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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옷방의 고구려 여인‘에스더 리’이현경 씨

2006-09-01 2006년 9월호

우리 옷방의 고구려 여인‘에스더 리’이현경 씨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고구려 여인! 기다리는 동안 입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보니까 벽에 걸린 색색의 특이한 한복들이 너울너울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소서노(召西奴)가 다가와 서고, 동명성왕인가, 광개토왕인가, 연개소문인가, 다시 수만 군마(軍馬)의 발굽 소리와 함께 뽀얀 먼지가 일고, 그 속에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 우렁찬 독전의 함성 소리 같은 것들이 뒤섞인다. 이런 환영(幻影)이 눈에 보인 것은 공교롭게도 요즘 어느 TV에서 방영한다는 한 사극 때문이 아니다. 여자가 직접 염색을 하고, 거기에 우리 전통의 꽃문양들을 손으로 일일이 그려 넣은 황홀하고 신비스런 색깔의 비단 한복들이 풍기는 느낌이 이미 환상이었고, 마주 앉은 이현경(李賢敬) 씨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벌써 고구려 여인의 혼의 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는 11월 23일 인천의 승국문화재단이 패션쇼를 주최합니다.


‘사랑은 나눔입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자선 패션쇼인데 주 컨셉이 바로 고구려의 기상이에요. 호방하고, 역동적이고, 활달한 고구려인들의 성정을 패션 한복을 통해 발산해 보려고 합니다. 관객들도 크게 호응하리라 생각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그래서 ‘명품 한복, 에스더 리’라는 매장을 열어 놓고도 마음은, 가슴은, 저 장백(長白)의 산언덕을 넘어, 만주 벌판과 발해를 넘나들고 있는 여장부. 유대인을 죽음에서 구했다는 에스더(Esther) 왕비와 닮은 것일까. 할머니도 아버지도 다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집안인 데다가, 함경북도, 그 춥고 매서운 관북지방의 기골(氣骨)을 받고 태어났으니 영판 고구려 여인이 아닐 수 없다. 미대 서양학과를 중도에서 그만두고 장로교신학대에서 심리학을, 그리고 다시 이화여대에서 미술학 석사를, 그리고 명지대학에서 의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뿐인가. 시내 모 대학의 교수인 남편 때문에 경영학도 공부했으니, 이 분야 저 분야 참 다채로운 학력(學歷)을 섭렵한 셈이다. 그러니까 복식(服飾)을 만지는 것이 업(業)이 될 수 있고, 염색도 디자인도 결코 남의 손을 빌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마케팅도 역시 그렇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제게는 누구보다도 고구려 피가 진하게 흐르는 것 같아요. 그럼 느낌이 들어요.


천 몇 백 년, 그 시대로 올라가 숨을 쉬면 가슴 속이 그렇게 뻐근해 올 수 없음을 느끼거든요. 그걸 내보이는 거지요. 특히 외국인들은 이 동양의 신비에 흠뻑 빠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쉬어요. 보세요. 거침없는 기백과 솔직함과 그러면서도 화사함을 놓치지 않은 고구려의 미, 그것을 살려낸 한복의 선과 색채에 매혹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우리가 명절복, 예복으로 입는다면 그네들은 파티복으로 이 옷들을 매우 선호하지요.”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 그리고 멀리서부터 불길이, 겨울밤처럼, 그 깊은 관북의 숲에서부터 이글이글, 분명 일어 올 것만 같은 진한 눈빛, 그리고 단호한 과단성, 끓는 열정. 거기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여자 혼자만의, 상식과 평탄을 넘어선 독특한 심미(審美), 상상력. 그래서 엉뚱하게도 문득 신이 지핀다면 아마…. 을지문덕을 받든다면…. 이런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번에는 이 여자, 이현경 씨의 패션 한복들 천의 올마다 모조리 그런 기(氣)가 배어 있는 듯 싶은 것이다. 금관 벽화, 구름 당초, 능선, 색동, 흔적, 일월오악도 같은 이름을 가진 ‘에스더 리’의 명품 한복들. 그것들이 감색(紺色) 안개를 피우고, 둥둥둥 북소리를 내고…. 마침내 이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 지친 머리를 내려놓고, 두 눈은 깜깜하게 감은 채, 서늘한 고구려의 고분(古墳) 속으로 걸어 내려가는 것이다. 한 발짝, 한 발짝 요녕성(遼寧省) 환인현(桓仁縣)으로,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으로, 그리고 통구(通構)의 무용총(舞踊塚)으로, 또 평양(平壤)의 쌍영총(雙盈塚)의 어두컴컴한 지하로….


여자는 촛대를 들고 앞서서 컴컴한 계단을 내려간다. 우아하게, 신비하게, 치맛자락이 끌릴 듯, 약한 바람에도 촛불은 꺼질 것만 같은데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나가야겠어. 밖으로 나가야겠어. 나가서 물어 봐야지. 이현경 씨, 사신도를 옷에 그려 넣으면 어떨까. 주작이 날고 백호가 포효하는 그런 옷을 만들어 입으면 어떨까. 저 눈부신 햇빛 속으로 푸드득 푸드득 삼족오(三足烏)도 날아오르게 하면 어떨까. 아아, 그만 밖으로 나가야겠어.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 거예요. 그건 피라미가 아닌데….” 멀쩡한 대낮, 찜통더위 속에서 몽롱하게 ‘별다른 소리’만을 내뱉고 있는 이쪽이 여자는 딱한 것이다. 창호지에 잔뜩 그려진 것은 피라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무늬일 뿐이다. 녹찻잔 밑에 깔린 누비 천의 담백한 수(繡), 그 예쁜 문양도 이쪽은 그냥 몸살 기운일 뿐이다. 여자가 고안했다는, 특허 출원중에 있다는 패션 장롱의 겉면 실크 위에 프린트된 민화(民畵) 역시도 어질어질한 것이다. “인천 토박이에요.” 그 말에 비로소 같은 토박이가, ‘나갔던 사람의 정신이 다시 돌아와’만나고 싶은 사람 하나 정말 만났다고 다소 과장스럽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는 것이다. “인천 사람의 정체성이라면 무색무취하지만 따뜻한 성정이라고 생각해요. 인천은 정말 따듯한 곳이에요.” 약간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말 속에 담긴 뜻, 외지 사람들이 많이 와 사는 인천이란 도시의 특성을, 그래서 생겨난 인천 사람들의 성격을, 에둘러 이야기한 나름대로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인천을 떠나 산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는 마음도….


 


매년 중소기업청이 선정한다는 신지식인이 된 것도, 2003년인가,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Vogue)’지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Asian Look’으로 뽑혀 게재되었던 것도, 우리의 전통을 시대의 감각에 맞게 살려낸 여자의 뛰어난 감수성과 창의력, 그리고 경영 수완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전통 문화는 오늘 우리의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디자인의 초점을 저 고구려로부터 더욱 확장해서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한국사의 흐름에 맞춘다는 것이다. 해양국 백제, 외교와 삼국통일의 신라적 특색, 고려의 호연지기, 조선의 민족 정신을 나름대로 의복에 표현한다는 당찬 고구려 여인. “살아오면서 시련도 좀 있었어요. 이제 이 기회는 하느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내후년쯤에는 외국에 나가서 더 공부하려고 해요. 끊임없이 재충전, 재충전 해야지요.” 주안역 근처의 ‘에스더 리’ 본점. 염색 공정을 구경시키고는 무슨 시련이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을 맺으며 전송을 위해 여자가 문 앞에 선다. 돌아서는 이쪽을 향해 여자가 미소를 짓는다. 사람 하나를 또 만났구나. 땀 흘리며 돌아서다가, 그런데 문득 그 미소 속에서 이제까지의 고구려 여인 것이 아닌, 난데없는 한 백제 여자의 웃음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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