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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성미씨

2013-09-03 2013년 9월호


‘반짝반짝 빛나는’ 성미씨


글 정경숙 본지편집위원  사진 김보섭 자유사진가

 


‘누구나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달이 길 밝히고 별이 뜨면. 가장 반짝이는 별을 따라 오면 되요. 그 찾던 곳. 작은자야학이랍니다.’ 가장 반짝이는 별을 따라 가, 더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를 만났다.
최성미(40)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함께 공부하는 ‘작은자야간학교’의 선생님이다. 본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머니, 아버지뻘의 학생들을 이끄는 것이 어디 쉬울까. 더구나 그녀는 몸이 자유롭지 않은 이른바 ‘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 그녀를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줘야 할 사람한테 도움을 받다니…, 제대로 가르칠 수는 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열정에 마음을 열고 결국 그를 믿고 따랐다. “야학에서 다시 배움의 길을 걷기까지 세월이 순탄치 않았을 거예요. 저도 그 길을 왔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서 상처받지 않고 또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태어날 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다. 지금껏 한번도 팔다리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다.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해 본 적도 없다. 무엇보다 힘든 건 누구보다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할 가족의 외면이었다. 장애를 치부로 여긴 가족은 성미씨를 햇살 한 줄기 닿지 않는 어둠 속에 꼭꼭 가둬놓았다. 학교를 다닐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숨조차 쉬기 힘들던 긴긴 시간이 지나고, 스물여덟 살이 돼서야 그녀는 비로소 ‘최성미’로 태어났다.


“새로운 삶이 시작됐어요.” 입고 있던 옷만 가지고 도망치듯 나와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0만원 짜리 집에 시작했지만, 행복했다. 친구를 사귀고 미래를 꿈꾸었다. 공부도 시작했다. 지금은 야학의 교단 위에 서 있지만 시작은 낮은 책상에서였다. 야학에서 초·중·고등 교과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방송통신대 영문학과를 마쳤다. 직장생활도 시작했다. 그때까지 만해도 그녀가 꿈꿔오던,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는 줄로만 알았다.
“세상을 몰랐던 거죠.”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남들에게는 그저 문턱 하나지만 그 문턱 때문에 멀리 돌아가거나 아예 들어서지 못했다. 도서관에는 장애인지정석이 없고 장애인화장실은 남녀공용이고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일일이 쫓아다니며 싸워야 했다. 직장에 다녀도 돈을 받을 수 없었다. 급여를 받으면 정부보조금이 끊기고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에서 나와야 했다. 적은 월급을 모아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돈 벌기를 포기했다.
“꿈이요? 글쎄요. 이젠 1년, 2년 바로 앞만 보고 살아요.” 꿈을 향해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달려 온 성미씨를 나약하게 한 건, 장애가 아니라 세상이다. 하지만 늘 싸워야 하고 때론 한계에 부딪치는 삶일지라도 그녀를 꺾을 순 없을 것이다. 성미씨는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걸 잘 아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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