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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한 올 인생을 엮은 추억의 공간

2013-12-10 2013년 12월호


한 올 한 올 인생을 엮은

추억의 공간



찬 바람이 불고, 차가운 기운이 몸 속을 파고드는 겨울이 오면 따듯함이 간절해진다. 겨울에 생각나는 따듯한 것들 중 으뜸은 복슬복슬 털실로 짠 목도리, 장갑, 양말, 모자다. 옷감이 귀한 시절엔 털실로 조끼, 스웨터를 떠서 입었고 지금은 패션 리더들의 액세서리인 코디용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털실은 어제나 오늘이나 사랑과 따듯함의 대명사다.

 
글 이용남 본지편집위원  사진  조병석 자유사진가




1962년 송현동에 첫 간판 달고 영업
인천 털실가게하면 송현모사다. 1962년 송현동에 간판을 내건 이후 털실을 사러 인천 시민들은 송현모사로 갔다. 이곳에 오면 없는 실이 없고, 빛깔곱고 예쁜 털실이 가득했다. 가게 주인은 신춘심(87)할머니다. 17살 어린나이에 황해도 사리원에서 피난을 나와 송현동에 정착한 신 할머니는 뜨개질 솜씨가 좋았다. 7세때부터 시작한 손뜨개질은 못 뜨는 옷이 없을 정도였고, 옷본을 보면 그대로 재현할 정도로 탁월했다. 집에서 실도 팔고 의뢰받은 털옷들을 떠주면서 할머니는 그 동네의 재주꾼이 됐다.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일이 잘 되고 돈도 모이자 송현동 중앙시장에 가게를 얻었다. 그때가 1962년이다. 당시 중앙시장안에는 이미 털실가게가 서너 개가 있었다.
신 할머니는 가게를 열면서 서울의 동대문이나 남대문의 털실가게처럼 이름있고 잘 되는 가게를 갖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50년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할머니는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아침 6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12시까지 일을 했다. 송현모사가 잘 되면서 주변에 손뜨개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겼다. 송현모사를 중심으로 한때 10여  개 가까운 털실가게들이 옹기종기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사람들은 기억속에서 그 거리를 추억할 뿐이다.
“그때는 먹고 살게 없어서 열심히 뜨개질하고 실 팔면서 살았어.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장사한 거지. 뭐든지 열심히 하면 살게 되있어.”



50년을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쉼 없이 일해
신 할머니는 털실가게를 운영하면서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가게가 너무 잘돼 정신없이 장사를 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겨울이 되면 손님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11월부터 1월까지가 털실가게의 대목이다. 할머니는 장사가 잘 되니까 힘든줄 모르고 쉼 없이 일했다.
어스름한 새벽에 나와 혼자 물건을 정리하고 가게를 예쁘게 꾸밀 숄, 조끼, 모자, 목도리를 떠서 사람의 눈길을 끌도록 꾸며 놓곤 했다.
할머니와 달리 장사 기질이 없던 할아버지는 집안을 챙기는 일을 맡았다. 부부가 역할을 나눠 집안을 책임졌다. 할머니가 청춘과 젊음을 바쳐 일했던  송현동 가게는 5년 전 헐렸다. 송현동이 재개발 되면서 그 자리에 동인천역 북광장이 조성됐다. 송현모사는 현재 신포시장 뒷골목에 자리한다.
송현모사가 이곳으로 옮겨온 뒤 죽어있던 이 골목이 활기를 되찾았다. 사람의 발길이 뜸 했던 뒷골목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50년 전 송현동처럼 근방에 털실가게가 두어개 새로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가게가 잘되는 이유가 물건 가짓수가 많고 가격이 저렴한 것 때문으로 분석한다.
신춘심 할머니도 세월은 비껴가지 못했다. 고령에도 건강을 자신했지만 최근 노환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세월엔 장사가 없다. 세월은 할머니 뿐만 아니라 단골손님들의 연령도 높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해맑은 모습으로 이 가게를 드나들었던 소녀들은 이제는 다 할머니 손님이 됐다. 손님과 주인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할 얘기가 많은 가게가 됐다.



사람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가 흘러
할머니는 최근 가게 운영을 아들과 딸에게 물려주고 ‘총감독’이 되어 뒷자리로 물러났다.
그래도 자신의 인생의 뼈를  묻은 가게에 매일 나와 손님들과 인사하고 가게를 돌본다. 손님들도 집에서 떠온 손뜨개를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보고 할머니는 “잘 떴어”하고 칭찬하면서 정을 쌓는다. 여기서 털실을 사면 기본적인 손뜨개 방법을 알려준다.
12월부터 1월까지는 가게가 가장 바쁜 시기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에는 목도리실이 잘 나간다. 요즘도 털실로 모자, 워머, 수세미 등을 뜨는 사람들이 많다. 정성과 사랑을 담아 뜬 손뜨개를 선물하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털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온기를 전하는 물건이다. 그래서 송현모사는 한올 한올 인생을 엮는 추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손뜨개로
봉사하는 사람들


행복을 뜨는 사람들
손효숙씨는 손뜨개 강사다. 인천여성가족재단, 서부여성회관, 화도진복지관에서 목도리, 장갑, 양말 등 털실로 할 수 있는 손뜨개 방법을 강의한다. 손씨도 강사활동을 위해 손뜨개 공부를 13년간 했다. 그녀는 6년 전부터 ‘행복을 뜨는 사람들’이라는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손뜨개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동아리는 처음 5명으로 시작해 지금 1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실을 사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외계층을 위해 목도리, 장갑, 양말을 뜬다. 그간 뜬 작품들은 매년 전시회도 열고, 수세미 등의 소품도 판매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쓴다. 회원들이 뜬 목도리, 장갑, 모자 등은 독거노인, 미혼모, 영아 시설 등에 기부한다. 올해는 모자 50개를 떠서 어린이집에 보낸다.
손씨는 사랑과 정성을 담아 뜬 목도리, 모자가 정말 필요한 곳에 전달되어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핸드&핸드 포그니 손뜨개방
남구자원봉사센터가 운영하는 손뜨개 자원봉사 모임인 ‘핸드&핸드 포그니 손뜨개방’은 회원들이 직접 뜬 목도리, 모자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사랑의 모임이다. 2010년부터 시작해 봉사자들이 자비를 들여 실을 사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사랑과 정성을 담아 뜨개질을 한다. 모임은 손뜨개 자원봉사자 대략 200여 명과 손뜨개질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핸드&핸드 포그니 손뜨개방이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노인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이 병원에 갈 때 머리에 쓸 모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들으면서다. 작년까지 4년간 모자, 목도리만 1천217개를 떠서 전달했다. 장애인, 노숙자, 노인들은 아무도 자신들에게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달받은 선물에 다들 따듯한 감동을 느낀다. 포그니 손뜨개방은 올해도 봉사자들이 정성가득 뜬 털실 목도리를 이달 17일에 전달한다. 목도리와 모자는 예쁜 종이 손가방에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포장되어 노인시설과 보육원에 보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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