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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가지 찬, 이 호사스런 백반 맛
14가지 찬,
이 호사스런 백반 맛
글 김윤식 시인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일전에 한 독자로부터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 지난 호에 소개한 산곡동 국밥집 음식이 대단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서울 청진동 운운하는 말까지 했다. 좀 난감한 느낌이었지만, 음식이라는 것이, 아니 그것을 먹는 입맛이, 백이면 백 이렇게 다 다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갖게 했다.
사실이지 이 세상 어디에도 중구(衆口)를 전부 만족시킬 음식은 없을 것이다. 조리사의 개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재료나 레시피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연령에 따른 입맛의 구별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곰삭은 젓갈을 젊은 층은 코를 쥐는데 늙은이는 영 입맛을 다신다.
어쨌든 짜다는 사람, 시다는 사람, 달다는 사람, 맵다는 사람, 거기에다 질기다, 푸석하다, 밋밋하다, 느끼하다, 풀어졌다, 딱딱하다, 구수하지 못하다, 감칠맛이 없다…, 구미(口味)가 제각각 얼마나 다른가?

3대에 걸쳐 30년 넘께 밥집의 역사
이번에는 연수구 연수동 626-8번지, 연화여중 후문 앞, 올해 마흔아홉 살의 주인 이광호(李光鎬)씨가 경영하는 ‘전동밥상’ 일명 ‘전동집’을 소개한다. 언뜻 ‘전통(傳統)집’으로 들리기 쉬운데, 그렇게 전통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 실제도 과거에 흔했던 상밥집 비슷하게 백반(현재는 잡곡 돌솥밥이다.) 상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 집의 특색은 옛 상밥집 타입을 조금 비껴 앞으로 나아갔다고 할까, 아니면 거꾸로 규모 큰 한정식 집 메뉴를 좀 줄여 놓았다고 할까.
상호에 전동이 쓰인 것은 주인 이광호 사장네 과거 거주지가 중구 ‘전동(錢洞)’이었던 데서 기인한다. 이 사장 모친이 거주지 전동을 상호로 써서 역시 같은 중구 송학동, 옛날 인천시장 관사 밑에서 한정식 집, ‘전동집’을 연 것이 시초였다. 이 사장 모친은 1997년 가게를 이곳 연수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운영했고, 이곳으로 이전해 와서는 이 사장이 상호 그대로 대를 이은 것이다.
물론 이 사장네 밥집 경영 이력은 이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장의 조모가 일찍이 하인천역(지금은 인천역이라고 한다.) 인근에서 빵을 쪄 팔고 국밥을 끓여 내는 밥집을 열었었고, 그 뒤를 이어 모친이 전동집을, 그리고 지금의 이광호 사장이 이어받아 결국 3대에 걸쳐 30년이 훨씬 넘는 밥집 역사를 쌓은 것이다.
점심 주문을 하고 앉아 있는 동안 길 건너의 구청 공무원들, 인근 사무실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한국 사람은 역시 신을 벗고 방바닥에 앉는 것이 몸에 배 편안한 모양인지 모조리 방으로만 들어가 앉는다. 하기야 상밥집은 목로에 앉는 것이 아니라 방바닥에 엉덩이를 내려놓고 먹어야 제격일 터.
이윽고 찬이 차려진다. 입 속으로 세어 보니 무려 열네 가지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고등어구이와 조기조림이다. 워낙 비린 것을 좋아하는 까닭일 것이다. 고등어구이처럼 한국인에게 좋은 반찬거리가 또 있을까. 조기조림은 그 고소한 간장 맛이 더 침을 고이게 한다. 조기를 후딱 발라먹고는 양념이 녹아 있는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맛은 정말이지 상미(上味) 중의 상미다. 이 조기조림은 갈치조림으로 교대되기도 한다.
무침으로는 시금치, 시래기, 가지무침이 놓인다. 참지 못하고 시금치무침을 한 젓가락 집는다. 파래전은 또 그 빛깔만큼이나 맛이 상큼하다. 전 종류는 그때그때 재료의 조건에 따라 콩비지전, 감자전, 부추전 등으로 바뀐다고 한다. 이 집 동그랑땡이 또한 일미라고 하는데 이날은 아쉽게도 맛보지 못했다.

돌솥 잡곡밥 오물오물 씹으면 곡물향내
막 익으려는 열무김치가 입 안에서 산뜻하게 씹히고 뽕잎장아찌와 곰취장아찌의 향미는 깊고 그윽하다. 한국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잡채 접시의 기름지고 풍성한 맛과 양은 그야말로 구복(口腹)에 복을 가한다. 육류로는 유일하게 돼지제육볶음이 나오는데 상추쌈은 이것을 싸 먹어도 좋다는 뜻일 것이다. 이어서 뚝배기에 담긴 푸짐한 계란찜과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 위로 올라온다. 이 된장찌개 대신 비지찌개가 나오는 날도 있다.
뜸이 잘 든, 돌솥 속의 차조가 섞인 잡곡밥을 퍼 그릇에 옮기고 물을 부어 다시 뚜껑을 덮어 놓고는 이내 조기조림 간장을 떠서 밥그릇 한쪽을 비빈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짭조름한 맛과 함께 잔잔하게 풍기는 조기 비린내, 그리고 거기 순박하게 어우러진 양념 맛이라니!
요즘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나,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 나이 이상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런 맛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다만 이렇게 간장에 밥을 비비려면 그 밥이 말 그대로 백 퍼센트 흰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제 맛이 난다. 이것은 한국인이 가진 혀의 예민함이지 결코 잘못된 습관은 아닐 것이다.
간장으로만 다 비벼 먹을 수는 없어 된장찌개도 떠 보고, 맨밥 숟가락 위에 뽕잎장아찌를 얹어 입에 넣어 보기도 한다. 이내 밥그릇이 빈다. 돌솥을 당겨 뚜껑을 열고 잘 불은 누름밥을 뜬다. 누름밥은 당귀장아찌나 시래기무침과 먹는 것이 요령. 그래야 입안이 상쾌하고 개운하다. 아쉬운 것은 양념을 잘한 젓갈류가 한 가지쯤 있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누름밥은 새우젓이나 조개젓과도 썩 조화로운데…….
이렇게 모든 찬을 하나하나 상미(嘗味)해 보면서도 솔직히 상추에만은 손을 대지 않았다. 물수건 하나로는 손의 위생에 자신 없었던 데다가 점심에 퍼질러 앉아 쌈을 싸 꾸역꾸역 입에 넣기가 좀 그랬기 때문이다.
장사가 번창해서 건너편 빈 가게를 수리해 조만간 확장하리라 한다. 그리 되면 좀 더 안락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음식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집으로서는 저녁에 몰리는 단체 손님 응접에도 훨씬 용이할 것이다.
전동집에는 방금 먹은 이 집의 대표 음식 격인 백반 메뉴 외에도 모친 시절부터 평이 나 있는 별도 갈치조림이나 병어조림이 있고, 후에 이 사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퓨전 요리로 ‘묵은지닭볶음탕’ ‘주물럭쌈’ 같은 것이 있다. 주물럭쌈은 큰 생물 오징어 몸통에 보쌈처럼 새우 등 여러 가지 해물류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요리라는데 이것 역시 맛을 보지는 못했다.

술과 식사겸한 저녁용 다섯 가지 요리 인기
여기에 한 가지 더 첨가할 것은 단체 손님을 위해 이 사장이 개발한 메뉴다. 술과 식사를 겸한 저녁용 다섯 가지 코스 요리로 탕 종류, 조림류, 튀김류, 그리고 일식이라고 할 생선회, 중국요리로는 고추잡채와 유산슬이 포함된, 남녀노소 각각 다른 입맛과 기호에 맞도록 한 ‘통섭의 요리’다. 단체 회식이라면 정해진 듯 고기집이나 회집, 중국집으로 향하는 것에 착안해 이를 조합한 메뉴를 개발한 것이다.
“전통 음식을 보존하면서, 한 편 새로운 요리도 창안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 개발, 도전이 이 기계공학과 출신 음식점 사장 이광호씨의, 삶의 의미 전부라는 듯이.
아무튼 오늘 맛본 이 호사스런 백반의 정가는 8천 원이다. 비슷한 메뉴를 내는 식당이 인천 땅에 적지 않겠으나, 전동집의 음식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옛 맛의 명맥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고마워서 더 흡족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문의 : 819-3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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