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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을 찾아서
시간의 문을
찾아서
글 장회숙 도시공간활용연구소 대표

2013년 8월 3일 토요일 오후 7시 15분 선인체육관이 해체되어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공간은 1970년 이전의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염전이다. 그 염전이 주안 8염전의 물을 담아두는 저수지였다는 것도 요즈음 인천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의미가 없는, 놀이터로서의 염전이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면 낮에는 염전에서 밤에는 부처산을 올라갔다. 우리의 간식이 되었던 달콤한 아카시아 꽃향기를 따라 아카시아 잎을 가위바위보로 하나하나 떼어가면서.
선인학원이 거대한 성을 구축하는 동안 우리의 놀이터는 점점 아주 빨리 사라져갔다. 부처산을 지키던 신성한 나무도,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도 선인학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경인국도가 생기면서 염전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더 이상 밖에서 놀지 않게 되었다. 경제개발의 속도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는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접혀져 갔다. 그 접힌 시간이 도심의 골목으로 남았다. 골목의 한끝에는 시간을 쫓아가다 지쳐 주저앉은 사람들이 추억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골목 안에 멈춘 시간들을 찾아다닌다. 그 시간 속에는 내게 클래식 기타를 들려주던 이웃집 오빠도 있다. 그집 큰 언니는 너무 예뻤다. 이름은 하루꼬. 어느 날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긴담 모퉁이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났다. 국민학교 4학년이 되면서 교실에 빈자리가 생겼다. 그 빈자리는 산업화시대를 받쳐주었던 공장 여공들의 몫이었다.
시간을 찾는 사람들을 만났다. 1902년 하와이로의 첫 번째 이민선을 탔던 분의 증손녀되는 분이 부군과 딸을 데리고 증조부가 떠났던 시간을 찾아온 것이다. 그 분들은 떠났던 그 시간의 그 장소를 찾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이민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겔릭호 승선자들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5대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감격의 장면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또 한 분 쿠바 재이민의 후손이 KBS 취재팀과 다큐를 찍으러 이민사박물관을 찾았다. 카스트로 혁명군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전시된 사진과 자료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세잔교를 찾아 흔적을 더듬었지만 표지석 하나도 없다면서 실망을 했는데 그 다음날 세관용지 터라는 표지석을 발견했다. 보여 주지 못한 것이 내 게으름 탓인 것만 같았다.
선인체육관이 붕괴되는 폭발음이 들리는 순간 내 가슴 속에서도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자리가 시간의 문이 되어 나를 향해 열린 것 같아 들어가려 하였지만 막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위에 서면 꿈속에서도 나를 부르던 추억. 아카시아 사이로 개건너로 가던 옥수수밭과 활터고개가 염전을 품고 보일 것만 같았는데….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인디언들은 말을 달리다가 문득 멈추어 선다고 한다. 자신이 너무 빨리 달려서 영혼이 쫓아오지 못할까봐 자신의 영혼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다.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서 잃어버린 것들이 시간의 주름인 도시의 골목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자신들을 보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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