인천문고는 인천의 만화서적 총판으로 도매와 소매를 겸하고 있지만 손님 대부분은 만화 마니아들이다. 인천의 각 서점에 깔리는 만화들은 이곳을 통해 유통된다. 만화대여점, 만화방, 만화카페로 들어가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황경아 사장은 “만화전문 서적은 일반서점과 달리 만화 마니아층이 두텁고 수요가 일정해서 경기를 덜 탄다”고 말한다.
새인천문고는 98년에 문을 열었고, 황 사장이 서점을 인수한 것은 4~5년 전이다. 석바위에서 구월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매장 규모도 확대하고 판매서적의 종류도 늘렸다. 서점은 1층 초등학습지와 문학서적, 베스트셀러, 웹툰, 2층은 만화코너, 로맨스·판타지소설, 3층은 중고생 학습지 코너로 이뤄졌다. 베스트셀러, 참고서 가격이 시중보다 싼 편이어서 단골 고객들이 많다.
황 사장은 “인기 유명만화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세 달에 한 번꼴로 신간이 나오는데 이때 맞춰 마니아들이 서점을 즐겨찾는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만화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좋은 만화야 말로 문학작품의 수준을 능가하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책”이라며 만화에 대한 찬사가 끝이 없다. 
문의 : 427-6070

 

인천복음서점
인천복음서점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전문서점이다. 1957년 배다리에서 10평 정도의 규모로 문을 열어 동인천 대한서림 앞, 내동, 용동을 거쳐 1975년부터 현재 답동성당이 있는 경동사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전국적으로도 가장 오래됐다.
1957년에 유서깊은 기독교 전문서점을 연 이는 임형섭(82) 어르신이다. 임 어르신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한국전쟁 당시 주한 영국군부대 사무원으로 일했고, 영국군 부대가 한국을 떠나면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기독교 전문서점을 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당시 미군부대 사무원으로 일할 수 있게 추천도 받았지만 서점을 운영하는게 더 마음이 끌렸다. 서점은 시작부터가 고생과 어려움의 시작이었다. 기독교 전문서점이라는 문패를 내걸고 성경책, 찬송가, 성서관련 책을 갖췄으나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가게 세를 못내 부인의 결혼반지를 팔아 보태기도 했다. 5,60년대 다들 어려웠던 시기라 종교서적을 팔기가 힘들었다. 책이 안 팔려 헤진 성경책 가죽 케이스를 수리해 주거나 성경책을 다시 제본해 주는 일까지 도맡았다.
서점은 어려워 경영난이 왔지만 신앙심은 깊어졌고 사명감도 생겼다. 임 어르신은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임무였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임 어르신은 영국군부대 시절부터 갈고닦아 온 영어실력으로 ‘성경의 역사(All about bible)’라는 영문서적을 한국말로 번역해 출간했다. 이 책은 ‘성경통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인천복음서점은 아직 아날로그적 운영방식을 고집한다. 수만 권의 기독교 관련 서적들이 서가에 꽂혀있고, 성물 등의 악세서리 상품을 판매한다. 60여 년 가까운 전통과 역사 때문에 시중에선 잘 볼 수 없고 구할 수 없는 귀한 성서들이 있어, 아는 손님들은 일부러 구매하러 찾아온다. 복음서점도 세월과 시대의 흐름은 피할 수 없다. 인터넷과 기독교서점들이 여러군데 생기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한 데다 이곳이 원도심이다보니 더 손님이 없다.
임 어르신의 소망은 자신의 손으로 일궈 온 서점이 어렵지만 계속 유지되어 크리스천들의 정보와 교류의 장으로 남기는 것이다.
문의 : 772-7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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