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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빈으로 가는 길’의 시인 천금순 씨

2006-03-01 2006년 3월호

 

 


 


 


 


 


 


 


 


 


 


 


 


 


 


 


 



‘터빈으로 가는 길’의
시인 천금순 씨



글-김 류 (시인) | 사진-김보섭 (자유사진가)


 


그날은 기온이 낮아 차가웠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발전소는 광활한 매립지 훨씬 안쪽에 있었다. 천금순(千錦順) 씨? 귀에 그다지 설지 않은 이름인데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며칠 푸근하다가 다시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그건 엉뚱하고 이유가 안 된다.
시를 쓰는 여자 동업자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를 다시, 이번에는 시든 갈대들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그것은 조금, 그럴 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옛날 청라도, 그 섬을 흔적 없이 안고 있는 이 넓은 매립지, 거기서 말라 죽어버린 가을. 먼지를 쓰고 서 있는 갈대들은 아주 초라하다. 지난 가을에는 풍경이 아주 그럴 듯했었는데. 아, 죽기 전에 도로 담배를 피울까, 어쩔까. 천금순 씨를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을 것이다.
두어 뼘 남짓한 바다는 왜 여태 매립지 근처에서 안달을 하고 있는지. 바람은 왜 그리 적막하게 쉰 소리를 내고 있는지. 다 철망이 쳐져 있어서 그런 거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 이 여자 시인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래, 이런데서 생각지도 못한 무슨 사나운 날짐승이나 한 마리 만난다면…. 솔개, 솔개가 좋겠어. 그놈이 하늘 높이 떠올라 빙빙 돌면 아아, 어지러워라. 이런 것들이 머리 속에서 모조리 생각을 방해하고 있으니, 천금순 씨를 전에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천금순 씨는 화력발전소에서 청소를 하며 지낼까. 천금순 씨의 「터빈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는 요 근래에 썼다고 했던가. 발전소는 어떻게 생겼을까. 발전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굳게 닫힌 뒷문에 닿고 말았다. 소리를 질러도 안에서는 못들을 것이다. 이 거대한 짐승이 아주 심하게, 몸속에서, 무슨 화산 용암 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깊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귀마개를 해야 한다니…. 정문을 찾으려면 온 길을 다시 되짚어 가야 한다.



늦겨울 오후의 해가 혼자서, 거의 다 말라가는 웅덩이 가장자리를 쓸쓸히 배회하고 있다. 폐가(廢家) 같은 몇 채의 집들을 다시 지나고, 쓰레기 소각장을 돌아 서부와 남부로 갈라졌다는 발전소에 닿는다. 이 둘을 합치면 발전량이 360만㎾로 LNG 발전소로는 세계 최대라고 하지, 아마. 그러니 발전소라는 녀석이 차마 거대한, 그야말로 하느님이 만든 몸체 큰 괴물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틀린 것이 아니지.
귀마개를 하라는 표지가 붙은 문을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노란 안전선을 따라 천금순 시인을 만나러 간다. 그렇구나. 천금순 시인은 무슨 ‘반지의 제왕’세트장 같은 곳에 있는 모양이구나. 머리 속을 뒤흔들고 가슴까지 울렁거리게 하는 굉음의 괴물의 내장을 지나 겨우 천금순 시인을 만난다.
어떤 모습일까. 내가 전에 만난 적이 정말 없는 분일까. 어떤 복장일까. 이런 생각조차가 사실 끈적끈적한 선입견이다. 그 선입견 밑바닥에는 작은 키, 그리고 목소리도 가늘고 낮은, 이제 머잖아 봄 햇살 속에 머리를 내밀 밭둑의 냉이처럼 수줍은 그런 타입일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천 시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갸름한 얼굴만은 맞는데 키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다. 검은 바지에 매력적인 꽃무늬 셔츠를 입은 아주 밝고 명랑한 분인 것이다. 이쪽의 도착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예쁜 셔츠를 고른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오십 중반을 넘긴 얼굴 모습이 여간 쾌활하고 환한 것이 아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공연스럽게 청소할 때 입는 작업복을 입힌 것이 영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녹차를 따라주고, 이쪽의 시를 읽은 적이 있노라며, 그리고 그 시가 참 좋았다며, 살짝 추켜 준다. 그리고는 1999년에 낸 『외포리의 봄』과 2003년에 출간한 『두물머리에서』 이 두 권의, 자신의 시집을 내놓는다. 첫 시집 『마흔세 번째 아침』은 이제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다. ‘물안개 자욱한 강물을 본다.’ 세 번째 시집의 표제시(表題詩) 「두물머리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강물도 어제의 강물이 아님을’ 이 둘째 행이 더 마음을 끈다. 그리고 셋째 행 ‘두물머리여’좋다.



눈가 가득히 풍요롭게 웃음을 웃으면서 천금순 씨는 진정 ‘풍요와 봉사’를 위해서 이 일을 택했다는 말을 한다. 풍요! 그리고 봉사! 천 시인에게는 한 달 몇 십만 원이 지상의 풍요에 속하고, 손목의 힘줄이 불거지도록 긴 기름걸레 자루를 밀고 다니는 것이 마음 행복한 봉사인 것이다. 이쪽보다 먼저, 작년에 천 시인을 만나 본 남부발전(주)의 사보 편집실 기자는 천 시인이 월드컵대회 때도 자원 봉사를 했다고 적어 놓았다. 또 보육원, 거리 벽보 제거 같은 사회 봉사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고.
천금순 씨의 일이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할 때까지 터빈 기계실 먼지를 훔쳐내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나 못 들어갈 테니까 천금순 씨의 뒤를, 천금순 씨의 시처럼 좇아가 볼까.


 


발전소 4단계 터빈으로 가는 길
눈발이 날렸다.
잔디밭이 소금밭이다.
땅을 보며 걷던 순금이가
굴뚝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보고
오늘은 구름이 많다고 했다.
누군가 외쳤다.
저 꽃 좀 봐
눈 속에 꽃 피운 매화 한 그루
뜨거운 소금물과 가스로
누렇게 죽은 잔디 위로
새파란 잔디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린 쑥과 함께
새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천금순, 「터빈으로 가는 길」 전문)


터빈으로 가는 길. 결국 터빈에게는 가지 못했지만 그 길에 잔디밭, 어린 쑥과 함께 오는 봄은 만난 것이다. 여기 발전소 20만 평 땅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는구나. 전기를 일으키느라고 쉬지 않고 소리를 내고 있는 발전소의 마음을, 쇳덩이들의 마음을 시로 위로해 주는 아주머니. 그러고 보니 기계들이 ‘시인 아주머니’ 하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덩치는 괴물같이 커도 착하고 순진한 기계들. 천금순 시인의 봄이 온다.
이쪽은 어제의 과음이 좀 힘에 겨운데, 그리고 4시쯤에는 고 은(高銀) 시인이 무슨 문학회에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고, 거기를 가야 하는데 문득 발전소 앞 물가 허름한 간이 건물, 식당에서 해물전을 부치자는 것이다. 해물 칼국수 맛도 일품이라고 했던가. 다시 회가 동한다. 시인은 시인의 뱃속을 알아보는 것이다. 허나…. 이쪽에서 하는 수 없이 ‘고 은 시인’을 말하자 또 얼른, 몇 해 전 바로 고 은 시인이 써 준 자신의 ‘시집 표지 추천의 말’을 펼쳐 놓는다.



“…부디 내일 더 작두 칼날의 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갖은 정서를 허공 중에 대고 있어 마음 분주하구나. 이 중에 귀 기울이게 하는 몇 편 있어 거기서 멀어져 가는 파도소리를 듣는다. 좋구나.”
그뿐인가. 구 상(具常) 시인, 그리고 이쪽이 좋아하는 정공채(鄭孔采) 시인의 엽서도 있는 것이다.
소시적 고생을 건너 천금순 씨는 참 잘 살아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흰 솜털 같은 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스크랩북 속에 납작하게 눌려 있는 이름 모를 풀꽃송이들. 말라 버린 나무 잎새의 선명한 잎맥들. 그처럼 수수하게, 진솔하게, 향기롭게, 축복처럼, 봄처럼 살아 온 시인 여자. 날은 추웠어도 천금순 씨네 발전소를 뒤에 두고, 돌아 나오는 이쪽 남자 둘은 마음이 제법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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