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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변또 누가 먹었어’
어김없이 한 해의 끝에 섰다. 해마다 이맘때면 쓰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으로, 올해에도 그 말은 들어맞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악몽 그리고 태풍 매미의 피해 등 이제 모든 일들은 망각의 역사 속으로 묻힐 것이다.
‘변또’ 도난사건! 인천 각 학교에서 빈발
인천부내의 각 학교에는 생도들의 변또 도난 사건이 자꾸 일어나서 생도들은 점심을 굶는 일이 허다 하나 누구의 소행인지 몰라 학교 당국에서도 큰 두통거리였다. 그런데 지난 21일에 부내 인천상업학교에서 아침 조회를 마치고 생도들이 교실에 들어가자 열네 살쯤 된 아이가 인천상업학교 3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생도의 변또를 꺼내어서 그 자리에서 밥을 먹다가 들켰다. 요즘 각 학교마다 변또 도난 건이 연발한 것은 거지 아이들의 일파로 판명되었으나 생도들도 그 처지가 가긍하여 그대로 보냈다고 한다.
『조선일보』 1939. 10. 24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나라조차 없었던 그 시절의 궁핍한 세밑 풍경은 오늘 우리가 겪는 기한(飢寒)보다 한층 참담하였던 것 같다. 언뜻 보면 가십 같은 위 기사에는, 전시 총동원체제로 치닫던 일제 말의 혹독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인천의 영세민 아이들의 눈물겨운 생활상이 담겨있다.
위 기사 바로 위에는 철저한 절미운동을 위해 인천상업학교에서 되도록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기로 결의하였고 싸오더라도 잡곡밥을 싸오도록 주의시켰다는 기사도 함께 게재되어 있다. 쌀이 이처럼 귀하니 쌀에다가 돌가루를 섞어서 판 업자까지 발각되어 인천경찰서에서 엄벌하였다는 『동아일보』 1939년 11월 23일자 기사도 보인다. 그러나 ‘변또’ 도난사건이 그저 옛날 일만은 아닌 것이, 오늘날에도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적지 않으며, 학교 급식을 날림으로 공급하여 급식비를 착복하는 업자들이 판치고 있는 건 그제나 이제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그러나 영세민들의 겨울나기에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추위이다. 추위를 피할 집이 없고 연료를 마련할 돈이 없는 것이다. 때마침 1939년에는 인천부의 ‘대인천건설’ 계획에 의하여 시가지 정비와 함께 부평에 대공장지대가 조성되면서 그 해 9월까지 이미 1,160호의 가옥이 이전 후보지 알선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철거되어 집 없는 영세민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동아일보』 1939. 9. 16)
본격적인 겨울을 앞두고 인천에도 드디어 조선연탄 인천공장이 설치되어 12월부터는 연탄을 제조할 계획이라거나, 12만 인천부민의 2/3 이상이 사용하며 영세민층의 유일한 연료인 왕겨의 품귀와 가격 앙등을 막고 안정적으로 배급하기 위한 왕겨배급조합을 세울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1939. 11. 2)
인천부에서는 각 소학교의 수업시간 단축과 겨울 방학 연장을 통해 연료절약책을 시달하였다. (『동아일보』 1939. 11. 25) 그러나 왕겨의 기근과 함께 어김없는 연료 대란이 찾아왔으니,
인천 연료난 날로 심각, 석탄·목탄·장작 등이 품귀
서민 유일의 연료인 왕겨 기근으로 서민층에 크나큰 타격을 주고 있다 함은 작보(昨報)한 바 같으며, 석탄 대용으로 참나무 장작이 세월 만난 시세가 조타함은 별항 보도한 바 같거니와, 이외 석탄 기근을 위시 목탄(木炭), 엽송(葉松), 장작(長斫) 등이 품박을 고하고 있는 상태로서 12만 인천부민의 과동(過冬)이 크게 우려되는 바 있다 한다.
이에 가격은 점증 일로를 밟아 엽송 한 단 22전, 장작 백근에 일원 60전으로 작년 동기에 비하야 실로 6활의 격등을 시현하고 있어 각층 인천부민 생활상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바로, 저물가를 절규하는 작금 이 연료의 규격 통일이 초미의 긴사(緊事)로서의 일반의 요망성은 자못 높은 바이다.
『동아일보』 1939. 12. 3
당시의 겨울을 나기 위한 난방시설을 온돌이 대부분이었다. 온돌에 소용되는 연료인 왕겨를 비롯한 모든 연료들이 품귀와 함께 가격이 앙등하였으니, 12만 인천부민의 그 해 겨울나기는 참으로 혹독하였을 터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의하면, 온돌 연료를 위한 조선인들의 산림범죄가 1933년도 한 해에만 무려 29,654건이나 일어났다고 하니,(『조선일보』 1934. 7. 7) 당시의 심각한 연료난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어려운 시절을 헤치고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서 어렵게 맞이한 21세기, 2003년의 세밑이언만,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겨울의 기한이 혹독하면 할수록 그 추위와 배고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우리의 뜨거운 마음 더 커지지 않겠는가. 2004년 새해의 소망과 평화를 소중하게 모아 구세군 냄비에 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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