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지난호 보기

숭의벌 넘어 문학산에 성화 타오른다

2013-10-07 2013년 10월호

 

숭의벌 넘어 문학산에

성화 타오른다

 


올해 인천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의 횟수는 제94회. 그동안 우리시는 45회(64년), 59회(78년), 64회(83년), 80회(99년) 등 네 차례 체전을 치렀다. 모두 인천사람의 추억 공간 ‘그라운동장’ 숭의구장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2002 월드컵 4강의 신화가 움튼 문학경기장에 처음으로 성화가 활활 타오른다.

 

글 유동현 본지편집장  사진제공 인천역사자료관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되었다. 첫 행사로 그해 11월에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제1회 전 조선야구대회가 열렸다. 이를 전국체전의 기원으로 삼고 이 대회를 기점으로 횟수를 계산하고 있다. 1934년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전 조선종합경기대회부터 비로소 종합대회의 성격을 띠었다. 1948년 제29회 대회부터 명칭이 ‘전국체육대회’로 바뀌면서 오늘날 같은 시·도 대항제로 바뀌었다.

 

45회(1964.9.3-9.8) 대회 인천 숭의구장에 처음으로 성화가 불타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雨)체전’으로 기억된다. 그해 열리는 18회 도쿄올림픽 때문에 예년보다 한 달 빠른 9월 초에 개최됨으로써 여름철 비구름이 완전히 거치지 않았다. 대회 내내 거의 비가 내려 진흙탕에서 경기를 치렀다. 급기야 야구, 핸드볼, 연식정구, 테니스 결승전은 당일 폭우로 인해 두 팀을 공동 우승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참가 선수들은 입장식에만 모습을 보이고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기록들이 풍성했다.
호텔, 여관 등 숙박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당시로서는 생소한 민박 가정을 모집했다. 1천200여 호의 가정이 참여해 숙박 문제를 해결했다. 민박 가정에는 선수단을 위해 쌀을 방출미 가격으로 특별배급했으며 각 협동조합을 통해 쇠고기, 돼지고기, 계란, 우유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했다.

 

 

59회(1978.10.12-10.17) 대회 크고 작은 사건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모범체전’으로 기록된다. 정부수립 30주년을 기념한 59회 체전은 당시 많은 근로자들이 중동으로 취업하러 간 세태를 반영하듯 처음으로 재(在)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단(임원8, 선수18)이 참가했다. 성화 최종 주자는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인천의 아들 장창선이었다. 당시 시대 상황을 보여주듯 매스게임은 남녀 고등학생 1천800여 명이 펼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 대부분 안보 관련 매스게임이었다. 체전을 위해 숭의종합경기장의 스탠드를 대폭 증축했으며 전광 스코어보드도 새로 설치했다. 특히 운동장 주변이 일명 ‘전도관 동네’인 숭의동 109번지 일대 허름한 집들은 거의 모두 2층집으로 ‘살짝’ 개축했다.

 

64회(1983.10.6-10.11) 대회 컴퓨터가 처음으로 경기장에 선보인 ‘과학체전’으로 불린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올림픽용 IBM 컴퓨터 판매를 취소하기로 결정해 양국간 다른 차원의 갈등과 긴장감이 돌았다. 이처럼 컴퓨터는 80년대 들어 경기 진행, 결과 등 스포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86 아시아경기대회,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카이스트를 주축으로 이 대회부터 모든 경기진행에 컴퓨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사이클 전용경기장 벨로드롬을 선보였고 가스 성화대를 처음 설치했다. 개항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열린 대회였지만 대회 중반에 터진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으로 선수단 모두 검은 리본을 달았으며 폐회식은 전 국민의 울분을 토해낸 규탄장이 돼 버렸다.

 

80회(1999.10.11-10.17) 대회 ‘20세기 마지막’ 체전이었다. 당시 송도를 중심으로 한 트라이포트 건설을 추진 중이었던 우리시는 대회 슬로건을 ‘황해로, 세계로, 미래로’로 정했다. 마스코트 ‘미래로’는 21세기 인천의 상징인 첨단과학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로봇을 닮은 소년의 이미지를 삼았다. 그러나 체전 유치 후 주경기장으로 활용하려던 문학경기장의 완공이 지연됨으로써 우리시는 96년 한때 반납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체전으로 보기 드물게 세계기록 1개, 아시아기록 5개, 한국기록 36개가 쏟아졌다.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계정선택
인천시 로그인
0/250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