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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처럼 화사하고 황홀한 자춘걸

2013-12-10 2013년 12월호

 

봄날처럼

화사하고 황홀한, 자춘걸



글 김윤식 시인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중구 신생동 9-12번지 중국 음식점 신성루(新盛樓)에는 추억이 서려있다. 1963년 3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이 집에서 이웃 여중학교 동기생들과 짜장면과 야끼만두에 그 독하기 이를 데 없는 백알까지 몇 잔 마셨기 때문이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는 애송이 주제에 마치 인생 끝에 다다른 것처럼 기고만장해서 술을 마신 작태가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코웃음이 절로 난다.



돈 없는 연인들의 짜장면 데이트 공간 
식장에서 받은 졸업 앨범과 졸업장을 말아 집어넣는 길고 둥근 통을 옆구리에 끼고 2월의 추위에 얼굴이 얼어붙은 채 신성루 문을 밀고 들어서던 생각이 아주 선연하다. 그 당시 중국인 주인이 아무 까탈 없이 교복 입은 우리들에게 술을 내주던 것도 참 용하게 생각되는데, 그에 한 술더 떠 우리를 골방 쪽으로 배려해준 것도 신기할 정도다.
하기야 당시는 사회 기강이 엄하고 고작 중학생을 면하는 풋 나부랭이들이 중국집에서 백알을 마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시절이었으니 어쩌다 이런 돌출(突出)들의 만용을 오히려 대견(?)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당시는 오늘날처럼 주민증을 확인하고 어쩌고 하는 일은 애초에 없고, 오히려 미성년자 스스로가 아예 이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그때는 중국집이 젊고 가난한 데이트족들의 큰 의지처였다. 데이트를 하려면, 남녀 두 사람 분의 커피값과 식대 그리고 둘만이 있을 공간 비용이 필수인데 중국 음식점에서는 이것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던 것이다. 짜장면 두 그릇을 시키면 충분한 중국 엽차가 제공되고 적어도 1시간 가량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온돌 골방에 안온하게 머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성루가 그런 ‘고마운’ 명성을 많이 듣고 있었다. 중국인이지만 주인 영감이 참으로 너그러웠던 모양이다. 해서, 인천 모 고등학교 학생과 여학생의 모모한 이야기도 흔히 입에 오르내리고는 했다. 오늘날은 그때 그 방들의 크기와 구조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래도 큰 형태는 대강 남아 있어 아련히 추억을 되살린다.
아차, 음식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너무 많이 흘렀다. 신성루에 관한 옛 생각이 두서없이 감정을 뛰게 한 까닭이리라.
오늘날은 청관(淸館), 곧 차이나타운 쪽이 대대적인 선전에 힘입어 청요리의 본고장처럼 되었지만, 그곳이 활기를 되찾기 이전부터 반세기 넘게 중구에서 요리 맛을 지켜온 곳들이 있다. 우선 신흥동 로터리의 신일반점, 초마면(짬뽕의 본명이다)이 좋은, 옛 신흥카바레 골목의 신동양, 중앙동의 진흥각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신성루가 그 집들이다.
그 외에 신흥로터리 서남쪽 모서리에 있던 혜빈반점이 특히 음식을 푸짐하게 내 이름을 얻었었는데 도시 재건축으로 헐려 나가고 없다. 경동사거리 용풍루도 청요리 전통을 꿋꿋이 지켜왔지만 햄버거집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씨채널인가 하는 안경점이 들어 성업 중이다.
중학 졸업 때 해프닝 말고, 그 후 신성루를 드나들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직장을 그 근처로 잡은 까닭이다. 점심이면 주로 ‘유니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유니’는 ‘육니(肉泥)’의 중국 발음으로 돼지고기를 아주 ‘진흙탕처럼(?)’ 진하고 잘게 갈아 춘장과 볶는 것을 의미한다. ‘유모짜장면(肉末炸醬麵)’이라고도 하는데 다소 느끼한 듯한 여느 짜장면과 달리 아주 맛이 고소하고 별났다. 지금도 이따금 들러 이것을 주문한다.




해삼주스, 부드러운 맛에 노인들 보양식
옛날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 종종 추천해 주시던 자춘걸(作春卷)은 말 그대로 이 집 명물이다. 이것을 먹으려면 미리 주문을 하든지, 아니면 좀 한가한 시간에 가서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웬만한 중국집에서는 시간이 걸려 메뉴에 잘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춘걸은 우리 식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계란말이인데 알반대기 곧 계란 지단에 죽순, 해삼, 새우, 동구버섯, 양파, 부추 등등을 볶아 얹고 둘둘 말아 살짝 지진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는다. 맛이 봄날처럼 화사하고 황홀하다. 옌타이고량주에도 참 잘 어울린다. 지난봄을 의미하는 ‘작춘’에 두루마리 ‘권’이니 ‘지난봄을 말았다’가 된다. 요리 이름치고 매우 낭만적이다. 어느 집은 이 글자를 ‘炸’이라고도 쓴다.
회식 때 주문하는 요리로 전가복(全家福)이나 해삼주스(海蔘?子)를 빼놓을 수 없다. ‘집안의 평화와 복을 기원하는 음식’이라는 전가복은 송이, 표고, 전복, 해삼, 새우, 오징어 등이 들어가 육류를 피하는 사람들에게 좋다. 입 안에서 아주 부드럽고 얌전하게 씹힌다.
해삼주스도 이 집 것이 명성이 있다. 원래는 해삼에 돼지의 팔꿈치에 해당하는 다리 살을 넣어 만드는 요리라는데 요즘은 삼겹살을 주로 쓴다고 한다. 노인들이 먹기에 더없이 부드럽고 또 보양도 된다. 술안주로 뛰어나다.
대중적인 요리로 신성루의 대표적인 것이 난자완스(南煎丸子)다. 자랄 때 집의 애들을 자주 먹였다. 이 집 난자완스는 한마디로 살이 부드럽다. 다른 집에서 종종 습기 없이 뻣뻣한 것을 대하는데 그것은 속성으로 기름에 튀겨내기 때문이다. 신성루는 시간과 공력을 들여 지져낸다. 걸쭉한 전분 소스를 뒤집어 쓴 고기 지짐이 덩이와 버섯류들, 푸른 배추가 잘 어울려 보는 것만으로도 접시가 호사스럽다. 그 풍부한 맛은 닭고기 육수가 가미되어서 난다고 한다. 
기호대로 이 집 요리를 하나 더 소개하자면 오향장육(五香醬肉)을 들겠다. 오향은 회향풀, 계피, 산초, 정향, 진피?등의 향이라고 하는데 신성루에서는 통 속에 든 팔각(八角)이란 것을 내보인다. 매우 독특한 향을 가졌다. 이런 향료를 넣고 간장에 돼지고기를 조려 내는 것이다. 적당한 두께로 저민 돼지고기와 그 밑에 깔린 오이, 곁들이 달걀 삭힌 것들이 단정하고, 오묘한 향과 함께 입안에서 가지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40년의 요리경력이 내는 깊고 풍부한 맛     
이밖에도 삭스핀, 해삼탕, 동파육, 양장피, 탕수육, 깐풍기, 팔보채 깐소새우, 잡채, 냉채, 면보하 등등이 있는데, 중국의 수백 가지 요리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한 끼니 식사로 먹을 것!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짬뽕 두 종류를 소개하고 이쯤에서 그치자. 짬뽕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식 이름이 초마면(炒馬麵)이다. 어렸을 때는 초마면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왜 짬뽕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신성루 짬뽕은 옛날부터 정평이 있었다. 맵지 않은 하얀 짬뽕과 붉은 고추짬뽕으로 나뉘는데 흰 짬뽕은 속을 자극하지 않고 부드럽고 구수하게 가라앉힌다. 매운 고추짬뽕은 다소 자극적이지만 국물에 무슨 열정이 배어 있는 듯 맛이 화려하다. 여기에 해산물 세 가지가 더 들어가면 이른바 ‘삼선’ 운운하는 음식이 된다.
애초에는 월병을 팔던 상점이었는데 6·25 전에 요리점으로 전업을 했다. 원 주인은 7,8년 전에 작고한 산동성 출신 이영은(李永恩) 씨였다. 현 장덕영(張德榮, 55세)씨의 외삼촌으로 이 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며 장씨에게 음식점을 넘겨준 것이다. 그것이 1987년. 26년이 흘렀다. 그동안에 ‘신생반점’에서 ‘신성루’로 상호도 바뀌었다. 장씨는 북성동 중산(中山)학교를 나와 이내 이씨 밑에서 요리를 익혔다고 한다. 그 이력만 대략 40년 가깝다. 이런 숙수(熟手)가 내는 요리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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