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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테마 - ‘입학 & 시작’
우리반 입학생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맡게 되어 3월 초 입학식을 치르는데 우리 반 아이 중 한 아이가 유난히 엄마를 찾으며 불안해하더니 급기야는 입학식을 다 치르지도 못한 채 혼자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중에는 유난히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가 종종 있어 그런 아이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 후 수업시간 중에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집에 가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고 늘 엄마를 찾으며 상당히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나 지났을까. 어느 날 그 아이 엄마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았다. 엄마의 말인즉 아빠가 술을 드시면 아이들을 연장으로 때리는 버릇이 있는데 누나는 좀 커서 아빠의 폭력을 피하지만 작은 애인 우리반 아이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늘 아빠가 던지는 망치며 펜치 같은 연장에 맞아 아빠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면 아이가 매우 불안해하며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놓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집에 있는 엄마가 혹시 어디 나가지는 않을까 늘 불안한 마음에 공부를 다 마치기도 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이번 기회에 아빠가 아이를 때리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이모네 집에 잠시 다녀 올테니 그 동안 아이가 결석을 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엄마가 돌아간 후 아이의 몸을 살펴보았더니 아이의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는데 등과 팔, 다리 쪽에 온통 퍼런 멍이 들어 온 몸이 울긋불긋했던 것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던지. 세상에 저 귀엽고 조그만 1학년 아이의 몸을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더군다나 아빠가…. 그 애 없는 일주일동안 교회에 가서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다. 제발 그 아버지의 마음이 바뀌어 그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다른 평범한 아빠처럼 이 아빠도 아이가 예쁘게만 보이게 해 달라고… 내 아이인양 그런 아픈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던 며칠 후 기적처럼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엄마의 설명인즉 아빠가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때리는 일 없이 생업에 열심히 매달리며 아이들을 사랑해준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 아빠가 폭력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잠시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 후 학교의 1학년 꼬마들이 입학할 날이 다가오면 지금은 씩씩한 고등학생으로 자라고 있을 그 애 얼굴이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고 지금은 화목하게 살고 있을 그 집 식구들 생각이 나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경희 (남구 숭의4동)
잊을 수 없는 입학식
사람들에게 있어 입학은 나름대로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고 중요한 전환점이기도하며 그간 소원했던 가족 간에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성장과정에서 나는 유독 부모님과 트러블이 많았다. 부모님은 대화를 모르시는 분 같았고, 항상 지시와 핀잔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성격이 강한 아이가 아니었던 나는 항상 그런 부모님의 신뢰감을 받지 못했고, 항상 걱정거리로, 못 믿을 아이로 남았다.
이윽고 나에게도 기회는 왔다. 고3을 시작하는 겨울방학 때 나는 다짐했다. 고지식하고 엄격한데다 무뚝뚝한 부모님이 싫었다. 그런 부모님에게 벗어나고픈 마음에 나는 대학만은 고향근처가 아닌 다른 도시로, 가능한 멀리 대도시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결국 내 의도는 성공했고 나는 내가 바라던 인천에 있는 대학으로 시골에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부모님은 못내 걱정스러워 하시면서도 내 유학을 용인해 주셨다.
부모님과 함께 자취집도 알아보고, 이것저것 자취에 필요한 도구를 사고,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는 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밥솥에 밥을 안치는 방법부터 기본적인 밑반찬을 마련하는 방법까지…. 나는 다가오는 대학생활에 설레기도 하고 한편 부모님을 벗어난다는 것이 기뻤다.
입학식이 있은 후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끝나고 부모님은 막내만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나시고 나만 학교근처의 자취 집에 홀로 남겨졌다. 혼자 남겨진 나는 왠지 울음이 나왔다. 입학식이 있던 그 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입학식장인 대운동장으로 가는 교정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하마트면 손을 놓칠 뻔했다. 누가 먼저 잡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다만 표현이 부족했던 게다. 막내인 내가 대학에 입학한 사실에 만족해 하셨다. 좀체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
그렇다. 오히려 그간 내가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않은 것을…. 왜 나는 내가 다가가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런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나고파 나는 대도시인 인천으로 자취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길 것 만 같던 대학 4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세월이 많이 흘러 돌이켜 보면 대학생활은 순식간이고 짧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입학식 때 아버지와 내가 서로 느꼈던 따뜻한 손길만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항상 내 가슴속에 영원할 것 같다. 그때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박우영 (계양구 병방동)
시작이라는 설레임을 간직한 선생님
칼날 같던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던 겨울도 이제 거의 지나간듯 합니다. 밖에 나가면 어느덧 목련 나무 가지에 꽃봉오리가 조그맣게 피어나고 있고요. 요즘 부는 바람에는 왠지 모르게 봄냄새가 물씬 나고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따뜻한 바람과 함께 이즈음 ‘시작’이라는 말 또한 가슴깊이 다가옵니다. 시작이라는 말 만큼 두근거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요? 그리고 시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입학. 유치원 입학식의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입학식은… 새 가방과 실내화를 머리 위에 두고 잤던 기억이 나는 걸 보니 정말 기대하고 가슴 설레었나 봐요. 중학교 입학식은 난생 처음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자르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요. 아이들 뒷모습이 다 똑같아서 친구를 잃어버릴까봐 손을 꼭 잡고 걸어다녔던 기억이 나요. 고등학교 입학식은 대학입시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시작해서 그런지 벌써부터 수험생이 된 듯한 묘한 걱정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 입학식 때는 해방감과 자유라는 들뜬 기분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그렇게 여러 해의 봄을 맞았네요. 그리고 이번 봄에는 정말 가슴 설레는 시작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적 그랬던 것처럼 새 가방과 실내화를 머리 위에 두고 가슴 설레며 잠 못 이룰 아이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선생님…. 앞으로 향긋한 봄나물 같이 싱그러운 아이들이 저를 이렇게 부르겠죠?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고 신나기만 합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신 선생님들처럼 저도 아이들을 많이 사랑할 수 있겠지요? 제가 잘 되기를 바라시면서 꾸짖으시던 선생님들처럼 저도 아이들이 바른 길을 가도록 이끌 수 있겠지요? 많은 이야기로 꿈을 주시던 선생님들처럼 저도 아이들 가슴에 희망을 줄 수 있겠지요?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요. 하지만 이번 봄에는 최고로 신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시작이라는 가슴 설레임을 간직한 선생님이 말예요.
박상희 (서구 신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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