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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지성담은 ‘책곳간’

2004-02-01 2004년 2월호

책을 만나는 건 곧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헌책방에는 쉽게 만나지 못할 옛 사람들을 만나는 설레임이 있다.
아벨전시관에 가면 우리는 그곳에서
노천명과 톨스토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동구 금창동 배다리 부근에 있는 헌책방 골목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춰선 느낌이다.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폐허가 된 거리에 이동식 리어카 책방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해 한때는 30여 곳의 헌책방이 길 양편에 줄지어 있어‘작은 청계천’이라고 불릴만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동네이다. 지금은 새 책방과 대형서점들에 밀리면서 7곳의 헌책방만 남아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책 곰팡이가 풍겨내는 내음, 수십년간 책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등이 구부러진 책꽂이, 천장에 닿을락말락한 책들의 탑…예나지금이나 정형화돼 있는 헌책방의 모습이다.
헌책방 거리 중간쯤에 아벨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양조장으로 쓰이던 건물의 2층을 개조해 만든 이 전시관은 30년 넘게 이 거리의 한복판에서 ‘아벨서점’이란 간판을 내걸고 헌책방을 운영하는 곽현숙씨(53·아래 왼쪽사진)의 변함없는 책사랑의 산물이다. 옛날에 막걸리를 숙성시키던 술창고를 빌려 7개월 동안 청소, 도배, 페인트 칠, 전기공사는 물론 진열장을 손수 망치질하며 짜는 억척스러움 끝에 지난해 개관했다.
제1관, 제2관으로 나눠져 있는 40평 규모의 전시관은 사방벽이 나무 조각으로 짜여져 있고 아직도 누룩 냄새가 배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소박한 모습이다. 1관에는 배다리 헌책방거리와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물론 중국 북경과 연길시의 뒷골목 노상 책방의 모습 등을 담은 40편의 흑백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인천 출신으로 현재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최종규 씨가 지난 1998년부터 헌책방을 순례하며 헌책 더미 속의 아이들, 휘어진 서가에 비춘 햇살 등 사라져가는 헌책방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 뒤편의 게시판처럼 수수하게 전시된 모습에서 잊었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아스라이 피어난다.
안쪽의 2관은 ‘김억에서 김지하까지’라는 타이틀로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연대별 시집이 전시되고 있다. 그 옛날 감수성 예민했던 어느 여고생이 밤새우며 읽었을 귀퉁이 닳고 누렇게 바랜 시집들이 유리관 속에 자리잡고 있다. 1934년에 재판 발행한 이은상의 노산시조집, 42년 초판본 김억의 동심초, 49년 초판본 노천명의 사슴의 노래 등 고물이 아니라 이제는 ‘보물’로 변해버린 귀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벨전시관은 3∼4개월마다 새로운 주제로 전시품을 바꾼다. 첫 전시때는 곽씨가 수집해온 191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각종 잡지 100여권을 전시했다. 두 번째는 시사, 문학 등 장르별 고서를 선보였으며 4월경에 있을 네 번째의 전시회에서는 인천의 작가 혹은 인천을 소재로 한 문학 100여권을 전시할 예정이다.
헌책방거리를 왔다가 우연히 아벨전시관을 둘러보고 난 어느 책손이 방명록에 몇자 남겼다. ‘헌책방은 추억의 고향입니다. 헌책방의 언어는 마음의 언어입니다. 마음과 추억이 만나면 푸근함이 전해옵니다. 영원한 푸근함을 이곳에서 가지고 갑니다’
누구나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면 헌책방이 단순히 헌책을 싸게 거래하는 곳이 아니라 삶을 살찌우는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임을 깨닫는다.
글 _ 유동현 · 사진 _ 김성환

 

 

 

찾아가는 길 _ 경인국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북쪽 편(송현동) 개찰구로 빠져나오면 한복과 이불 등을 파는 중앙시장이 나온다. 오른편(배다리)으로 꺾어 시장을 빠져나오면 큰 길 건너편에 헌책방거리가 있다. 또한 도원역에서 내리면 인천세무서와 영화학교 앞을 지나 배다리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이용안내 _ 아벨전시관은 매주 토·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한다. 다만 단체관람을 원할 경우에는 하루 전에 아벨서점(032-766-9523)으로 연락하면 된다.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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