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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다고 어찌 차향(茶香)을 잊으리

2003-11-01 2003년 11월호


강화는 어느 때나 건너가도 우리에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즈음 그곳에 가면 은빛 억새가 객들을 반겨준다. 따듯한 차 한잔이 그리운 계절, 차향을 쫓아 강화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보자.

 


차나 한잔 들고 가소
강화도에서 은은한 차향을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은 선원사(禪源寺)이다.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에 있는 선원사는 1232년 고려 무신시대 최고의 실력자인 최우에 의해서 세워진 사찰이다. 몽고 침략에 쫓긴 고종은 수도를 개경에서 임시로 강화로 옮긴다. 국난위기의 상황을 불력(佛力)으로 막기 위해 강화도에 장경도감을 설치한 뒤 장장 16년 간에 걸쳐 81,258자의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였다. 그 판각지가 바로 선원사이다.
선원사지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지로만 알려져 오다가 지난 1994년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차맷돌과 청자 찻잔 등이 발견됨으로써 선차문화(禪茶文化)의 현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선차는 선승들이 깨우침을 향한 방법으로 마셨던 차를 일컫는다.
차맷돌을 비롯해 선원사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유물들은 선원사 대웅전 지하의 유물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그곳을 찾았을 때 전시관 입구에서 스님 한 분과 마주쳤다. 차맷돌을 보러 왔다고 하니 다정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전시관 입구에는 ‘차나 한잔 들고 가소’라고 적힌 다보(다기를 덮는 보자기)가 걸려있다. 무인(無寅) 스님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가자 낯선 차의 향기가 배어났다. 차맷돌은 전시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차맷돌은 선원사의 동쪽 도감마을 뒤 신동산 기슭에 있는 우물터 지하 5m에서 맷돌 아랫부분 없이 윗부분만 발견됐다. 모란꽃이 양각되어 있는 이 맷돌은 지름 30㎝, 높이 20㎝ 크기로 학계에서는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차맷돌은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면서 불전에 공양하기 위해 차를 갈던 맷돌일 거라고 보고 있다. 맷돌과 함께 청자 잔과 접시도 나왔다.
발굴된 지점은 물이 고여있는 습지로 연못과 우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이곳에 있다가 처형당한 신돈은 선원사의 각종 유물을 우물 속에 넣고 죽었다고 전해 온다. 이후 선원사는 흔적조차 없는 폐허로 변했다. 선원사가 폐사되면서 우물과 연못은 모두 매몰됐다.
차맷돌을 글귀로 남겨 역사의 무대에 세운 이는 고려시대 문신 이규보(1168~1241)이다. 몽고난을 피해 임금모시고 이 부근에 살던 이규보가 선원사에 종종 들러 차와 술을 즐겼다. 취하고 싶으면 술을 마시고 깨고 싶으면 차를 마셨다는 그는 차맷돌을 선물받고 시를 남겼다.
「돌을 쪼아 만든 바퀴 같은 맷돌/ 빙빙 돌림에 한팔이 수고롭다/ 그대 어찌 차 마시지 않으리오. 나의 초당에 보내 주었느뇨/ 내 심히 잘 즐기는 줄 알아/ 이것을 나에게 보내준 것이리. 푸르고 향기로운 가루 갈아내니/ 그대의 뜻 더욱 고마워라」
40여 편의 차시(茶詩)를 남긴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차를 즐겼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산115번지에는 선생의 묘소가 있다. 묘소 앞에는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문인석과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차향에 실려온 천년 세월
무인 스님은 “차나 한잔 들고 가시지요” 하고 객들을 차방으로 이끌었다. 방에는 갖가지 차와 차기 그리고 크고 작은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마치 소꿉장난 할 때 쓰는 그릇처럼 앙증맞다. 그 속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깨진 그릇 조각들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청자 파편조각이 이제는 찻잔 받침으로 그 쓰임새가 바뀌었다.
스님은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치면서 차를 끓였다. 다도(茶道)에 익숙치 못한 사람은 이 시간이 조금은 어색한 시간이다. 이러한 마음을 헤아렸는지 스님은 차를 타면서 차에 대한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이내 이름 모를 차향이 방안에 가득 찼다. 이 향을 어디서 맡았더라… 유물전시관에서 맡았던 바로 그 향이었다. 연꽃 잎 차. 이름만 들어도 마치 향이 나는 그런 차였다. 이 차는 선원사 주변에 심은 연꽃에서 딴 잎으로 만든 차다. 철이 지나 꽃은 다 시들었지만 차향은 남아있다.
차의 따스함이 찻잔 받침까지 전달되면서 천년 세월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한잔의 차를 마신다는 것은 어울림이다. 차와 물, 차와 차기, 차와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이다. 찻물을 끓일 때 물과 불은 분명 대립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물과 불이 어울릴 때 신묘한 찻물이 된다.
따스함을 몸에 지니고 절 건너편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에 올랐다. 차밭을 보기 위해서다. 선원사 주지 성원(誠願) 스님은 부안의 내소사에서 차 씨앗 한 가마니를 얻어다 절 주변에 뿌렸다. 그 옛날 선원사가 차 문화의 중심지였다면 차를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남향, 정북향, 정서향의 텃밭에 씨를 부리고 시험재배를 하고 있다. 올 겨울만 잘 견뎌내면 차나무가 성장하는데는 별 문제없을 거라고 한다.

 

 

 

한 조각의 마음, 한 주발의 차에 있나니
제대로 된 찻물 맛을 보기 위해 마니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정수사로 향했다. 가을이 있어 산사(山寺)가 아름다운 것인가, 산사가 있어 가을이 아름다운 것인가. 정수사 오르는 길은 추색(秋色)이 완연했다.
신라 선덕왕 8년(639)에 창건된 이 사찰은 1426년 함허(涵虛·1376~1433)가 절을 고쳐 지을 때 법당 서쪽 산신각 아래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났다. 석중천(石中泉)으로 무거운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나는 물이라고 한다.
함허는 이 물맛 때문에 절 이름을 정수사(淨修寺)에서 ‘물 수(水)’자가 든 정수사(淨水寺)로 바꿨다. 지금도 불자들은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고 어김없이 이 샘물을 마시며 남은 번뇌마저 씻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순전히 찻물로만 쓰기 위해 물통에 물을 담아간다.
이 절 뒤편 오솔길로 오르면 산등성이 양지바른 곳에 함허의 부도가 있다. 멀리 영종대교가 보일 정도로 조망권이 좋은 곳이다. 이 부도는 균형미와 예술미가 뛰어나 마치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부도 옆에 서자 함허의 시 한편이 귓가에 아련히 들려왔다.

 

‘한 주발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한 조각 마음이 한 주발의 차에 있나니
마땅히 한 주발의 차를 맛보소서.
한번 맛보면 응당 한량없는 즐거움이 생기리…’

 

 

 

사대부 집 여인의 규방다례

 

조선시대를 근간으로 엄격한 유교 생활 속에서 바깥출입이 용이하지 않았던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이웃이나 친지를 초청해 다회(茶會)를 베풀던 의식과 절차를 계승한 규방다례(閨房茶禮)가 지난해 무형문화재(제11호)로 지정되었다. 지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이다.
규방다례는 궁중다례와 접빈다례, 사원다례 등으로 구분되는 의식다례와 달리 우리 조상들이 직접 생활 속에서 행해 오던 것을 전승한 생활 다례(茶禮)이다. 또한 일본 문화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형식위주의 다도(茶道)와 비견되는 우리만의 자랑스런 전통문화로 일본에 차문화를 전파했던 조상의 긍지를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형문화재 지정과 함께 그 기능보유자로 이귀례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에게 인정서가 수여되었다. 40여년 동안 우리나라 차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이귀례 이사장은 조부로부터 호남지역의 생활다례를 처음 접해오다가 1970년대 중반이후 본격적으로 차문화 보급운동에 뛰어 들었으며 규방다례를 기초로 생활차예절, 선비차 및 가루차 행다 외에 전통 절 예절을 보존하고 보급시키는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글 유동현 · 사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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