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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묻어버린 땅

2006-09-01 2006년 9월호

 

 


 


 


 


 


 


 


 


 


 


 


 


 


희망을 묻어버린 땅


 


글-김성중(인천대학교 교수, 인천녹색연합 공동대표)


 


독일에서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독일이 통일되고서 얼마쯤 지났을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서너 명의 기업인들이 출연해 사회자와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사회자가 “왜 기업의 확장을 위해 불모지와 다름없는 동독 지역 문이 활짝 열렸는데도 들어가지 않고 있느냐?” 고 질문을 했다.
그들은 통일이 된다면 낙후된 동독 지역에 들어가 사업을 확장하여 동구권을 석권할 것이라고 평소에 그렇게도 꿈꾸어 오던 기업인들이었다. 통일이 되면 희망을 품고 들어갔어야 할 시간이 많이 지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도통 그 곳에서의 사업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민영화를 위한 정부의 방침을 실행해야 하는 관계자들이 답답해 하는 것을 아는지라 나 또한 그 인터뷰에 관심이 갔다.
독일이 통일되는 광경을 보고 흡수통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패망함으로 동과 서가 나뉘게 되었고 갈라지면서 ‘통일독일’을 꿈꾸며 준비해온 이들인데도 막상 통일이 되니 여기저기에 할 일들이 무척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매우 분주하게 일하는 정부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국영화된 많은 자산들을 민영화하는 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국영화된 것은 아니다. 2차 대전 후 공산 진영이 되면서 모든 국민은 재산의 개인 소유가 인정되지 않았고, 정부에 일방적으로 귀속되었다. 그래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한 일은 누구든 본인이나 본인의 조상 소유였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를 제시하면 이를 인정하고 소유권을 이양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후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자산들은 민간에게 매각하였다.
기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매우 낮은 매매가임에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무상으로 소유권을 넘겨 줄 것이라 했다. 단 근로자들을 승계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었다. 또 다시 부족한 개발비는 무이자로 지원해주는 혜택도 줄 것이라 했다.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여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인터뷰 내용에서 밝힌 기업인들의 대답은 매우 의외였으나 아주 단호했다. 이들이 동독 지역 개발에 매우 큰 관심과 기대를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현재 그 곳에는 3가지가 심히 썩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째, 승계해야 하는 근로자들의 마인드와 습관이 썩어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근로자들은 일에 대한 생각이나 임하는 자세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지어는 교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태하고 해이해져 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으나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목도했다. 작업에 열심을 다해야 할 일터에서 한두 명만 일하고 예닐곱은 구경만 해도 되는 주인이 없는 것 같은 사회, 열심히 일해도 별다른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습관화 되어 있는 나태함은 인간으로서 경쟁력마저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다.
둘째, 공장의 건축물과 시설물들이 썩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평소 기업인들이 관심을 갖고 보아왔던 사항이며, 애당초 예측한 대로 건물이나 시설은 모두 폐기하고 재건할 계획이었으므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했다.
셋째, 환경이 썩어 있다는 것이었다. 기업인들은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특히 토양과 하천이 심하게 오염되어 썩어 있는 것을 보면서 서독 출신의 기업인들 정서로는 그곳에 공장을 세우고 기업할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동독인들은 산업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폐수 등을 반세기 동안 빈터만 있으면 마구 버렸다. 기업인들이 꿈꾸던 땅에서는 이것들이 썩어 유독성 가스와 심한 악취를 방출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렇게도 꿈과 기대를 가지고 동독에서 기업을 경영하고자 했던 그들의 꿈은 산산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 인터뷰는 환경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였다. 근시안적인 인간들은 마음대로 자연을 훼손시킨다. 하지만 환경이 한번 오염되면 그것을 되돌리기 어렵다. 이것을 되돌리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환경재앙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희망을 노래하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환경을 무시하지 말자. 큰 코 다친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笑指門前一條路(소지문전일조로)
한자 겨우(재)離山下有千岐(재리산하유천기)

웃으며 문 앞 외길을 가리키니
겨우 산 아래에서 천 길로 갈라지네


신라 시대 학자이자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의 한시다.
“시골집 마루에 앉은 시인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그가 웃으며 싸리문 밖 외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눈길을 던져 보니 이게 웬 일인가? 바로 앞 산 아래에서 외길은 천 갈래나 갈라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외길은 지리적, 물리적 길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인생의 길을 읊고 있다. 인생이 단순한 외길처럼 보이지만 한걸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수많은 갈림길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그 중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 누구나 갈림길에서의 선택은 중요하고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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