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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속의 효자 신현철 씨
옛날이야기 속의 효자
신현철 씨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솔직히, 신현철씨를 만나러 가면서, 속으로 울었다. 문득 잊고 살던,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내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엄마! 효자 신현철 씨가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럽고, 사뭇 올려 생각이 되어서, 고작 조약돌만한 자책으로 가슴을 치며, 엄마 생각을 한 것이다. 어린애같이, 쉰이 될 때까지도 ‘엄마’라고 철없는 어리광 소리나 내던 자식의 가슴 안에서, 그래도 내 어머니는 “얘야.” 하시며 그 작은 몸짓으로, 그 옛날 음성으로 살아나시는 것이었다.
가신 지 벌써 십수 년. 슬펐다. 육십이 되어, 결국 사는 일이 다 엉망이 되어 버린 이제, 새삼 살아가는 일이 바빠 엄마 생각 한번 못했다는 것이 차마 말이 되지 않아서 속으로, 속으로 울고 가는 길이었다. 내 어머니는 결코 큰 분이 아니셨다. 그저 조용히, 무식하게, 자식 일곱이나 안아 기를 그만한 품밖에는 가지신 게 없으셨던 엄마. 차창을 내다보며 봄이 오고 있는 저 앞산이 슬퍼, 저 진달래 피는 하늘 밑이 서러워 꾹꾹 눌러 울면서 가는 길이었다.
학교 일이라도 주로 영선(營繕) 관계 일이니 바깥에서 하는 일이 많을 터이고 겨울이면 추위에, 여름이면 햇빛에 시달려 자연히 검게 얼굴 그을릴 것은 당연하겠지. 물론 아이들 시험지, 통신문 같은 것 등사(옛날처럼 원지를 ‘가리방’에 대고 철필로 긁는 것은 아니고 지금은 고속 복사로 처리하는 게 다르다.)도 하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에게 학교 안에서 달리 무슨 말수가 필요하랴. 우리 나이 사십 세, 노총각 신현철 씨는 이렇게 인천 부평북초등학교 기능직으로 있는 것이다.
마주앉은 그의 그을린 얼굴에서 먼저 가려지지 않는 그의 우수(憂愁)를 읽는다. 윤곽이 다소 가냘프게 보이는 샌님같이 갸름한 얼굴이어서 조금 더 침울한 듯 젖어 보인다고 할까. 거기다가 무테안경 속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고요하고 멀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는 우수형(憂愁型)의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가 풍겨내는 고요한 슬픔. 그가 내비치는 잔잔한 그 우수의 물결.
흔히 말하듯 효자라면 어딘가 좀 두툼해 보이고, 덤덤하면서 바트지 않은 모습이 머리 속에 그리는 게 보통인데 그는 그런 익숙한 상상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영민해 보이면서 이지적이고 우수적인 것이다. 더욱 그런 이미지를 주는 것은 미간 근처에 희미하게 떠도는 안개 같은 것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뒷모습에서 풍기는 적막한 느낌, 어깨에 내려앉는 고요. 그런 분위기가 그를 착한 효자라기보다는 혼자 문을 닫아걸고 조용히 세상을 살아가는 한 샌님 시인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제 그 안개를, 우수를 어머니의 환후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1983년 여름,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남양주시에 살 때였다. 행상에서 돌아오시던 어머니는 덤프트럭에 사고를 당하시고 두 시간 가까이 차 밑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경상남도 진주에 출가해 있는 누이 하나가 식구의 전부인 아들은 1년 넘게 어머니의 대소변을 혼자 받아냈다. 수술만 세 번, 이제 어눌하게나마 어머니는 말씀을 하시게 됐고, 열 걸음을 걷고, 쉬고 하는 보행도 조금은 되찾았다. 그러면서 그것이 오늘까지 23년이었다. 인천에 오게 된 것은 1990년 취직을 위해 노력하다가 인천 삼익악기 직업훈련원에 입소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1995년 우연히 앞집 분의 도움으로 학교에 기능직 요원으로 취직이 되었고, 이 부평북초등학교가 세 번째 학교. 학교를 옮길 때마다 셋집도 따라 옮겼다는 신 씨. 언제라도 급하면 어머니께 뛰어가기 위해서. ‘어머니, 내 둥근 보름달’이라고 말하는 신 씨. 그 보름달 같은 환한 어머니를 안고 선 신 씨가 부럽다.
“세상에서 말로는 다들 효자라고 하면서 도무지 무관심하더군요. 흔한 일로 무슨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는 효자상(孝子賞) 하나를 천거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죠.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신현철 씨를 천거해야겠다고 생각해 오다가 하루는 교육청에서 삼성효행상(三星孝行賞) 후보자를 천거하라는 공문이 오지 않았겠습니까? 당장 신 씨를 천거하도록 했지요. 그게 결국 신 씨의 효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이지요.”
고마운 분, 이동규(李東揆) 교장선생님은 정말 자신의 일처럼 그때의 사정을 기쁘게 설명한다. 교장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 말없이 눈만 내리깔고 앉아 있는 신 씨가 이처럼 큰 상을 받을 날이 과연 언제가 될까. 옥(玉)은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언젠가는 분명 사람 눈에 띌 것이고, 그 옛날이야기처럼 효행은 아무리 낮게 수그려 해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사실이 백일(白日)처럼 환히 세상에 비쳐질 것이 틀림없지만….
“어머니는 다행히, 강골이셔서, 그리고 자존심이 있으신 분이어서 제가 편합니다. 어머니가 그런 분인데 제가 무슨 효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제가 불효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전 사실 상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 씨의 말끝에는, 사십이 되도록 결혼을 못한 아들에 대해 어머니가 가지시는 미안한 마음, 이것이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혀 드리는 불효라는 의미이다. 이런 사람! 이런 진짜 효자! 몇 마디 받아 적는 손이 멈추고 다시 눈앞이 흐려온다.
“하지만 결혼은 훗날이나 생각할 일이고요. 사귀는 처자는 있지만 제가 어렵지 않습니까?"
내 어린 시절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옛날 어느 곳에 참으로 효성이 지극한 효자 부부가 어린 외아들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안은 지극히 가난했어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 행복한 가정에 불행이 찾아왔다. 이 세상에 단 한 분뿐인 어머니께서 병석에 눕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병환은 나날이 위중해져서 이제는 백약이 별무 소용인 지경에 이르렀다. 효자 아들은 침식을 전폐하고 어머니 병 구환을 했으나 다 허사였다.
행복했던 가정은 폐허처럼 삭막해지고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아들은 뒷산으로 올라가 산신령께 어머니의 병환만 낳게 해 준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노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런 다음날이었다. 지나가던 돌팔이 하나가 사립문을 기웃하더니 그만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서는 것이었다. 잠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돌아오던 아들은 돌팔이의 이런 행동을 보자 급히 불러 세우고는, 어찌해서 집안을 들여다보며 혀를 차느냐고 물었다. 돌팔이는 효자 아들에게 집안에 우환이 있은즉, 당신 어머니의 병이 위중한 것이오. 어렵기는 해도 그 병을 고치려면 한 가지 비방이 있으니, 다름 아닌 효자의 어린 외아들을 산 채로 가마솥에 삶아 어머니께 바치라는 것이었다. 청천 벼락이었다.
그러나 옛날이야기였다.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오직 한 분뿐이었다. 부부는 작심을 하고는 서당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냉큼 잡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었다. 불경스러울까 눈물도 흘리지 못한 채 끓는 가마솥을 열었을 때는, 이 무슨 기적인가. 거기에는 아이 대신에 수백 년 묵은 산삼이 삶아져 있었고, 놀란 효자 부부 앞에 서당에 갔던 아이가 들어오며 “아버지, 어머니 서당에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애타하는 아들의 효심을 굳이 시험해본 신령이 다소 심술궂기는 해도, 결국 극진한 효심이 산삼을 얻게 했고, 어머니의 병환을 낳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신 씨의 효심은 이제 교장선생님이 세상에 알려 주었으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신령께서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어머니도 쾌차하실 것이다. 일흔 두 살의 어머니는 분명 건강한 몸으로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으실 것이다.
아침은 나올 때 챙겨 드리고, 다시 저녁은 돌아와서 짓고. 내 아픈 어머니와 단 둘이서 연애하듯 소꿉놀이하듯 그렇게 한 번 더 살아봤으면 싶다. 내, 가자미처럼 납작하고, 땀에 전, 오직 비린내뿐이었던 어머니. 이 좋은 시절, 그리운 5월, 내 어머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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