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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이어진 특별한 인연
편지로 이어진 특별한 인연
3년전 저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펜팔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중2 때였는데 잡지를 통해 펜팔을 알게되었고, 편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저는 ‘이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카페에 펜팔을 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지 얼마 후 청주에 사는 한살 어린 지연이라는 아이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 애의 ‘펜팔 하지 않겠냐’는 메일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재미삼아 시작한 펜팔로 편지가 한 통 두 통 오가면서 저희 둘은 점점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내 서로 의자매까지 맺어서 진아, 은아라는 애칭도 지으며 아직까지도 편지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서로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기쁜 일 슬픈 일 둘이서 함께 나눠 가며 정다운 자매관계를 맺어오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가득 담아 편지를 쓰고 우표를 한 장 한 장 붙일 때마다 저의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외동딸인 저에게 하나뿐인 동생이 되어준 지연이. 저보다 어리지만 제게 큰 힘이 되어주는 착한 동생입니다. 은아야(지연아), 우리 앞으로 평생 인연 끊지 말고 지속해 나가자~.
김다해 (부평구 갈산2동)
손수건 편지
“누나, 생각 나? 누나가 아빠한테 보낸 손수건 편지 말이야” 더위에 지친 하루를 동생네 식구들과 수박 한 덩이 나누며 달래고 있을 때였다. 유난히 자잘한 기억들을 가끔 들추어내서는 잊었던 날들을 문득 떠 올리게 하는 남동생이 툭 내뱉은 한마디가 옛 생각에 젖게 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우리 아빠는 가족을 위해 멀고 먼 열사의 나라로 취업을 떠나셨다. 우리 아빠는 평소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항상 아낌없이 표현하는 분이셨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우리들과 뽀뽀할 볼을 내어 주셨고, 아무리 빠듯한 살림이었어도 우리들에게 ‘소년중앙’같은 월간지를 구독시켜 주던 분이셨다. 당신의 사랑을 온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몸살을 앓으시던 분이 1년, 혹은 2년에 한 번 정도밖에 우리를 볼 수 없었으니 그 외로움은 깊고 깊은 산 그림자처럼 무겁고 어두운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우체부 아저씨의 발길이 끊어질 날이 없었다. 보통은 우체부 아저씨가 가져다주는 한 통의 편지 봉투 안에 가족들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 한통이거나, 한통의 편지 안에 가족 개개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특이하게도 우리들 개인에게 각각의 편지를 보내셨다. 편지 봉투에는 ‘사랑하는 부인 000’‘보고 싶은 딸 000’‘근사한 아들 000’라는 형용사를 아끼지 않으셨기에 우리들은 각자에게 배달 된 편지 봉투만으로도 늘 아빠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 남매는 아빠의 정성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아빠의 부재 속에서도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아빠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빠가 외국 생활을 하시는 기간 내내 더욱 더 생각과 자세를 반듯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한 번은 내가 아빠의 편지 속에서 아빠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계신지를 읽게 되었다. 그래서 아빠를 위로하고 아빠에게 힘을 불어 넣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얀 손수건에 빨간 매직으로 ‘아빠, 우리 생각 나실 때마다 우리들의 사랑을 생각해 주세요’라고 편지를 써서 보내드렸다. 아마도 더운 나라에서 꼭 필요한 것이 손수건이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실 때마다 우리 가족을 만나시라는 뜻에서 그리 했던 것 같다. 우리 남매가 아빠의 고된 땀방울위에 대학 졸업장을 펼치게 되자 아빠는 몇 차례 미루고 미루던 귀국을 하셨다.
아빠의 영구 귀국 날, 우리는 아빠의 낡은 속옷들 사이에서 색이 바랠대로 바래서 흔적이 희미하기만한 나의 손수건 편지를 발견했다. 아빠는 우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우셨다고 했다. 그 날, 우리는 가족을 위해 당신의 온전한 삶을 희생하신 우리 아빠 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남동생은 왜 뜬금없이 나의 손수건편지 이야기를 꺼냈을까?? 아마도 요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힘든 상황이어서인가 보다. 세 아이의 근사한 아빠가 되고 싶은 남동생은 아마도 문득 우리 아빠처럼 위로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니, 남동생은 우리 아빠처럼 가족을 위해 어떤 헌신도 할 수 있다는 결심을 다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미라 (남구 주안4동)
피카소 그림, 한석봉 글씨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에게 편지는 집사람과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었다. 거리가 많이 떨어진 이유에서도 그렇고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많이 없었고 공중전화 한번 하려면 동네에서 긴 줄을 서야만 하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처럼 문자편지나 이메일처럼 바로 보내고 바로 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손에 받아든 봉투에서 벌써 보낸 이의 이름만으로도 전자우편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흥을 느끼곤 했다. 이제 결혼 10년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편지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유치원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편지를 써왔다. 그림은 피카소의 현대미술을 닮았고 글씨도 불꺼진 방의 한석봉의 필체였지만 ‘엄마, 아빠 사랑해요’ 한 줄의 편지는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충분하였다. 생각해 보니 아직 나는 그때의 아들편지에 대해 답장을 못했다.
[현기에게.... 항상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렴, 아빠도 사랑한다. ...아빠가.]
채희윤 (남동구 만수5동)
편지 몇 통으로 행복했던 어린시절..
위로 형제가 없던 나는 방학이나 명절 때만 볼 수 있는 사촌언니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어렸을 때라 한글에 서툰 나와는 달리 3살 위인 언니는 예쁜 편지지에다 글씨도 또박또박 써서 먼 대구에서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편지가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편지를 보내고선 언제 답장이 올지 몰라 몇 번이고 편지함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편지라도 오면 동생들과 서로 읽으려고 싸우다가 우표는 따로 떼어서 우표 모으는 앨범에 넣고 편지는 예쁘게 만든 편지상자에 넣어두었다. 언니 향이 나는 것 같은 그 편지를 읽어보고 또 읽고 가끔씩 답장이 안 오면 크게 실망하기도 하고 좀더 일찍 도착할까 싶어서 버스를 타고 근처 우체국에 가서까지 편지를 부쳤던 생각이 난다. 방학 때는 그렇게 언니와 편지 쓰는 재미로 지냈다. 그러나 점점 세월이 흘러 내 편지상자도 커질 때쯤 우리는 사춘기에다가 입시에 어느새 부턴가 서먹해져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이메일이 발달되어서 보내는 즉시 서로 주고받고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더 이상 예쁜 우표가 붙어있는 정성들인 손 글씨 편지는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직도 책상서랍에 간직되어있는 예쁜 편지함.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기게 해주는 내 어린시절의 보물이다.
구혜경 (남동구 남촌동)
남편이 모아둔 연애편지를 보며
얼마 전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남편의 책장을 옮길 기회가 있었는데 책장 맨 윗부분에 누렇게 색이 바랜 두툼한 봉투하나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필요치 않으면 버릴 요량으로 열어보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다름 아닌 남편과 연애할 때 내가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둔 일종의 비밀상자였던 것이다. 남편과 만나던 15년 전만해도 이메일이나 문자도 없었고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나 시외전화가 전부였다. 예전의 그 애틋한 감정은 다 어디가고 이젠 생활에 찌들고 세파에 묻혀 그저 무덤덤한 사이가 되었는지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남편 딴에는 나 모르게 잘 보관하느라 평소에 잘 보지 않는 곳에 숨겨 두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오랜만에 풋풋하고 사랑으로 온 세상이 빛이 났던 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구나 싶어 살며시 웃음이 났다. 먼 훗날, 아주 먼 훗날, 백발의 허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이 편지를 안주삼아 ‘그때는 이랬는데…’ 하면서 옛 이야기 나눌 기회가 꼭 있으리라. 다시 처음 자리에 그대로 옮겨 놓으며 하루가 즐거웠다.
조혜미 (남동구 삼산동)
외국에서 날아온 편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느날 사회시간에 선생님이 그러셨지요. 이젠 글로벌시대라고. 그때 선생님은 자신의 펜팔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우리들에게도 적극 권장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와 편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3년간 생전 편지라고는 친구들한테 받은 생일축하 편지밖에 없던 제가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잘 되지 않더군요. 인터넷을 보니 ‘외국 애들과 하면 외국어 실력 엄청 는데요~’ 라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현혹(?) 되었고 당장 외국 펜팔사이트에 저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편지는 그리 빨리 오지를 않았습니다. 몇 개월 뒤에 쉬엄쉬엄 오는 편지를 보니 반가움 보다는 왜 더 빨리 오지를 않았냐는 원망이 더 많았지요. 편지봉투를 열어보니 영어로 휘갈겨 쓴 듯한 편지가 3장.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니 요리 봐도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글씨. 편지봉투를 보니 그 편지는 가나에서 왔고, 그 아이는 꽤 잘사는 집 아이였더군요. 저는 답장을 보냈지만 아직 그 아이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그 아이가 제가 쓴 영어를 못알아 봐서 못보내는 것일까요? .
이민구 (계양구 계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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