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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유행이래~

2006-10-01 2006년 10월호

이게 유행이래~
세월 따라 유행도 멋도 다르다지만 요즘 아이들의 옷차림은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던중 아이들이 옷을 뒤짚어 입고 나온 것이 아닌가? 회사 로고가 밖으로 나오고 옷 시접이 그대로 보이니 ‘쯧쯧 얼마나 바쁘면 저렇게 뒤집어 입고 나왔나 ’라는 생각에 집에 돌아와 그런 이야기를 큰 놈한테 하니 “엄마 그게 유행이야”라고 생뚱스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역시 세월이 빚어 놓은 유행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뭐 그런 경우가 유행인가 마음속으로만 혼자 말해 본적이 있다.
지금처럼 철철이 유행이 바뀌기 전인 결혼 전. 아마 지금처럼 철이 넘어던 때, 맘먹고 장만한 가을 스웨터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선뜻 마련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옷을 마련하고 몇 번 입어보고, 거울보고, 색깔 다른 아래와 맞추어 보고…. 그런데 다음날 늦잠을 잤다. 엄마가 밥먹고 가라는 부름도 뒤로 하고 어제 닳도록 입어보며 맞춰 보았던 옷들과 함께 서둘러 나왔다. 버스를 타고, 내려 회사까지 걷는 길. 이상하게 버스부터 부러움을 담은 사람들의 시선과 함께, 걷는데도 뒤통수가 따갑도록 내리 붓는 시선들. ‘역시 큰 맘 먹고 사길 잘했지, 멋진 옷은 사람을 만든다니까’하며 어제 새로산 옷을 자꾸 매만지며 서둘러 회사로 향했다
역시 당당하게 사무실로 가며 옷에 쏟아지는 찬사에 어찌 답할까 생각하는데 “미스김 옷이 뒤집혔네”라는 과장님의 한 마디. “어 ! 그러네요.”라고 답변하고는 옷 자랑은커녕 얼른 벗어 옷걸이 신세를 져야 했다. 그 후 한참동안 그 옷을 입지 못했다. 버스를 타도, 걷는 길에도 그 쏟아지는 찬사로 오해했던, 뒤집힌 옷을 안쓰러워하던 뭇시선들이 다시 그날을 기억할까봐 회사 근처에서는 그 옷을 입지 못한 채 계절이 지났다.
가끔 그렇게 뒤집힌 것 같은 옷들, 찢어진 옷들을 보며 튀고 싶어하는 그들만의 정서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정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김정례 (남구 주안7동)



아버지의 양복
나의 아버지. 어릴 적에는 아버지란 존재가 일하고 돈만 벌어 오시는 분 인줄 알았습니다. 학교에 가려고 눈을 뜨 어느새 출근하고 안 계신 아버지. 그리고 학교 갔다 와 친구들과 밖에서 실컷 놀고 집에 들어와 잠을 자고 있으면 들어오시는 아버지. 그런 모습만 보고 살아왔으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요. 그렇게 세월이 가고 저는 어느새 스물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결혼식을 준비할 무렵. 아버지의 양복을 준비하려고 아버지에게 양복을 맞추러 가자고 했지요. 그러자 아버지는 “괜찮다. 그냥 입던거 입으면 되니 그 돈 아껴 너 필요한거 사거라. 결혼 준비에 돈도 많이 들어가는데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하셨습니다.
전 사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돈을 벌어다 주실 줄만 아셨지 정작 당신을 위해선 궁색했던 아버지. 그러나 결혼자금이 많이 부족했던 터라 철없는 저는 “그럼 그냥 있는 거 입으셔요”라고 말하곤 안방에 있는 아버지의 옷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불효자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옷장 안에는 정말 아버지가 입던 양복 두벌이 들어있었습니다. 단 두 벌…. 어릴적 보던 아버지의 양복, 10년도 훨씬 넘어 말 그대로 촌스럽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양복. 지금은 배불뚝이 사장님이 되어서 들어가지도 않을 듯한 양복, 이런 양복을 어떻게 다시 입으신다고….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있을 무렵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가 그럼 지금껏 제대로 된 양복 하나 없이 사신거구나 생각해보니 소위 남들 말하는 노가다에 요식업계에 종사하시다보니 남들처럼 젠틀하게 양복을 입으실 기회가 없었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아른거렸습니다.
저는 얼른 아버지를 모시고 양복점에 가서 비싸진 않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양복 한 벌을 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날. 양복 입으신 아버지의 모습은 매일 가운만 입고 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딸의 결혼을 바라보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모습이셨습니다. 옷이 날개라더니 딱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결혼식 날 한번 입은 양복은 또 어차피 옷장 안에서 몇 년간 숨죽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 양복을 보면 그날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듯 합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셨던 아버지에게 이제는 조금씩 효도하고 살아야겠습니다.
윤서연 (남구 주안6동)



엄마의 뜨개 옷
“엄마 추석이니까 주황색 원피스 사주 세요.” 지금부터 32년 전 엄마와 시장에 갔던 나는 고집을 부리며 옷가게 앞에 서있었다. 그 때는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는 때가 설날, 추석, 생일, 소풍 정도였으니까 어떻게 하든 한 벌 얻어 입어야 했다. 그래서 명절이 지난 다음날 등교를 하면 아이들이 거의 새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중 몇 아이는 옷이 똑같기도 했다. 아무튼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엄마는 집으로 향하셨다. 나는 입을 쑥 내밀고 터덜터덜 뒤쫓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엄마는 당신의 스웨터를 푸셨다. “세란아, 이 실에 새 실 섞어서 엄마가 원피스 떠줄게”. 나는 서러워서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맨날 떠준대, 난 떠준 옷 싫어. 예쁜 시장 원피스 사줘요.”
이제 칠순이 가까운 어머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더 이상 뜨개질을 못하신다. 다만 나는 어머니가 떠주신 다섯 벌의 옷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오세란 (서구 원당동)



추석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시골에 살았습니다. 지금 도시에서 산 삶보다 시골삶이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데도 자꾸만 시골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왜 그런가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추억이 많아서인가 봅니다. 어렸을 때 시골생활은 정말 저에게 보물과 재산입니다. 너무너무 보고 싶고 가고 싶은 시골. 그때는 그게 행복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석명절이 다가오던 때가 생각납니다. 할머니와 엄마가 떡을 하려고 쌀을 불려서 깨끗이 씻어서는 경운기를 타고 다른 동네에 가서 떡가루를 만들어 오셔서 이내 떡을 만드십니다. 먹음직스런 모양과 색깔, 냄새가 정말 좋습니다. 명절이면 도시에 돈벌러 나갔던 고모와 삼촌이 내려오셔서 이내 즐거운 가족모임이 되곤 했습니다. 특히 고모들은 그동안 땀 흘려 번 돈으로 내 추석빔을 사오곤 했습니다. 그 새 옷을 입어 보노라면 어찌 그리 즐거웠던지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왔습니다. 자주색 원피스였는데 윗옷에는 조끼도 달려있고, 치마는 공주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마치 공주가 된 것처럼 기뻤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옷을 입고 저는 친구들에게 가서 자랑을 하고 으쓱대곤 했지요. 친구들도 저마다 친척이나 형제자매가 옷을 사왔다며 자랑을 했지요. 마을은 잔치가 벌어진 것처럼 시끌벅적했고 오랜만에 모인 형제자매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했습니다. 우리는 덩달아 신이 나고 저녁에는 까만 하늘에 떠있는 하얀 둥근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강강술래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너무 그립습니다. 뒷동산에 밤나무가 토실토실 영근 알밤을 토해낼 때면 너무너무 맛있고 구수했습니다.
아득한 저편너머로 나의 추억은 이제 조금씩 멀어져 가려합니다. 여유가 되면 다시 한번 고향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그리운 나의 고향은 저를 푸근하고 넉넉하게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주겠죠. 역시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고향은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박미영 (연수구 옥련동)


 


내 일생 최고의 옷
나는 일남 삼녀 중 맏딸이다. 오빠 그리고 내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다. 7.80년대 우리나라가 요즘처럼 잘 살지 못했을 때 옷을 사서 입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때 나와 동생은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교복을 맞추어서 입고 학교에 다녔지만 동생과 나는 엄마가 남대문시장에 가서 사가지고 오신 교복 비슷한 색과 옷감에 명찰만 박아서 입고 다녔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더욱 힘이 들었다. 교복 자율화가 되면서 사복을 입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행복한 고민은커녕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서 내심 민망하기까지 했다. 고등학생 때는 남자 교생선생님이 오시게 되어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들떠 있었고 나름대로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옷 사달라고 조르고 또 졸라서 엄마의 쌈짓돈을 뺏다시피 하여 돈을 얻을 수 있었다. 기쁨에 시장까지 한걸음에 날아서 옷가게를 기웃기웃 거렸다. 고모나 이모들이 사 오시기는 했지만 내 마음대로 옷을 고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도 없이 내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로 산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데 왜 그렇게도 어색하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아 쑥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했던 고교시절이었지만 지금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추억이었다. 그 옷을 입고 등교하던 그날 우연히도 아님 필연인지도 모르지만 교생선생님과 몇몇 팬(?)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직 그 사진이 나의 앨범에 남아 있어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며 엄마를 조르던 철없던 나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되었기에 예쁜 딸은 아니지만 잘 생긴 아들 둘과 함께 늘 옷을 사 줄 수 없어 여기저기서 대물림 받고 있다. 세탁 잘 해서 번쩍번쩍 윤이 나는 옷을 입고 겉모양보다는 내면에 더욱 충실 하는 삶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변미성 (서구 가좌2동)


 


 


 


다음달 글의 테마는 ‘차(車)’
다음달 테마는 ‘차(車)’입니다. 차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사연을 글로 보내주세요(200자 원고지 3매). 사진은 주제와 관계없이 계절과 어울리는 재미있고 사연이 담긴 작품을 보내주세요. 책에 실린 분께는 작은 선물(문화상품권 1만원권 1장)을 보내드립니다. 게재된 사진을 돌려받기 원하시는 분에게는 돌려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실 곳 _ 우편번호 405-750 인천광역시 남동구 시청앞길 25(구월동 1138번지) 인천광역시청 공보관실 <굿모닝인천> 독자마당 담당자 앞 / 인터넷 신청 :
http://goodmorning.incheon.go.kr → 독자마당에 올려주세요. 마감은 10월 16일까지 입니다. 응모하시는 분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정확하게 기재하셔야 접수가 됩니다. (문의 _ 44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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