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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명 <강화의 아침>
이철명 화백은 1959년 경기미협사무장을 시작으로 경기미협부지회장(1966), 한국미술협회경기도지부장(1976), 예총경기도지부장(1977~1980), 예총인천직할시지회장(1981), 한국미술협회인천직할시지회장(1981~1982) 등을 역임하며 예술계 지도자로 척박한 향토문화의 재건과 예술인들의 권익옹호에 노력해왔다. 아울러 그는 한국수채화협회부회장, 한국수채화회고문 등을 지내며 지역화단과 중앙화단과의 연대에 힘쓰는 한편 경기도미술대전(1982년부터 인천직할시 미술대전)을 창설하고 운영하며 후진 발굴에 힘써왔다.
젊은 이철명이 활동가로, 예술계의 지도자로 인천 예술계의 중차대한 일들을 풀어나갔다면, 70년대에 이르러 그는 몇 번의 유화개인전(69, 70, 71, 75, 76)을 연 이후 80년대에는 수채화가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인천은 국내 지역화단에서 어느 지역보다도 수채화의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이철명 선생은 그 이유를 ‘청관문화' 때문으로 말하곤 하는데, 즉 청관이라는 이국적 정경이 학생들을 끌어들여 그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청관의 울긋불긋한 원색들의 조화가 화심(畵心)을 부추기고 중·고등학교시절부터 이러한 경관을 그리다 보니 자연히 인천연고의 화가들은 풍부한 색조의 생동감 있는 수채화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화단에서 인천은 박영성(전 인하대교수), 안영(전 한국수채화협회회장), 이철명 화백 같은 걸출한 수채화가들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어느덧 고희를 훌쩍 넘긴 이철명의 수채화는 바야흐로 초법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무(煙霧)가 걷혀가는 강화들녘의 아침풍경을 무채색조로 사생한 이 그림을 보면 색채, 형태, 표현 등에 있어 사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표현의 비사실성에도 불구하고 그 모호성이 오히려 경험을 명료하게 해주고 직접적인 사실표현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감을 확보한다. 대상의 이미지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표현된 대상은 격조 있는 운필에 의해 생동하고, 거친 듯한 화면은 화가의 연륜에 의해 달성된 힘의 제어에 의해 역설적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글 _ 이경모(인천대학교 겸임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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