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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덕엔 금빛 용들이 용솟음 친다
그 언덕엔 금빛 용들이
용솟음 친다
‘바닷물 닿는 곳 어디든 화교(華僑)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은 어디에 가든지 식칼 하나와 춘장 한 단지만 있으면 청요리 음식점을 차릴 수 있다고 하니 그들 없는 곳은 아마 지구가 아닐 것이다. 중국과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이야 더 할말이 없다. 이제 인천을 이야기 할 때 차이나타운을 빼놓을 수 없다. 한 세기가 지난 오랜 시간이지만 화교들은 그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에 짜장면만 있다고? 그 말 들으면 왕서방들이 많이 섭하지.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수놓인 거리를 따라 고양이 도도와 함께 비자 없이 반나절 중국여행을 떠나보자.
그림·글·사진 차지원 일러스트레이터

“우와, 엄청 크다….”
인천역으로 나와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려면 큰 문을 지나야 한다. 이 커다란 돌문은 패루(牌樓)이다. 패루는 화교들이 정신적인 지주로 삼는 상징 조형물로 중국 동리 앞에 세우는 고유의 출입문이다. 오늘날에는 미국이나 일본 등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다 세워져 있다고 한다. 패루는 지난 2000년 인천시와 우호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가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다. 바다 건너 온 기술자가 중국에서 실어 나른 재료들로 멋지게 세웠다. 이 문 때문에 차이나타운이 훤해졌다.
그런데 이 패루가 지난 2008년 거센 비바람에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중국산이라 그런가’라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두 도시는 정성껏 패루를 다시 세웠다. 이번에는 떨어져 나갈 염려가 없는 하얀 돌패루를 세웠다. 이전 것 보다 더 웅장하고 남다른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럴 때 쓰는 4자 고사성어는 ‘전화위복(轉禍爲福)’.
패루를 지나자 작은 중국이 열렸다. 좌우로 붉게 물든 거리를 한발 한발 걷노라니 제일 먼저 달콤한 짜장면 냄새가 마중 나왔다.
“인천에서 최초로 짜장면이 만들어졌다지? 그 맛은 어떤 맛일까?”
1900년대 초 많은 중국인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황해를 건너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막노동꾼들이 상당수 끼어 있어 부두노동자로 생활했다. 이즈음에 탄생한 것이 짜장면이다. 그들은 볶은 춘장(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먹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한다는 짜장면의 기원이다.
짜장면을 가장 먼저 판매했다던 ‘공화춘’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뭐야, 중국집이 아니네? 이미 공화춘은 오래전 문을 닫고 ‘짜장면박물관’이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인천항 부두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산동식 짜장면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이 재현되었고 1930년대 당시 최고의 영빈관(迎賓館)이라 할 수 있는 공화춘 접객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짜장면이 만들어지던 공화춘의 주방에선 짜장면의 조리법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 중국집의 모습을 실감나게 살려 놓은 공간도 있다. 이밖에 짜장면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요소들을 영상, 전시, 유물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짜장면은 이제 중국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 먹거리라는 게 실감났다.

패루를 지나자 작은 중국이 열렸다. 좌우로 붉게 물든 거리를 한발 한발 걷노라니 제일 먼저 달콤한 짜장면 냄새가 마중 나왔다.
“인천에서 최초로 짜장면이 만들어졌다지? 그 맛은 어떤 맛일까?”
1900년대 초 많은 중국인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황해를 건너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막노동꾼들이 상당수 끼어 있어 부두노동자로 생활했다. 이즈음에 탄생한 것이 짜장면이다. 그들은 볶은 춘장(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먹었다. 그것이 오늘날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한다는 짜장면의 기원이다.
짜장면을 가장 먼저 판매했다던 ‘공화춘’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뭐야, 중국집이 아니네? 이미 공화춘은 오래전 문을 닫고 ‘짜장면박물관’이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인천항 부두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산동식 짜장면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이 재현되었고 1930년대 당시 최고의 영빈관(迎賓館)이라 할 수 있는 공화춘 접객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짜장면이 만들어지던 공화춘의 주방에선 짜장면의 조리법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 중국집의 모습을 실감나게 살려 놓은 공간도 있다. 이밖에 짜장면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요소들을 영상, 전시, 유물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짜장면은 이제 중국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 먹거리라는 게 실감났다.
연세 지긋한 분들은 차이나타운을 흔히 청관(淸館)이라고 부른다. 이는 ‘청나라 관청이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인천에 중국인들이 거주하게 된 것은 임오군란 때 청군을 따라 40여 명의 장사꾼들이 함께 들어오면서 부터다. 집단으로 거주한 것은 우리나라 땅에서 인천이 제일 먼저다. 현재의 북성동 일대 구릉지 5천평에 청국 조계(租界)를 설치하고 청국영사관이 문을 열며 자치지역을 형성해 나갔다. 그 동네의 이름은 양국의 친선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 선린동(善隣洞)이라고 불렀다.
‘가짜’ 음식을 눈으로만 보니 배에서 난리가 났다. 발길을 돌려 중국 음식점이 즐비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가 이렇게 많아? 짜장면만 있는 게 아니네?”
중국 사람들은 책상 빼고 다리 네 개 있는 모든 것으로 요리한다고 하던데, 음식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일반 중국음식점에서는 볼 수 없는 양꼬치나 화덕만두는 관광객들의 최고 인기 간식거리. 그중에서도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갈빵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즐겨찾는다. 시식으로 나온 공갈빵에 반해 한 봉지, 두 봉지씩 팔려나가는 중이다.
커다란 겉모습과는 다르게 속이 텅 비어있어 ‘공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덕분에 만우절에 먹는 빵으로 서서히 등극하고 있다. 둥글게 부푼 표면은 딱딱해서 조금씩 부숴먹는다. 요즘 젊은층에서 인기인 독일과자 ‘슈니발렌’처럼 봉지 채 쾅쾅 두들겨 조각을 낸 후에 먹으면 편하다. 바삭함 속에 베인 적당한 단맛이 입맛을 당긴다.
차이나타운 화교 중산학교 바로 정문 앞에 복래춘(福來春)이 있다. 그 집에 가서 짜장면을 시키면 주인장은 들은 체 만 체다. 그곳은 1920년대부터 4대째 꽁신삥(공갈빵)과 웰빙(월병)을 굽고 있는 중국 전통과자점이다. 원래 공갈빵과 월병은 간식거리가 아닌 제삿상에 올리는 귀한 음식이다. 복래춘의 벽에는 월병의 기술을 전수한 가족들의 이름을 표시한 ‘월병 가계도’가 걸려 있다. 가게 곳곳에는 월병 무늬를 찍어낼 때 사용한 나무틀 등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도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복래춘은 처음에 공화춘(현 짜장면박물관) 근처에 있다가 50여 년 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복래춘의 과자 포장지에는 ‘百年傳統老店’이라고 적혀있다.

오물오물, 공갈빵을 물고 길을 따라 올라가니 화려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말로만 듣던 ‘삼국지 벽화거리’다. 벽화를 따라 걸으면 삼국지의 장면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남아라면 삼국지는 한번 일독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대신 이걸로 때울까. 등장인물도 많고 한자어가 많아 내용이 어려웠는데 그림이랑 같이 보니 훨씬 쉽고 재미도 있다.
삼국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학생들이 몰려나온다. 알고 보니 근처에 화교학교가 있단다. 청국 영사관이었던 자리에 학교가 들어서면서 지금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화교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화교 학교지만 교정엔 대만의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가 휘날리고 대만의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다. 1992년 8월 우리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수교하고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했지만 화교 학교는 여전히 대만 정부의 소유라고 한다. 두 개의 중국과 두 개의 한국. 지나온 역사도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차이나타운에 있는 화교학교의 정식 명칭은 인천화교중산중·소학교(仁川華僑中山中·小學校)이다. 중산학교가 설립된 것은 1901년이다. 처음 학교 문을 열었을 때는 초등학교 과정인 소학교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한국화교 학교교육의 효시다. 20여 년 전에는 초·중·고 전교생 1천500여 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전교생이래야 400여 명이다.
여기저기 쉬지 않고 다녔더니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다.
“한중원? 여기서 좀 쉬었다 가야지!”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둘러보니 원색으로 칠해진 정자와 연못, 그 위를 지나는 다리가 중국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한자로 ‘한중원(韓中園)’이라고 쓰여 있는 이곳은 ‘차이나타운 야외문화공간’으로 불리는 쉼터다. 작은 정원으로 꾸며놓은 이곳은 청나라 중·후반기 소주 지역 문인들의 정원 양식을 토대로 조성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하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이나타운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 한중문화관으로 가야겠다. 거기라면 중국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 한중문화관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주택 하나가 보인다. 2층의 개방형 발코니가 인상적인 청나라 양식의 주택인데, 6·25 전쟁 중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이 건물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오래된 차이나타운을 다녀온 인증 굿샷이 된다.
주택을 지나 한중문화관에 다다른다. 여의주를 물고 금방이라도 승천할 듯 한 황금빛 용, 중국의 전통문양이 새겨진 외벽과 붉게 솟은 기둥. 외관에서부터 중국색이 강하게 전해진다. 한중문화관은 한국과 중국을 이어주는 문화공간이다. 기획전시실에선 회화, 조각, 서예 등 주로 중국의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중국의 우호도시로부터 기부 받은 문화재를 포함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공연장에선 중국의 경극, 기예, 민속공연 등 다양한 문화공연 행사를 열어 즐거움을 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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