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달콤 쌉싸름한 맛, 무야? 인삼이야?
“오장에 이로우며 이뇨와 소화를 돕고 종기를 치료해주며 만취 후 갈증해소에 특효다. 씨는 눈과 귀를 밝헤 하며 황달을 치료한다. 봄에는 싹을 먹고 여름에는 잎을 먹으며 가을에는 줄기를 먹고 겨울에는 뿌리를 먹는다. 뿌리가 땅 속에서 겨울을 나도 마르지 않고 봄에 움이나니 늘 먹으면 살도 찌우고 건강하게 해준다”
무슨 건강식품을 광고하는 문구같지만, 실은 동의보감에 기록되어 있는 ‘순무’에 관한 구절이다. 순무는 무의 사촌뻘쯤 되는 채소이다. 이파리는 무와 비슷하지만 뿌리모양은 차라리 양파 혹은 항아리나 팽이에 가깝고 색깔은 보랏빛이다. 겨자향이 나는 인삼맛이 난다.
순무의 매운 맛을 내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가 항암성분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온 얘기. 그런데 최근엔 국내 동물 실험에서 간암과 간경화 증세를 경감시켜 주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항암물질로 알려진 인돌(indole)성분도 들어있고 변비를 없애는 식이섬유도 풍부한데다 피부에 좋은 비타민c와 고혈압예방에 도움이 되는 칼륨이 많이 들어있다. 게다가 뼈를 튼튼히 하는 칼슘과 피를 만드는데 필요한 철분도 풍부하다니 ‘종합영양제’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이다.
자, 이렇게 몸에 좋다고 날것으로 날마다 순무를 먹을수는 없는 노릇. 순무를 만든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다. 순무의 고장 강화에서는 예부터 순무를 김치로 담그어 먹었다. 순무를 모양없이 쓱쓱 썰은 뒤 김장을 하고 남은 양념을 버무려 먹어서 ‘석박지’라 불린단다. 지금도 강화에 있는 음식점에서 무김치라고 내놓는 것들은 대개가 순무로 만든 것이다.
순무의 기원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노예들이 피라미드를 쌓으면서 먹었던 식량인데, 이 무가 로마와 유럽을 거쳐 1548년 영국에 들어왔다. 이것을 1895년 전후로 강화도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에 교관으로 초빙된 콜웨이 대위의 부인이 강화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 텃밭에 심은 영국무가 토종순무와 교잡되며 토착화해 요즘 강화의 명물인 순무가 되었다고 한다. 강화도에서는 1,000여년 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순무골(대표 권국원)’은 순무가공상품을 생산하는 농업회사법인이다. 순무쥬스를 비롯해 피클, 식초, 환, 씨, 비누, 강정, 국수, 씨기름 등 순무를 가공한 여러 가지 식품과 생활용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뭐니뭐니 해도 대표선수는 ‘순무김치’이다.
권씨가 재배하는 순무는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순무의 약초성분을 최대한 발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우선 흙은 황토이고 무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넓게 해서 씨앗을 뿌린 뒤 화학비료 대신 돈분과 계분을 발효시킨 미생물퇴비를 주며 친환경농법으로 키운다. 영양가로 치면 단순히 무라기 보다 약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순무로 만든 김치로는 순무짱아찌, 순무석박지, 순무벤뎅이석박지, 순무동치미 등이 있다. 순무골에서는 기계가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판매를 하는데 고추며 마늘이며 양념 또한 모두 강화의 들녘에서 나는 것들만 쓴다. 일단 순무 맛이 최고에다 여러해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양념을 표준화 시켜서 이곳 순무김치를 아예 대놓고 먹는 이들도 꽤 있단다.
순무는 봄과 가을에 두 번 재배하는데, 특히 11월 중순께 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는 가을 순무는 봄 순무에 비해 훨씬 아삭아삭해서 김치를 해도 잘 무르지 않는다. 지금 강화를 찾는다면, 순무 생애 최고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문의 _ 순무골(933-2988, www.soonm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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