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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문화와 상품의 두 얼굴

2006-03-01 2006년 3월호

 

 



영화, 문화와 상품의
두 얼굴



글-서정호 (인천항만공사 사장)


 


최근 영화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읽을 기회가 많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기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탈옥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홀리데이’라는 영화가 마땅히 개봉할 상영관을 찾지 못해 조기 종영되거나, 축소 상영된다는 가십이었다. 또 하나는 요즘 한참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 스타들의 시위에 관한 이야기다. 앞선 기사는 영화라는 문화 예술 매체가 대기업 자본의 논리에 눌려 상영될 곳을 찾지 못한다는 관점이었고, 뒷 기사는 영화를 세계 경제체제 하에서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이 두 기사를 연이어 읽으면서 내 머리 속에는 영화가 과연 ‘상품’인가, 아니면 ‘문화’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는 한 사회를 투영하는 거울이자 문화적 산물이다. 굳이 각종 문화 담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영화는 사회·문화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에 나선 영화인들의 주장도 문화를 일개 상품으로 격하시킨 FTA(자유무역협정) 협정에 반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가 보내는 메시지는 100%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선뜻 동조하거나, 박수를 보낼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자유무역협정에 반대 혹은 찬성하느냐의 문제, 또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영화 산업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질서에 가장 깊게, 앞장서서 포함됐던 분야다. 그동안 한국 영화인들은 그 산업질서에 몸을 담고 영화 상품을 만들고 돈을 벌어왔다.
한국 영화계가 빚어낸 상품은 이미 기획 단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Made in KOREA’ 영화는 드라마 등과 함께 미국과 일본 등지로 수출되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한류를 이끄는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영화계조차 기획-제작-배급의 주요 단계에서 영화를 ‘문화’가 아닌 ‘상품’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자본이 건설한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은 돈이 되고, 자신의 돈이 투자된 영화만 골라서 입맛에 맞게 상영한다.


자본의 논리가 통용되는 영화 산업에서 소외받은 영화들은 상영될 공간을 찾지 못한 채, 관객들과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사장된다. 대기업 자본과 몇몇 대형 영화 자본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게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다. 결국 영화는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그 순수한 예술적 가치와는 별개로 이미 문화의 영역을 넘어 산업의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영화 산업의 경쟁 무대가 한국을 벗어나 세계로 확장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인들은 한국 내에서 대자본 영화가 스크린을 점령하는 것을 허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천만 관객과 숱한 명작을 만들며 세계로 진출해 왔다.



입장 바꿔 훌륭한 국산 영화를 외국 어느 나라에서 단지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상영 금지시킨다고 생각해 보라. 너무 비약하는 면도 있지만, 위 문장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자동차’로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그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이 될 지 뻔하다.


나는 오히려 한국영화가 그동안 키워온 힘을 바탕으로 다국적 영화 자본과 한판 붙어도 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한판 맞장을 떠야 할 시기가 왔다. 그게 요즘의 국제 경제 질서이자 세계 경제체제에서 상품을 팔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영화라고, 문화 상품이라고 예외가 적용될 수는 없다.
영화나 핸드폰, 자동차 등 어떤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핵심은 역시 경쟁력이다. 한국 영화가 살아남는 방법은 질 높은 ‘상품’이자 ‘문화’를 만들어내 관객들의 사랑을 얻는 길 밖에 없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내 책상 한구석에 붙어 있는 시 구절이다.



고려 말기의 선승인 나옹 혜근 스님이 쓰신 한시다. 무념과 무욕의 정신이 담겨져 있는 명시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쫓기는 듯 살고, 성취욕에 떠밀려 무리한 욕심을 부리는 순간마다 이 글귀를 곱씹는다. 명예와 금전과 권력과 온갖 헛된 욕망에 사로 잡혀 힘겨워 하는 현대인들이 마음에 담아둘만 한 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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