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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테마 - '나들이'
미래로 향한 내고장 인천
오늘은 3월 1일, 국기를 달고 조반을 먹고 월미도에 가기로 하였다. 큰길가의 태극기의 행렬이 우리부부의 나들이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따스한 봄햇살이 곧 노오란 생강꽃을 터뜨릴 것 같은 화창하고 투명한 날이다. 벌써 월미도 주차장엔 부지런한 사람들의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완만한 언덕길 양쪽으로 누렇게 시든 야생화의 이름이 정겨웠다. 누가 고맙게도 이름을 붙여 주었는지 다음에 다시 한번 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끼리의 나들이가 많았는데 그중 십 여명의 대가족의 소풍이 돋보였다. 칠순도 넘은 노부부와 그 자손들이 월미도 정상 가까이에 올라갈 땐 할머니를 업고 가며 조잘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정상에 다다르니 자유공원이랑 답동성당, 내리교회, 친정부모님이 다니시는 화도교회, 수도국산이 있는 곳에 새로 들어선 솔빛마을 아파트가 성처럼 울타리를 친 듯 멋져 보였다. 그리고 중국으로 가는 큰배(골든브릿지)도 눈 밑에 보였다. 이곳은 북쪽의 정상에서 본모습이고 남쪽의 정상에선 세계로 향한 물길과 시원하고 푸른바다! 영종대교 그리고 세계로 향하는 인천공항! 가슴이 탁트이는 듯 하였다.우리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잔디밭 위에 앉아 있었다.
또한 며칠 전에 등산한 무의도의 호룡곡산이 날이 좋아 잘 보였다. “저 너머에 천국의 계단 촬영지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도도 있겠지!” “무의도의 저 산은 뭐더라? 아! 국사봉이야! 그치?”하며 예순을 몇 년 앞둔 우리는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산을 내려와 새싹이 뾰족이 돋는 월미산 일주 산책로를 돌아 차이나타운에서 자장면을 먹고 아암도에 들러 송도 신도시로 향했다. 아암도도 깔끔한 산책로와 그늘막 등으로 단장한 모습이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좋겠다 싶었다. 월요일이라 송도신도시 홍보관은 문을 닫아 아쉬웠으나 여의도의 몇 배 만한 넓이의 신도시에 쭉쭉 뻗어 올라가는 아파트와 빌딩들이 밝은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는 듯하였다. 인천에 산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여보! 4월에는 아들내외와 딸내외 모두 함께 다시 와서 사진도 찍어 봅시다.” 쫙 뚫린 연수구의 넓은 도로를 신나게 달리며 다짐하였다.
황인원 (부평구 십정2동)
기다려지는 봄나들이
얼마 전, 마흔 여덟 해 만에 차를 장만했다. 우리 차라고 말 꺼내기 남사스럽지만 94년식 프라이드를 아는 사람에게서 명의 이전하고 보험 들어 타는 조건으로 넘겨받은 것이다. 외무사원 일을 하면서 기동성이 없어 그동안 겪은 불편을 말로 다하지 못하지만 아직 버텨온 터에 이번 결심을 서두른건 아버님 때문이었다.
올해 73세인 아버지는 2년 전에 버거스C란 희귀병으로 다리를 절단해 지금은 방에만 누워 계시는데 중증 장애에다 워낙 기력마저 쇠잔하시니 당신 스스로 화장실 출입하시는 걸로도 식구들의 큰 일을 덜어주는 셈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 지붕 밑에서 지내온 세상살이가 왜 그리도 굴곡이 많은지... 없는 살림일망정 조금씩 늘리며 3대 여섯 식구가 화목하게 살아왔으나 아버님이 저렇게 되실 무렵엔 하던 일마저 설상가상으로 안풀리는 바람에 정든 집과 가게를 처분하고 사글세 살이를 하게 되었다. 휠체어조차 마음대로 탈 수 없는 변두리 동네. 그러니 웬만큼 큰 볼일이 아니면 밖에 모시고 나올 형편도 되질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인천에 처음 와서 터를 잡은 곳은 송도였고, 그 때만 해도 아버지는 운동 삼아 청량산에 오르내리거나 큰 물통 두 개씩 챙겨서 약수를 떠 나르셨다. 새벽마다 손수 맑은 물을 길어와 식구들 마시게 하는 걸 큰 낙으로 삼아오신 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렇듯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심정이 오죽하시겠는가. 그것이 내 가슴에 맺혀 어떻게든 바깥 세상을 자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맘뿐이지 주변머리 없는 데다 능력에 부쳐 엄두를 못내온 것이다. 온가족 함께 밖에 나가본 것이 그 언제 적 일이던가.
비록 낡았으면 어떠랴. 곧 찬바람 걷히면 이 차에 아버지를 모시고 그동안 살던 송도 해안은 물론, 고향 땅도 돌아보게 해드려야지. 그래서 따뜻한 봄이 더 기다려진다. 나들이 때마다 저 고물 차가 누구 못잖은 효도를 할 것이다.
두 다리로 꿋꿋이 밟던 땅을 멀리서나마 둘러보며 시원한 서해 바람을 한껏 쐬시는 날, 아버님 얼굴에선 그래도 웃음 빛이 보이지 않을까.
박정순 (남구 주안2동)
아버지와 함께 한 나들이
10여년 전, 추석날 밤. 음력으로 8월 15일 하필 추석 날 태어나 평생 생일 밥 한 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한 큰오빠를 위해서 온가족이 생일 파티를 해 주기로 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음식 하느라 고생한 며느리들에게 바람도 쐬어 줄 겸 장소는 인천대공원으로 정했다. 집에서 잔뜩 먹었으니 생일 잔치 음식은 커다란 케이크 하나만 준비하고.
그래도 온 가족이 바깥나들이를 하는 건 내가 태어나서 처음인지라 어찌나 신이 나는지. 20대 중반이 넘어선 아가씨인 내가 가장 먼저 설치며 케이크을 사고 사진기를 챙기고 조카들을 재촉하며 모두 차에 타고 인천대공원으로 갔다. 주차장에서 내려 어른 아이 모두 합쳐 열댓 명 되는 식구들이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아이들은 신이 나 뛰기도 하며 호숫가에 다다르니 호수 저 건너편에 마침 달이 뜨고 있다.
한가위 둥근달. 관모산을 옆으로 하고 호수 위에 두둥실 뜨는 달을 보니 더 신이 나 탄성을 지르고 이리 저리 모여 사진도 찍고 야단을 했다. 그 때 기분 좋게 달을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시를 한 수 읊으시는 게 아닌가!
‘달아 달아 밝은 달 / 십오야 보름달은 / 어느 산이든 다 비추는데 / 최고 높은 산부터 비추고 // 십자가에 못을 박고 /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 하늘 나라에 가신 예수님은 / 어느 사람이든 다 도와 주시는데 / 가장 착한 사람부터 도와 주신다’
평소에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시곤 하셨는데 그 날도 시 한 편이 그렇게 탁 터져 나온 것이다. 시를 읊는 아버지 얼굴에 달빛이 훤히 비추던 그 모습이 아련하다.
그렇게 달구경도 마음껏 하고 장미원 잔디밭에 둘러앉아 케이크에 생일 촛불을 밝히고 축하 노래를 불러 주던 큰오빠의 생일 잔치, 참으로 멋졌다.
그리고 몇 년 뒤, 한가위 보름달을 보시며 시를 읊으시던 아버지는 홀연히 세상의 끈을 놓으셨다. 아무 말씀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말이다. 그러니 그 때 그 나들이는 아버지와 함께 한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나들이였던 셈이다.
김양오 (부평구 부평2동)
3월의 인천대공원
작년 이맘때였다. 결혼하자마자 아내가 임신을 해 몸과 마음을 고단해 했다. 아내의 잔소리가 늘어갔고 아내와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골이 깊어 갔다. 아이를 가졌어도 아내는 맏며느리라 집안의 대소사를 항상 챙겨야 했기에 그때마다 섭섭했던 마음은 그대로 나에게로 전해졌다. 몸도 마음도 한없이 지쳐하는 아내가 지나는 얘기로 “왜 장남과 결혼을 했을까?” 라는 말을 비출 정도였다.
그런데 3월의 휴일 날, 아내에게 집에서 30~40분 거리에 있는 인천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가자고 조르는 통에 마지못해 아내는 나와 함께 인천대공원 까지 갔다. 마침 빗줄기가 조금씩 비치기 시작하자 아내는 빨리 가자며 서둘렀다. 나는 비옷을 두개 샀다. 비옷을 입으니 아내는 어린아이가 된 듯 즐거워졌다. 잘 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하며 커다란 나무 밑 벤치에서 비를 피하며 미리 준비한 선물을 아내에게 쓱 내밀었다. 예쁜 반지였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반지를 커플링으로 대신 했는데... “살다보면 이렇게 비가 오듯, 힘든 일이 한 두 번이겠냐, 우리 서로에게 우산이 되어 주자” 라는 말에 아내는 눈물을 터뜨렸다. 정말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은 잊지 못할 나들이였다.
강건우 (남동구 구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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