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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쌍꺼풀 속의 찰랑거리는 웃음 고정현 씨
찰랑거리는 웃음
고정현 씨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표준말 ‘예쁘다’로는 오히려 그 예쁨이 제대로 드러날 것 같지 않은 여자.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쁘다’로 써야만 그 ‘이쁜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날 것 같은 여자. 고정현. 그래.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여자의 눈동자가 생글거리며 피워 올리는 웃음의 빛깔과 다문 입술이 꾸미는 그 아이 같은 귀염성을 옳게 그려낼 것이다.
“세 살 때,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서른아홉에 홀로된 젊은 엄마가 언니와 저를 기르신 거죠. 그 어머니는 4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지금쯤은 춥지 않은 푸른 청죽(靑竹) 바람이 불어오고, 여기저기 봄꽃이 다투어 고운 몸짓을 드러낼 고향 마을 담양(潭陽). 간난(艱難)의 시절이라도 세월은 흘러 여자를 고등학생으로 키웠고 어느덧 자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 온 것이다. 서울로 가야지. 앞서 올라온 언니가 있으니 여자는 그나마 쉽게 서울을 디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잡은 것이 미용 기술. 그것이 여자의 미래였고 오늘이었다.
“절대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라. 내 손으로 이루어라. 남의 것은 오물보다도 더 더럽게 여겨라. 어머니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가르치셨어요.”
그런 심지(心地)가 있어 샴푸일, 바닥 청소, 가위 등속의 도구들을 정리하는 일이 힘들지 않았다. 성공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과거들. 그런 내공이 쌓여 오늘도 저렇게 웃을 수 있고 저렇게 젊을 수 있을 것이다. 정직하고 선한 마음이 이룩한 여자의 내면. 그것이 눈부실 만큼 환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고정현 헤어」. 이번 호는 사실 남자를 취재할 차례였다. 그런데 그게 귀찮았다. 네 시간인가 다섯 시간인가, 종일토록 서서 떠들다가 동인천역에서 부평행 전철을 탄 것은 오후 4시. 졸음은 쏟아지고, 그러면서 남자를 만날 일이 그다지 내키지도 않았고…. 요즘에는 이런 직업을 가진 남자도 많으니까, 아니 오히려 더 유명한 남자 미용사가 많다니까, 고정현? 그런 남자 중의 한 사람이겠지.
깜빡 조는 사이 차는 멋대로 황사의 봄을 향해 달려가 버렸고, 버려진 듯 늙고 추레하게 이 세상 마지막 나귀같은 몰골로 절뚝절뚝 걸어서 당도한 곳이 「고정현 헤어」. 부평거리가 좀 낯선 것도, 10분 넘어 무릎이 아팠던 것도, 그리고 이쪽보다 앞서서 아무도 와 있지 않은 것 역시 우울했다.
피로와 상심과 삶. 아아, 덫에 걸린 것이야. 유리창, 부평 백화점, 아파트 단지, 썬팅이 된 햇빛, 그리고 엉뚱하게 미용실 유리창 앞에 앉아 있는 나귀 한 마리…. 그때 고정현! 웃음을 얼굴에 잔뜩 묻힌 환한, 언뜻 누이동생처럼 스스럼없이 애교스런, 매력덩어리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아!”
하마터면 ‘그랬군요’ 소리를 낼 뻔했다. 이름 끝의 한 글자는 자기가 지었다면서 하필이면 왜 고정현이란 말인가. 그제서야 눈에 확, 봄꽃이 몰려 들어온다.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이쪽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인지…. 그게 무슨 꽃이었던가. 화분 가득하게 핀 노란 꽃들은 어느 이른 봄 들판에서 복수초(福壽草)라도 옮겨 온 것일까.
“어머, 차 한 잔 드려야죠?”
남자는 여자 앞에서 우울을 드러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남자의 표정은 개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하느님도 동의하실 것이다. 더구나 여자는 약간 갈색 기가 도는, 맑고 물기 많은 눈동자를 가지지 않았나. 이쁘다. 매력이다. 일부러 헝클어뜨린 듯한 헤어스타일, 하얀 피부, 균형 잡힌 체형. 그리고 자신의 차밍 포인트를 내보일 줄 아는 코디. 눈 싸라기처럼 작고 흰 점들이 수없이 박힌 검은색 시폰 블라우스와 검은 바지와 검은 스타킹과 검은 구두와…. 검정색을 좋아하는 것은 이쪽과 조금은 통하는 취미이다.
참, 여자는 목걸이도 귀고리도 하지 않았다. 핀 하나 꽂은 것이 없다. 왜? 이런 질문은 그냥 입속에서 삭이고 만다. 그게 좋으니까. 그게 더 아름다우니까. 다른 어떤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단순미, 간결미. 얼마나 고급스러운가. 멋이 있다. 그런데 나귀의 우울이 다 풀어진 것을 여자가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어째서 이쪽은 반대로 여자의 손과 매니큐어를 보지 못한 것일까.
여자는 끊임없이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차라리 미소를 피워 올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할 듯하다. 가늘게 속으로 쌍꺼풀이 진 것은 찰랑거리듯 이런 웃음을 자주 웃기 때문일 것이다. 아, 이 봄날은 입을 다문 채 입술로만 착하고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구나. 이제 도착한 사진작가는 부럽게도 그 아질아질한 웃음을 고스란히 앵글에 담아 두겠지.
“나이가 들어 보이나요?”
그렇지는 않다. 여자는 지금 이 순간, 자기 나름대로의 가장 이쁜 나이를 먹고 있다. 지나쳐 바라진 미(美)도 아니요, 가지가 휠 듯 무겁고 숨찬 염(艶)도 결코 아닌, 자신의 고운 나이를 먹고 있을 뿐이다. 십이지(十二支)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이 나라 전체에 유독 그 동물 띠만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바로 그 나이! 아무리 뜯어봐도 여자는 그저 밝고 건강한 것이다. 편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고정현 헤어」는 건강하고 편안할 이유를 아주 충분히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첫째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회에 대해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은은하게 전식(電飾)이 된 110평 실내에는 머리 손질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그득하다. 손님들은 여자의 성실과 재능을 신뢰하는 것이고, 여자는 사람과 사회에 대해 인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팀장 김순화 씨가 원장인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이쪽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설명하던 ‘매년 5월8일이면 대대적인 행사로 할머니들 무료 머리 케어, 독거노인들, 교도소 재소자들 방문, 그리고 여기저기서 수시로 오는 요청을 마다 않고 받아들이는 봉사’로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 어깨를 덮을 지경이던 머리를 조금 커트한다. 가위가 내는 단음의 금속성이 늘 슬프고 처량했던 나귀의 귀에도 어쩌면 그렇게도 경쾌하게 들릴까. 봄이다. 겨우내 얼음 밑에 숨어 있던 알몸의 미나리 향기다. 느긋하고 따스한 샴푸, 두피에 전달되는 가볍고 상냥한 압박감. 흠뻑 취하고 싶다.
“1981년 인천에 와서 처음 문을 열었는데…. 점포는 전부 두 군데예요. 여기 부평 대학빌딩의 본점, 그리고 저 롯데마트 4층에 있는 롯데마트점. 송림동 월마트에 있던 월마트점은 요 얼마 전에 정리했거든요. 직원은 다 합쳐서 40여 명 정도구요. 부탁드릴 게 있거든요. 절대 봉사한다는 말 같은 거 길게 쓰지 마세요.”
마지막 젊은 직원들과 우르르 단체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이 같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게 또한 예쁘지 않고 이쁘다. 그래요. 늙지 말고 오래 남아 있어요. 종다리처럼, 아지랑이처럼, 벚꽃처럼. 그리고 그렇게 봄날이 더 깊고 못 견딜 것 같으면 이런 시도 한 줄 읽을 수 있을 거야.
밤에 홀로 눈뜨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에 홀로 눈뜨는 건 괴로운 일이다
밤에 홀로 눈뜨는 건 위태한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다. 왕망(汪茫)한 폐허에 꽃이 되거라! 시체 위에 벌써 일어나야 할, 머리털이 흔들흔들 흔들리우는, 오- 이 시간, 아까운 시간.
<서정주, 「문(門)」부분>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자가 풍기는 이쁨과 귀염성, 그 매력은 선하고 곧고 밝은 마음을 신념처럼 몸속에 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나는 의지의 또 한 표정이기도 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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