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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인생, 그 슬픔과 기쁨의 주인공 조화현 씨

2006-06-01 2006년 6월호

 

 


 


 


 


 


 


 


 


 


 


 


 


 


 


 


 


 


 


 



바이올린, 인생, 그 슬픔과 기쁨의 주인공
조화현 씨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공교롭게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흐린 하늘은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그다지 사납지는 않지만 10분 이내에 여자의 바이올린 교습소를 찾지 못하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고 말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 위치를 자세히 알고 오지 않은 불찰은 전적으로 이쪽 탓이다. 그렇기는 해도 멀리 떨어진 아파트 단지와 휑하니 뚫린 대로뿐이니 어디, 어느 처마 밑으로 달려가 비를 그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약속이 될 것이 뭐람.



그렇게 몇 발짝을 가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이것도 다 인생의 일부분일 것이란 생각을 한다. 설혹 대학 교수가 되어 있었다 해도 비에 젖는 날이 있을 것이며, 지금보다 몇 배 더 유명한 시인 대접을 받는다 해도 흙바람에 쓸릴 날은 있을 것이다. 그래. 지금 이 빗줄기야말로 무한한 삶의 가치와 부(富)를 사유하게 하는 상징이며, 더없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바이올린 여자를 만나 그녀의 삶의 한 귀퉁이 그 모습을 들여다볼 것이다. 잠시 앉아서 그녀의 음악을 듣고, 그녀와 담소하고, 좀 있다가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서 나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편하게 방바닥에 엎드려 메모를 정리하고, 그리고는 마지막에 그녀에 대해 몇 줄의 문장을 쓸 것이다….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멋있는가.
그렇게 마음속이 편해지니까 비로소 이마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기분 좋게 느껴지고 걸음도 느릿느릿 걸어진다. 초록색 상의가 완전히 젖어 검은색이 되어서야 옥련동 쌍용아파트 상가에 도착한다. 그런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여자는 미안해하거나, 짐짓 놀란 체하는 기색조차도 띄지 않은 채 무엇이 기쁜지 웃음을 묻힌 두 눈을 그저 조금 크게 뜰 뿐이다. 비에 젖어 낡아가는 한 인생은 그렇게 유쾌한 심정으로 여자의 음악학원에 도착한다.



“상가 안인데 옆 가게에서 뭐라 하지 않을까?”
이쪽이 근무하는 모 협회 맞은편 방에서 3개월째 매일 똑같은 합창곡을 연습하고 있는 합창단이 있어서 한 혼잣말이었다.
“음, 저 좀 보세요. 받혀주지 않아요?”
성격이 들창처럼 밝고, 풀꽃처럼 착하고, 악기소리처럼 젊은 것은 하늘이 내린 여자의 장점일 것이다. 앞 사람을 보며 웃음을 예쁘게 짓는 습관도 역시 그렇게 받은 축복일 것이다. 허름한 삼류 영화를 보면서도 줄줄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여자의 심성이 곧 신이 골라 점지하신 선물일 터이다.
눈꺼풀 속으로, 타들어 가는 듯한 상의의 붉은색, 흰 머플러, 치렁하게 쏟아져 내리는 검은 머리 다발의 폭포, 그리고 말라 보이는 검정 바지 스타일의 엄숙함, 또 그 반대의 경쾌함.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자유로이 코디하고 있는 삼십대 후반의, 바이올린 여자의 이름은 틀림없는 행복일 것이다.
“이름은 조화현(趙華玹)이구요. 박문여고 나왔구요. 서울서 실패하고는 바닷물이 멀고 맑은 작은 도시로 갔지요. 그래서 거기 학교 관현악과를 졸업한 거예요. 그게 좀 나를 괴롭혀서 자주 수평선을 마시고 취하고, 마시고 취하고 그랬거든요.”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목소리가 그래서 그런가. 여자의 말씨는 꼭 그렇게 젖어드는 듯하면서 또 한편 감정의 어느 구석을 활로 문지르는 듯하다. 떨리기도 하고, 날카롭게 들쑤시기도 하고. 어찌 보면 바이올린이란 녀석은 늘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울기 직전의 자주색 눈매 같은 소리! 사내도 여자도 아닌 그 눈빛의 고음! 눅눅하게 취한 듯한 저음. 아닐까?
여자는 기악을 하는 음악인 치고는 손, 손가락이 작은 편이다. 바이올린 녀석도 그런 것 같다.
“손이 작아서 악기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물으려는데, 여자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병치레를 자주 했다는 말, 피아노를 쳤었는데 병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졌다는 말, 바이올린으로 진로를 바꾸었다는 말, 그리고는 인천에서 열렸던 콩쿠르는 거의 휩쓸었었다는 말, 생상을 좋아한다는 말, 중학교 때부터 마음에 두었던 오빠 친구를 고등학교 시절 끝내 미국으로 떠나보냈다는 말을 길게, 길게 들려준다.
이제 8평 음악실 안은 이쪽에서 여자에게 고집해 하는 수 없이 여자가 선사하는 문 리버(Moon River)의 은물결이 잔잔하게 부서지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의 바이올린은 정말 슬프면서 사랑스러운 존재다. 아름다우면서도 이상스럽게 슬프게 보이는, 왜 그런지 말하기 어려운, 여자들의 그 서러움 같은 게 왜 바이올린 선율처럼 강물이 되어 서러운 것인지….
“절대 내 팸플릿 접지 마세요. 얼굴 사진 접히니까요.”
여자가 모 지방지 인터뷰 기사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여자는 ‘아이신포니에타(i-SINFONIETTA)’라는 단원 13명의 현악 앙상블 단장이다. 이들은 1년 두 번 정기연주회와 청소년을 위한 연주회를 갖기도 하고, 사계절 연주회도 개최한다고 한다. 저마다 직업이 다른 멤버들이 모인 앙상블이란 것이 말처럼 꾸려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운영 자금 부족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터이고. 그러나 바이올린 여자는 웃는다. 행복한 얼굴빛이다. 언젠가는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날 것을 믿으니까 말이다.
몇몇 아이들 레슨, 연습이 있는 수요일에는 부흥초등학교에 가서 선생님들 바이올린 레슨, 저녁에는 교사 현악앙상블 지휘로 한 주일을 산다. 물론 다른 오케스트라에도 드문드문 참가한다. 그것이 여자와 아이, 두 사람 육신이 삶을 살아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여자의 선택이었는지.
“혹시 자유주의자…?”
이쪽에서 또 이렇게 질문하려는 순간, 엉뚱하게도 아프리카 어느 오지 나라, 내전으로 피폐해진 그 나라가 슬프다고 한다. 그리고는 시각장애인 테너 안드레이 보첼리의 노래를 틀어 놓는다. 여자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맛본 세 번의 깊은 좌절, 모래밭, 기쁨과 슬픔, 문득 이런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젖은 이쪽의 옷이 다 마른 것도, 바이올린을 잡은 여자의 눈빛이 타오르는 것도 틀림없는 인생의 일부인 것이다.



다시 또 한 곡, 온몸으로, 영혼으로 활을 잡고 연주하는 모습이 아주 열정적이다. 저 순간이 고통도 쾌락도 없는 어떤 법열(法悅) 같은 느낌일까. 찡그리기도 하고, 웃는 표정도 하고, 쓰러질 듯하기도 하고, 꼿꼿이 승천할 것 같기도 하다. 오, 연주자들의 해탈이여.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외경스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날 황사가 섞인 비를 맞고 걸으며 그것이 인생의 자유이며 부자라고 생각한 그 답, 그 메아리인 셈이다.
“저는 스카프를 좋아해요. 가지고 있는 것만 열 개가 넘어요.”
연주를 마치고 여자는 난데없이 스카프 이야기를 한다. 따듯하면서 스타일을 연출을 하는데 아주 유리하다는 지론. 날씨는 벌써 한여름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스카프라니. 그러나 여자의 말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수첩에 따라 적는다. 눈을 감아도 보일 것 같은 여자의 긴 스카프의 휘날림. 흰 강물의 흐름.
여자는 틀림없이 언제나 환할 것이고, 섣부르게 울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눈동자 깊숙이 자신을 응시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지휘할 것이다. 강물은 흐르고 거기에 빗줄기가 내려 뽀얀 안개를 피워 올리기도 할 것이며, 노을이 가끔 찾아와 그 붉은 빛으로 더욱 성숙한 저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바이올린 현들이 퉁겨 내는 선율을 귓속에 담는다. 돌아가서 부지런히 메모를 해야 할 것 같다.


 


※주변에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에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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