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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부두에서 목선 만드는 ‘노아 부부’
화수부두에서 목선 만드는
‘노아 부부’
어부에게 포구는 생명의 시작과 끝이다. 넓은 바다는 어부와 함께 생을 다한 어선들의 무덤이자 새로운 배를 만드는 어머니의 자궁이다. 어부의 재산목록 1호인 어선이 휴식을 취하는 곳, 화수부두 한구석에서 지금 또 한 생명이 잉태되고 있다. 조선소에서 만드는 배가 아니다. 어부가 자신의 목선(木船) 만들고 있다. 그 어부의 구릿빛 피부에는 지난 여름 구슬땀이 마를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글·사진 김민영 자유기고가

9.16톤짜리 셀프 배
화수부두는 어부와 어선들의 오랜 휴식처다. 기나 긴 항해를 마친 어선들이 한적한 풍광이 돼 한 컷 사진 속에 담기며 추억을 곱씹게 하는 화수부두. 이 부두 한 편에서 매일 흰색 ‘난닝구’와 검정색 바지를 입은 어부가 그물과 어망 대신 망치와 톱을 들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려 눈빛만이 반짝인다.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한 물가 바로 옆 거대한 장막이 그의 비밀공간이다. 흰 장막으로 사방을 두르고 조그만 창문을 내 숨통을 텄다. 밖은 대명천지이건만 안은 흐릿하다. 어둠 속에서 뚝딱뚝딱~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창문과 장막 틈새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전부다. 그 안에는 거대한 나무 배 한 척이 통째로 들어차 있다. 아직은 배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형태다. 부지런히 빈틈을 채우고 있는 유동진(68)씨의 망치질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는 혼자서 나무 배를 만들고 있다. 벌써 3년째다. 일종의 DIY(Do-it-yourself)다.
공간 안에 그의 옷가지와 줄자가 걸려 있고 주방기구들이 나무먼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배 위 이곳저곳에 그의 손과 호흡을 맞추는 연장들이 휴식을 취하듯 누워있다. 크고 작은 물건들 모두가 3년간 그와 함께한 분신들이다.
답답한 내부는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로 한증막 속이다. 열기가 쉬이 빠져 나가지 못하니 그는 연신 구슬땀을 흘린다. 아무리 더워도 미목선에 비를 맞히지 않기 위해 더위를 감수한다. 따갑게 나무 먼지가 살을 파고들어도 더 이상의 환풍을 용납하지 않는다. 허술해 보이는 계단을 이용해 목선을 오르내리며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저 없이 실행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완성된 목선의 모습이 선명하다.
“내 배를 만들고 있어요. 9.16톤짜리 목선이 될 거예요.”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그가 연필을 들었다. 종이는 따로 없다. 옆에 구겨져 있는 날짜 지난 신문을 두 손으로 쫘악~ 핀다. 그리고 그 위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배를 설명한다. 볼펜을 쥔 손은 굳은살로 두텁다. 9.16톤의 목선이 굳은 살 박힌 그의 손에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생전 처음 혼자 만들고 있는 목선이다.
그는 3년 전부터 나무를 사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 밑바닥부터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설계도도 없다. 그냥 그때그때 그림을 그려가며 만들고 있다. 어느덧 배는 형체를 갖추게 됐다. 지금 만들고 있는 목선은 그에게는 다섯 번째 소유의 배가 된다.
네 척의 배 그리고 마지막 배
그는 어부다. 19살부터 어부로 살았다. 어부로 살면서 배 만드는 곳에서 틈틈이 심부름을 하면서 배 만드는 기술을 눈으로 익혔다. 그 기술이 지금 그의 배를 완성시키고 있다. 그와 인연을 맺은 네 척의 배와 어쩌면 마지막 인연이 될 또 한 척의 배. 그 자체가 그의 인생이다.
“마지막 배는 작년 8월에 폐선됐어요. 물이 차올라 죽을 뻔 했죠. 그래서 정든 배를 폐선처리하고 배 만드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있어요. 휴~ 고생을 사서하네요.”
그의 아내 강영자(61)씨의 한숨이 바다만큼 깊다. 남편이 배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극구 반대를 했다. 그냥 기술자에게 맡기길 원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늘도 아내는 아침부터 남편의 일들 돕다가 의견 충돌을 겪었다. 덥고 힘드니 작은 어긋남에도 감정이 크게 상한다.
잘 다듬어진 긴 목침을 도르래를 이용해 배 위로 올린다. 아래에서 아들이 올리면 그는 위에서 잡아 올린다. 잠시 후 아들과 함께 올라 간 배 위에서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쿵~ 소리가 난다. 또 뭔가에 부딪힌 게다. 아래에 있는 아내의 걱정은 다시 한숨으로 뱉어진다. 이들의 작업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최대 승선인원은 유씨 부부 두 명
목선은 15년~18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이전 네 척의 배들도 그랬다. 그런데 그는 목선을 만든다. 마치 주위의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든 성경 속의 노아와 같다.
“100년을 내다보고 만드는 거예요. 최고로 좋은 나무와 부품을 사서 오래가도 썩지 않는 튼튼한 배를 만들고 있죠. 왜? 아들과 손자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싶어서. 이 배를 보고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하고 싶어요. 대를 이어 갈 수 있는 배를 내 손으로 만드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재미있어. 내가 만들면 절약도 되고 그만큼 튼튼하게. 무엇보다 내가 내 마음대로 디자인해서 만들 수 있잖아요.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배가 되는 거예요.” 그의 고집은 배 한 척을 만들지만 수고와 정성은 배 세 척을 만들고도 남을 만큼 담겨 있다.
그는 눈이 와도 비가와도 이곳에서 혼자 묵묵히 작업을 했다. 새벽 2시도 새벽 5시도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의 몸은 크고 작은 상처를 훈장처럼 달았다. 손톱은 망치로 맞아 까맣게 됐고 구멍을 뚫는 드릴은 바지감에 감겨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면 안쓰럽다. 그러나 그저 옆에서 돕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가끔은 동네 어르신들이 번갈아 오셔서 도와주시고 아들이 틈나는 대로 와서 일을 돕지요.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요.”
유동진씨가 배 이곳저곳을 가르킨다. 고기를 잡으면 얼려서 보관하는 얼음 창고와 살려서 보관하는 곳, 어부의 휴식공간 등 다양한 공간이 갑판 아래 숨겨져 있다. 최대 승선 인원은 5~6인용이다. 그러나 이 배는 부부만 타게 될 것이다.
“나는 선주 겸 선장이지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좋아. 고기를 잡아도 남 안 잡는 것을 잡아. 난 특별한 것이 좋아요.”
조금만 더 작업을 진행하면 이제 방수처리를 하고 기계와 엔진, 스크루가 목선의 빈 공간을 완벽하게 채우게 된다. 이 목선이 완성되면 ‘선광호’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의 배들은 모두 ‘선광호’였다. 다섯번 째 선광호로 완성되는 날 진수식을 갖게 된다. 아마도 진수식은 9월 말쯤일 것이다. 부부가 탄 선광호가 화수부두를 벗어나 큰 바다로 나가는 행복한 모습이 그려진다.
화수부두 수산물직매장
지난 5월 화수부두 수산물직매장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화수부두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부둣가 옆에 자리 잡은 이곳은 화수부두에 정박하는 어선의 선주 32명이 직접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들을 판다. 철저하게 100% 자연산만 판매하고 있어 식도락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선주들이 직접 판매하여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10시까지 운영하는 이곳은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길로 더욱 분주하다.
‘선광호’라는 간판을 걸고 부인 강영자씨가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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