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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설경구, 난 최지우

2004-01-01 2004년 1월호

겨울 한복판 무의도 바닷가가 사람들로 북적인단다.
무슨 일이 있는게다.
요즘 한창 뜨는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소문난 탓이라나.

 

 

 

소문을 듣고 무의도로 향한다. 오후 한 시 근방의 잠진도 선착장. 섬을 찾는데 악조건이랄 수 있는 평일 오후, 그리고 겨울이라는 상황에서도 차들은 꾸역꾸역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매표소 유리문에 영화 ‘실미도’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붙어있고, 그 옆 야트막한 산 허리엔 ‘드라마 스페셜 천국의 계단 촬영지’라 쓰여있는 플래카드가 너풀대고 있다.
무의도에 도착하면 곧바로 갈림길. 거리에 붙은 이정표는 목적지가 ‘실미해수욕장’인지 ‘하나개해수욕장’인지 묻는다. 그것은 곧 영화 ‘실미도’의 배경을 먼저 볼 것인가, 드라마 ‘천국의 계단’ 오픈세트를 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의도에서 결정권은 전적으로 물 때가 쥐고 있다. 썰물 때라야 우리의 목적지 중 한 곳인 무의도 앞 실미도로 가는 길이 열린다. 동네 어귀 구멍가게에서 확인한 시간대는 우선 하나개로 향하라고 한다.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 하나개

 

물은 먼 바다 쪽으로 한참이나 물러나 있다. 대체 바다가 있기나 한건지 궁금할 정도로 넓게 드러난 해변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웠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모래 언덕 위, 짙은 회색 지붕에 새하얀 벽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집이 하나 서있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SBS 수목드라마)오픈세트이다.
이 한적한 바닷가 집은 주인공 최지우(정서 역)와 권상우(송주 역)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기억을 잃은 정서가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꼭 천국같애’라던 사랑의 안식처이다. 죽은 줄로만 알고 정서의 유분을 뿌린 곳도 바로 이 집 앞 하나개 해변으로 몰려드는 바닷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국의 계단’ 세트장으로 오르는 계단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완고하게 버티고 서있다. ‘여기가 거기야’, ‘진짜 멋지다’라고 소근거리며 힐끔거리기도 하고, 커튼 틈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주변을 맴돌던 이들도 더 이상 접근하기를 포기한 채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이 바다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다. 배경은 어차피 그 자리에 있는 것. 드라마 속 연인들처럼 신발을 손에 든 채 ‘나 잡아봐라’ 하며 해변을 뛰어다니거나 혹은 ‘사랑은 돌아오는거야’라고 권상우처럼 소리치며 하늘을 향해 부메랑을 던져봐도, 이도저도 아니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어도 다 잘 어울린다. 세트장 안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것과 엇비슷한 각도에서 해지는 풍광을 눈 안에 넣으면 없던 사랑이 새록새록 솟을지 모른다.
출사를 나온 한 무리의 사진동아리 회원들은 너도 나도 바다, 혹은 세트장을 배경 삼아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예전같으면 쓸쓸했을 이 주변 상가들은 연신 하얀 난로 연기를 밖으로 피워대며 영업중임을 알리고 있다. 드라마 촬영으로 하나개는 때아닌 겨울대목을 맛보고 있었다.

 

 

 

뼈 아픈 역사의 땅, 실미도

 

물이 다시 밀려오기 전, 서둘러 실미해변으로 향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엔 천국의 계단 세트처럼 이국적인 분위기의 집들이 모여있다. 그들 가운데 숙박집 무의아일랜드는 영화 ‘실미도’에 출연하는 주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실제로 두어달 가까이 묵었던 집이다.
찢어진 만국기, 제 몫을 다한 채 멈춰버린 조명, 빛바랜 샤워장 건물, 누군가 흘리고간 튜브조각…. 실미해변은 파도소리마저 멀찌감치 물러나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다. 실미해변에서 코 앞에 보이는 섬이 무인도인 실미도이다. 이 섬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실미도’는 북파공작특수부대인 ‘실미도 684부대’의 비극적인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1968년 1월 청와대에 침투하기 위해 무장공비들을 남파한 ‘김신조 사건’에 맞서 김일성을 죽일 목적으로 창설된 684부대는 3년 동안 실미도에서 31명의 부대원이 지옥같은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출정을 앞두고 ‘남북이 화해무드로 접어들었으니 없던 일로 하자’는 짧은 통지문에 결국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영화 관계자는 “촬영지를 물색하기 위해 우리나라 섬 100여 군데를 돌아봤다. 제일 처음 실미도에 와봤고 또 맨 마지막에도 이곳에 와봤는데, 역시 실미도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실제 사건현장이기도 한 이 섬이 촬영지로 선택된 배경을 이야기했다.
실미해변에서 바라보는 섬 반대편에 세트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되어 흔적이 없다. 아무도 살지않는 그 섬으로 가는 길은 물이 빠져야 드러난다. 적어도 무인도에서 하룻밤을 지샐 요량이 아니라면, 다시 물이 들어오기 전에 돌아와야만 하는 한시적인 여행이다. 돌아올 때가 언제인가를 우리는 알고 있고, 선택도 우리가 한다. 하지만 당시 섬에 갇혔던 684부대원들에게는 그럴 자유조차 없었다.
비록 영화에서 처럼 비바람이 몰아치지는 않지만, 설경구처럼 “패도 좋고 죽여도 좋습니다. 우린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바다 위에서 절규해 본다면 영화 속 감흥이 더 살아날지도 모른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사라져간 사람들의 원혼이 아직 이 섬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섬을 대하는 마음은 썩 편치않다.
물이 점점 차오르면 그 섬으로 가는 길도 차츰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 무렵이면 잠시나마 ‘천국의 계단’의 최지우가, ‘실미도’의 설경구가 되어 보았던 우리는, 엉덩이에 묻은 모래알을 훌훌 털어내듯 감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원래 맡은 현실속의 배역으로 돌아오라고 겨울 바다가 말한다.
글 _ 박상영 · 사진 _ 김성환

 

 

 


칼국수에 속덥히고 공항구경은 덤

 

1인당 여행비용은
뚜벅이… 15,000원 인천, 동인천역에서 출발하는 을왕리행 306번 버스 타고(인천공항 경유 성인 3,000원, 15분마다)→덕교동(거잠포)에서 내려→10분쯤 걸어서 잠진도로→무의도행 카페리호 타고(성인왕복 2,000원)→무의도에→배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마을버스(성인 1,000원)를 타고 하나개로. 실미도는 걸어서도 갈 수 있다. 총 소요시간 편도 2시간 30분. 차비(왕복 10,000원)+밥값(칼국수 5,000원) = 15,000원
마이카… 31,200원 차비 :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북인천톨게이트(승용차기준 3,100원)→용유·무의도로→잠진도 연육교 건너→무의도행 배(승용차 운전자 포함 편도 20,000원, 별도의 성인 왕복 2,000원) 타고→5분 남짓 항해→무의도에 도착. 총 소요시간 편도 1시간 30분. 차비(왕복 26,200원)+밥값(칼국수 5,000원) = 31,200원

 


_ 잠진도에서 무의도 들어가는 배는 겨울철엔 오전 7시30분 부터 오후 6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데, 중간에 배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화로 미리 확인한 뒤 길을 나서야 한다. 또 물때와 바람의 영향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도 있다. 잠진도 선착장에서 배를 댈때는 뒤로 대기 때문에 운전자의 후진실력은 필수다. 무의도행 카페리호 : 751-3354∼6, 무의운수 : 746-4491, 실미번영회 : 752-3636 하나개번영회 : 751-8833,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우리고속훼리 887-2891 www.wk.co.kr)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용유출장소 무의지소 : 760-7830

 


_ 겨울철에 무의도 앞바다에서는 낙지가 많이 잡힌다. 산낙지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추위도 멀리 달아난다. 신선한 생굴도 1만원 정도면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추운 속을 달래기에는 바지락 칼국수가 제격이다. 각종 야채와 바지락이 듬뿍 들어간 칼국수는 1인분에 5천원 정도이다. 활어회나 꽃게탕, 매운탕, 굴밥, 조개구이 같은 음식도 맛있다.

 


한 걸음 더 _ 인천국제공항 청사 : 여유를 두고 섬을 찾았다면 인천국제공항 청사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보너스여행이다. 청사 안에는 쇼핑시설과 음식점, 사우나 등 웬만한 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직접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광판에 돌아가는 세계 각국 비행기 행선표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기분전환이 된다. 영종대교 기념관 : 영종대교를 건너기 바로 전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량과학관이다. 영종대교를 놓는데 사용된 실물자재를 비롯해 다리의 모형과 영상 등 교량관련 자료가 테마별로 전시돼 있다. 또 세계의 유명한 다리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을왕리해수욕장 : 겨울낭만1번지라 할만한 바다이다. 무의도의 소박한 분위기와는 달리 카페나 음식점, 숙박시설 등이 충분하다. 낙조포인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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