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민어, 여름 보양식으로 입맛 돋우다
민어, 여름 보양식으로
입맛 돋우다
낙후(落後) 소리를 듣던 중구 신포동 시장이 요즘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민어 때문인데, 민어를 찾아 시장 골목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 주말 같은 때는 성시(成市)라 해도 좋을 정도다. 젊은 층들은 닭강정이니 어묵꼬치니 거기다가 공갈빵이라고 불리는 허풍선이를 먹으러 오지만 좀 연령이 높은 사람들은 단연 민어를 찾는다. 더구나 요즘, 삼복 제철을 만나 보양을 위해, 호사를 위해 시장 골목 안이 인파로 북새를 이룬다.
글 김윤식 시인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호식가들의 특별한 음식 민어, 60년대로 막 내려
“민어는 여름 복중이 제철이라, 이때쯤이면 기름진 소담한 살이 한창 맛을 돋우어 준다. 요즘에는 철 따위는 아랑곳없이 잡고 있어 제 맛이 아닌 민어가 많고, 일본인이 먹지 않던 민어를 이제는 어디에 가나 일본식으로 조리를 하니 그나마 민어 맛이 날 리가 없다. 제철의 민어는 전통 요리법에만 따르면 무엇을 만들든 그 맛이 일품이다. 생회와 어포도 좋고 굽거나 끓이거나 졸여도 그만이고, 심지어 딴 생선 같으면 버리는 대가리, 등뼈, 내장을 끓인 서덜이탕도 인천의 명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여름철에는 배낚시의 풍류와 사리 터를 찾는 소풍으로 싱싱한 민어를 포식했는데 그것도 60년대로 막을 내렸다.”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실린 내용으로 신 박사의 예민한 미각과 풍부한 음식 경험을 읽을 수 있다. 아무튼 근래에 들어 민어를 찾는 호식가들이 확실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 박사의 지적대로 “철 따위는 아랑곳없이 잡는” 민어의 맛을 구별하기는 하는지….

또 한 가지, 여름철에는 배낚시 풍류와 더불어 사리 터를 찾는 옛 인천의 민어 이야기 끝에 “그것도 60년대로 막을 내렸다.”는 것은 어장으로서 우리 인천의 뼈아픈 현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요즘은 온 국민이 전라남도 진도나 완도, 신안 등지만이 민어의 산지인 듯 알고 있지만, 과거 1920년대 이래 우리 인천 근해 덕적도, 굴업도는 인천 민어 요리로써 서울 호사가들까지 불러내릴 정도로 대단한 어장이었다. 그것이 조기와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해양 오염, 기후 변화와 남획에 의한 어족 고갈로 60년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는 말이다.
학교를 오가며 풍성한 시장 풍경을 보는 것이 좋아서 종·고·대학 꼬박 10년 동안 신포시장을 들락거렸다. 신 박사의 지적대로 아직은 민어가 풍성했던 1960년대였다. 시장에는 웬만한 어린아이 몸뚱이보다도 큰 민어를 좌판에 뉘어 놓고 팔던 어물전이 여럿 있어서 오가며 그 큰 바닷고기를 구경하곤 했다. 저게 어떻게 헤엄칠까? 어떻게 잡혔을까? 이제는 그런 가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연안부두 공설시장에나 가야 볼 수 있을 터이지만 민어 몸집은 예전에 비해 형편없이 작을 것이다.
그 후로는 신포시장에서 생선 민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시장이 워낙 인천 최초, 최고의 생선전(生鮮廛)으로 명성을 얻었던 곳이어서 그랬는지 민어를 다루는 집이 골목 안에 몇 군데 자리를 잡고 회와 서덜이탕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야 공무원이나 큰 회사 사람들 위주로 고객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민어(民魚)’라는 이름 그대로 온 서민, 백성이 다 기호(嗜好)해서 모여든다. 그래서 민어인지. 그 연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백성 민(民)자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참조기 면(?) 자, 곧 면어(?魚)로 이름을 쓰고 있다. ‘민어(民魚)’는 다만 그 속명이라는 설명이다.

생선 경력 39년 솜씨, 신포시장 일인자
민어에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많으나 너무 곁가지로 나가는 것 같아 이쯤에서 본론인 신포횟집 이야기로 들어가자. 신포횟집은 중구 신포시장 안 두 골목 중간 지점에 있다. 신포시장의 구조는 동서로 뻗은 이 두 개의 나란한 긴 골목으로 되어 있다. 패션거리 다음의 닭강정, 어묵꼬치 따위로 번잡해진 시장 안 골목이 윗골목, 그리고 인파가 비교적 뜸한, 수입품코너, 인삼가게 등이 몰려 있는 골목이 아래골목이다.
이 두 골목 중간은 6·25 동란 후 마구 들어선 집들로 미로처럼 얽혀 있었는데 10년 전, 중구청에서 정비를 해 털어내고 동서 양쪽에 두 개의 쉼터 같은 공지를 만들어 놓았다. 동쪽에는 요즘 비상하게 이름이 뜬 H횟집이 있고, 서쪽에는 시장 안에서 민어회 원조 노릇을 하는 K횟집이 있다. 신포횟집은 바로 동쪽 H횟집을 비스듬히 건너다보는 위치에 있다.
신포횟집이 문을 연 지는 이제 겨우 10년 남짓하다. 전에는 시장을 오가며 어쩌다 농어를 주문해 가져가거나, 소반에 얹힌 말린 어란(魚卵) 따위를 사들곤 하던 생선 가게였다. 그러던 곳이 10년 전 시장을 정비할 때, 횟집으로 변모한 것이다. 2002년 후배 한(韓) 모 군이 지방선거에 나와 일심으로 도왔는데 참으로 아쉽게 패배하고 만 뒤 그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처음 들어서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대부분의 횟집은 다 남자가 주방을 책임지는데 반해 이 집은 주인 윤인자(尹仁子)씨가 회칼을 잡는다. 흰 위생복도 입지 않고 머리에 요리모도 쓰지 않지만 썰어내는 회의 맛은 남성 숙수(熟手)가 내는 것 이상이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윤인자씨가 횟집을 경영한 것은 10년이지만, 생선을 다루기는 39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웬만한 경험자도 윤인자씨를 따르지 못한다. 시장 안에서는 최근 자기 가게를 세 주고 잠시 물러난 H횟집 주인이 조금 앞서는데 그가 잠시나마 떠난 마당에는 이제 신포시장 안에서 일인자인 셈이다.
사실 고객 입장에서는 이런 주인에게 신뢰가 더 갈 것이다. 생선의 모양만 살펴도 그 물이 좋고 나쁨을 대번에 헤아리고, 육질을 판별해 내고, 처치의 방법을 훤히 꿰어 터득하고 있을 터이니….
경기도 군자 출신 윤인자씨가 불과 28세 무렵에 인천 신포시장에서 생선전을 열게 된 동기는 흔한 말로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이런 여인에게는 예외 없이, 그렇듯 쓸데없이 통 큰, 그러면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마는, 그리고 끝내 술과 미숙한 일상생활로 삶을 겉돌다 일찍 떠나고 마는 남편이 있게 마련이다.
윤인자씨는 25세에 경기도 용인 수지로 시집을 갔다. 그리고 3년 후인 1974년, 그런 남편과 이 세상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상황에서 여기 신포동 시장 골목 한 여인숙 방에 세를 들게 되는 것이다. 시댁에서 어느 저수지와 관련한 토지를 매각하여 당시 돈 150만 원을 분배받았는데 남편의 사업 빚 100만원을 변제한 후 수중에 남은 50만원 중 45만원으로 여인숙 방 하나를 전세 낸 것이다. 바로 지금 횟집 건너편이다.
그리고 남은 돈 5만으로 부부는 생선 가게 경영에 나선다. 남편은 자전거를 샀다. 담배도 헐한 것으로 바꾸며 7년 동안 열심히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윤인자씨가 35세가 되는 해, 나이 마흔한 살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 동안 아들 둘과 먹고 산 것, 그것만 해도 고맙고, 더 이상 뭐….” 그녀에게 일찍 여읜 남편에 대한 애상이 왜 없고, 말 못할 한과 고뇌와 상처가 왜 없었으랴. 그것은 쉽게 물을 일도 아니고 어쭙잖게 받아 적을 일도 아니다.

밑반찬 어란과 민어·농어 건작찜 맛 일품
번듯한 횟집 다 놔두고 왜 작고 옹색한 이 집을 글로 쓰고 있는가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어회는 어느 횟집이건 거의 동일하다. 배받이라고 부르는 어복 부분, 진한 살 부분, 씹을 때 탄력이 느껴지는 지느러미와 꼬리 부분, 슬쩍 데쳐 말아놓은 껍질과 버터덩이 같이 생긴 부레 등등. 심지어 접시에 놓이는 모습도 대동소이하고 밑반찬도 비슷하다. 거기에 서덜이탕까지도 같다.
그러나 이 집에는 시장 내 어느 집에서도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이 집을 택한 것이다. 이 집에는 밑반찬이 순서에 따라 두 가지 다른 것이 나온다. 먼저 여러 밑반찬과 함께 얇게 썬 어란이 몇 쪽 나온다. 그리고 회를 다 먹고 식사를 할 무렵, 민어나 농어 건작(乾作) 찜이 상에 올라온다.

어란은 민어 알을, 기름을 발라 햇빛에 건조시킨 것으로 좀 짜기는 해도 씹히는 맛이 쫄깃하다. 양주 안주로도 좋을 것이다. 찜은 꾸덕꾸덕 마른 민어, 농어 살을 마늘, 파, 잘게 썬 붉은고추 등으로 양념을 한 뒤 싱겁지 않게 간을 보아 증기로 하얗게 쪄 내는 것인데 옛날 어른들처럼 물만 밥에 먹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다른 반찬 품목은 몰라도 경인간 일대 민어 횟집에서 이 두 가지를 내놓는 집은 여기 신포횟집뿐이다. 장마철이나 요즘 같은 불볕에는 살이 물크러지고 탄력이 없어져 말리지 못한다고 한다. 어란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아쉽지만 이 같은 신포횟집의 특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삼복이 다 나가고 민어철도 피크가 지났지만 그래도 과거 인천의 민어 절기는 추석 무렵까지 이어졌었다. 거기에 볕이 기울면 어란과 건작이 나올 터이니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도 이 글을 쓴다.
문의 : 765-3088
- 첨부파일
-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