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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풀공예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다
짚풀공예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다
강화화문석문화관
우리민족은 농사의 부산물인 짚, 산야에서 자생하는 풀을 이용해 고유한 문화를 형성했다. 산모가 출산할 때는 짚이나 풀로 만든 자리를 깔아줬고 이엉과 용마름을 엮어 만든 초가집에서 살았다. 또, 주검을 이엉으로 덮어주는 초분(草墳)이란 장례법을 행하기도 했으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짚, 풀과 함께 한 것이다. 김경웅(가정초 4년), 건우 형제와 장지영(가좌초 3년), 나영(가좌초 1년) 자매는 우리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짚, 풀의 결정체 ‘화문석’이 뭔지 잘 모른다. 그저 아름다운 가을햇살 속 강화 여행에 잔뜩 들떠있을 뿐이다.
글-한정민 (전 더클래스 기자) | 사진-김성환 (자유사진가)
화려하되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푸른 하늘, 황금 들녘, 한들대는 코스모스, 곱게 물들 채비를 하는 나지막한 산…. 강화화문석박물관을 찾아가는 내내 가을은 그렇게 일행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화문석(꽃 모양의 자리)과 가을은 참 많이 닮았다. 둘 다 화려하지만 눈부시지 않다. 가을 하늘이 하얀 구름을 모두 빨아들인 듯한 청명한 모습이라면, 화문석은 바라볼수록 눈길을 잡아당기는 깊은 멋을 풍긴다. 정성을 다한 시간에 대한 결실이란 점 또한 마찬가지다.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에 자리한 화문석박물관은 가슴 시원하게 펼쳐진 넓은 들과 산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멀게는 한강 하구 건너 북녘 땅도 눈에 들어온다.
“어? 우리 여기 와봤어요.” 아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은암 자연사박물관을 보며 반가워한다.
화문석박물관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는 자연사박물관 옆이기 때문일까? 궁금증은 강화화문석박물관 직원 허성자 씨를 만나자 곧 해결됐다.
“화문석의 유래는 문헌에 기록된 것이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고려 중엽부터 가내수공업으로 발전했죠. 90여 년 전 조선왕실로부터 화문석의 도안을 특색 있게 제작하라는 하명을 받고 한충교 선생이 연구를 거듭해 무늬를 넣은 화문석 제작에 성공했어요. 그때부터 다양한 도안과 제작기술 개발로 오늘에 이르게 된 거예요. 백색자리 생산지인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는 바로 한충교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이랍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요로운 마을인 것이다.
화문석박물관 허성자 씨의 안내에 따라 화문석의 주재료인 왕골의 재배와 가공에서부터 왕골공예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손가락 하나하나로 엮어낸 명품
화문석의 주재료인 왕골(완초)은 겉이 매끄럽고 광택이 있는 풀인데 1.5~2m로 다 자라면 황색을 띤다.
왕골이라는 이름은 많이 접했어도 직접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네 친구들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왕골 품종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짚, 풀과 왕골의 세포 조직를 현미경으로 직접 비교해 보는 기회까지 얻었다. 마른 상태라 현미경 관찰이 쉽지 않지만 친구들은 각기 다른 모양을 찾아냈다며 즐거워한다.
왕골은 세모모양의 솜 조직을 갖고 있다. 그 솜 조직이 수분을 흡수해 여름에는 뽀송뽀송하고 시원하며 겨울에는 냉기를 막아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 뿐만 아니라 솜 조직이 쿠션역할까지 해 오래 앉아있어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왕골로 만든 화문석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과학’이다.
바닥에 까는 자리로는 페르시아나 터키 등에서 양털로 만든 카펫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왕골로 만든 화문석이야말로 계절에 따라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최고의 명품인 셈이다.
지영이 경웅이가 설명을 듣는 사이 유치원생 건우와 1학년인 나영이는 어느새 왕골의 재배와 가공, 그리고 화문석 제작과정이 재현되어 있는 대형 디오라마 전시관 앞으로 뛰어가고 있다.
왕골을 5월 말경 심어 8월 초에 수확해 3쪽으로 쪼개어 건조시킨 뒤 다시 물에 불려 칼등으로 훑어낸다. 그런 다음 물감을 들여 고드레 돌의 날실을 이용해 화문석을 엮어내는 모든 과정이 순서대로 재현돼 있다.
“약 60만 번의 손을 움직여야 한 장의 화문석이 완성됩니다. 뼈마디가 저리도록 고된 노동이죠.”
허성자 씨의 설명에 친구들은 할 말을 잃는다. 조상들의 인내와 끈기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특히 강화화문석은 다른 지역에서 제작되는 돗자리와는 달리 왕골에 물감을 들여 화려하고 정교한 무늬를 수놓은 최상품으로 예로부터 궁궐의 장식과 제례, 혼례와 같이 품위와 품격을 갖출 때 사용했지요.”
전시되어 있는 옛 문헌 ‘삼국사기’‘고려사’‘태종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고급공예품인 화문석에 관련한 기록이 있다.
현대 주거공간에도 잘 어울려
현존하는 화문석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등메’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도 보고, 중요무형문화재 완초장 이상재 선생의 작품과 그의 제자들의 작품도 감상했다. 붓으로 그리라고 해도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데다 황홀하면서도 은은한 색감을 대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숙련된 장인 6명과 연인원 240명을 투입해 무려 40일에 걸쳐 제작되었다는 지름 3.3m의 대형화방석을 보자 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을 벗고 올라가 앉아본다.
화문석은 목적에 따라 변신한다. 화방석(문양을 넣어 만든 왕골방석)이나 꽃삼합(크기가 서로 다른 세 개의 왕골이 한 세트를 이루는 공예품) 등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최근엔 시계가 달린 장식품, 목걸이, 브로치 등으로도 선을 보이고 있다.
“웬 아파트 거실?” 아이들이 의아해 한다. 그러고 보니 전시 공간 한 쪽에 아파트 거실이 연출되어 있다. 일반거실과 다른 것은 화문석이 비닐장판, 카펫, 레자방석, 각종 플라스틱 제품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아하면서도 소박함을 잃지 않는 은근한 멋이 화려하고 편리하기만 한 인공섬유로 만든 제품들과는 다른 품위를 전한다.
아이들은 소파 위 화방석에 앉아 화문석에 관한 짧은 영상물도 시청했다.
“어, 컴퓨터다!” 박물관에 웬 컴퓨터인가 싶었는데 ‘화문석 도안 만들기’ 체험공간이다. 디자인 프로그램이 왕골을 모눈종이처럼 보이게 하는데 그곳에 원하는 이미지를 가져오고 표현하고 싶은 색을 지정하면 된다. 도안을 해봤으니 이제 직접 왕골을 엮을 차례.
“자 이제 왕골로 직접 소품을 만들어볼까요?”
화문석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친구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제안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1층 체험공간으로 달려간다.
“다음에 왕골 엮기 다시 해 볼래요”
1층에는 일반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마음에 드는 왕골공예품의 구입도 가능하다.
체험학습장에 들어서니 실이 감긴 고드레 돌 여러 개가 나무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이들은 나무틀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는다. 마침 곧 있을 왕골공예품 경진대회 출품작을 준비 중이던 전순애 씨가 친구들의 왕골 엮기를 도와준다.
“왕골은 풀이니까 물이 없으면 꺾여요.” 스승님의 말에 친구들은 재빨리 물통 속에 왕골을 담그는데... 곧 이은 스승님의 지적. “어? 너무 오래 담가놓으면 불어서 안돼요.” ^^
왕골을 하나씩 잡고 통통하게 안감을 댄 다음 틀 위에 가로로 올려놓고 고드레 돌을 감는다. 처음에 어찌할 줄 모르던 아이들이 15분 정도 지나자 가속도가 붙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씨줄과 날줄을 얽듯 엮는다.
“주황색도 주세요~” 7살 건우까지 어찌나 열심이던지 일정상 작품 만들기를 중단시켜야 상황이 무척 미안할 정도였다.
채 완성하지 못한 작품을 두고 일어나며 경웅이가 미간을 찌푸린다.
“허리가 너무 아파요.” 그래…. 그래서 예부터 화문석 만드는 자리틀을 ‘골병틀’이라 했단다.
옆에 있던 지영이도 한마디 거든다.
“처음에 전시품 가격표를 보고 놀랐는데…. 이렇게 힘들게 만드니까 더 비싸야 할 것 같아요.”
화문석의 멋에 흠뻑 취한 나영이 지영이 경웅이 건우는 이미 느꼈을 것이다. 화문석은 단순한 돗자리가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그 유산은 수 백 년 동안 조상들의 땀방울과 거친 손마디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고 이제 유산을 계승해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까지….
체험학습 신청 안내
화문석 문화관에서는 화문석 왕골공예소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체험을 통해 왕골공예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는 체험 학습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만 12세 이상 신청 가능하다. 또 사방 20cm 크기의 미니 화문석과 왕골 악세사리를 1~2시간 정도면 직접 만들어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어 더욱 흥미롭다. 체험 학습료는 개인 5천원(10인 이상 가능), 단체 4천원(20인 이상)이다. 1주일 전에 전화(032-932-9922)로 예약 신청할 수 있다.
화문석문화관 관람 안내
관람시간 : 9:00~19:00
매표시간 : 9:00~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문의 032)932-9922
수강생 모집안내
모집대상: 만 18세 이상
신청방법: 전화예약신청
수강기간: 3개월(주2회 수, 금 10:00~12:00)
수강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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