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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마시고 복권 담청 됐네

2013-09-03 2013년 9월호


커피 한 잔 마시고

복권 담청 됐네

 

글 유동현 본지편집장  사진 인천시청 앨범 발췌

 

유흥음식점 영수증 복권 추첨 모습(1965년)


시복권부유흥음식세영수증발행에관한조례(제419호)가 1965년 3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목적은 ‘복권부 유흥음식세 액수증을 발행함으로써 유흥음식세 영수증의 교부를 철저히 이행케 하여 유흥음식세의 공정하고도 확실한 징수를 도모한다’였다. 한마디로 유흥음식점의 탈세를 막아 세금을 많이 걷겠다는 뜻이었다.
복권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비교적 고급 음식점인 1종 유흥음식점에서 발행하는 500원 짜리 복권(영수증)으로 3등까지 공개 추첨한다. 음식값 500원마다 음식점 주인은 1매씩 발행했다. 5천원 짜리 회식을 했다면 손님은 복권 10장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다방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복권(영수증) 수령자가 즉석에서 개봉해 당첨 여부가 결정되는, 요즘으로 말하면 즉석식 복권이었다. 다방 주인은 그 자리에서 해당 복금(당첨금)을 지불해야 한다. 유료 음료물(커피 등) 한 잔에 복권 1매를 손님에게 줘야 한다.
추첨은 매달 했는데 반드시 경찰관이 입회한 공개 장소에서 해야 한다. 주로 시청에서 추첨했다. 시장은 제1종 장소용 복권의 추첨이 완료된 즉시 당첨복권의 번호, 등위, 복금액, 복금청구기간 기타 필요한 사항을 공고해야 한다.
사진 1은 1965년 정복을 입은 경찰관과 관련 공무원들이 입회한 가운데 추첨하는 장면이다. 추첨통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1종 유흥음식점 복권이고 다른 하나는 다방용 복권 번호를 추첨하는 통으로 추측된다.   

 

전동운교 확장 공사 장면(1965년)

전동운교 확장 후의 모습. 전동변전소와 전동교회가 눈에 들어온다(1965년).

철길 위에 놓인 다리를 운교(雲橋)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냥 ‘구름다리’라고 부른다. 기차가 달리는 철길 위를 걸어 다니니 마치 구름 위를 거니는 기분이 들어서 이같이 부른 듯하다. 인천에는 대표적인 구름다리 화평운교가 있다. 옛 행정자료에는 이 운교를 ‘전동(錢洞)운교’라고 써있는데 전동이란 지명이 지금의 ‘전동(典洞)’과 차이가 있다.
이 운교는 경인철도가 개통되던 즈음에 7.5m 높이로 설치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때는 나무로 만든 작은 목교였다. 자동차가 거의 없던 시절로 사람들이 주로 다녔고 기껏해야 우마차나 인력거 통행이 전부였기 때문에 목교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썩지 말라고 검은 염료를 발랐는데 일본인들은 이것을 흔히 ‘흑교’라고 불렀다. 후에 철근 콘크리트 다리를 다시 설치했다.      
1967년 2월 3일 운교 확장 공사가 착공되었고 그해 6월 2일에 준공되었다. 확장 전후 길이는 똑같고 폭이 5.8m에서 15m로 두 배 이상 넓어졌다. 이 운교 확장으로 도심지에서 중공업지대가 원활하게 연결되었다고 인천시는 홍보했다. 전동이나 송월동에서 화수동 가는 길이 편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운교를 ‘인천극장 가는 구름다리’라고 애기했다.
사진 2는 확장 공사하는 장면이고 사진 3은 확장 후의 모습이다. 화평동 쪽에서 바라 본 운교 뒤로 전동변전소가 보인다. 당시 도심지의 전력을 공급했던 중요한 시설이었다. 1990년대 초 변전소가 없어지면서 그 자리(약 2천500㎥)를 옆에 있는 전동교회가 구입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현재 빌라가 들어서 있다. 

 

조심조심, 학익동 고인돌을 박물관으로 옮기는 작업(1971년)

 

‘영차 영차’ 도르래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돌을 옮기고 있다. 이 거대한 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으로 알려진 지석묘(고인돌)다. 사진 4는 1971년 5월 12일 학익지석묘를 자유공원으로 옮기는 장면이다.  
원래 이 지석묘는 문학산 인근 학익동 소년교도소(인천구치소) 옆에 있었다. 이 지역에 원래 고인돌 7기가 있었으나 일제가 소년교도소를 지으면서 6기를 없애버렸다. 그러다가 1971년 소년교도소를 확장하면서 하나 남은 이 학익지석묘를 당시 자유공원 내에 있던 인천시립박물관(현 제물포구락부) 옆으로 옮긴 것이다. 이 고인돌은 1990년 시립박물관이 옥련동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다시 옮겨졌다. 이사를 할 때마다 청동기 할아버지의 영혼은 잘 따라왔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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