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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위해 산 세월, 후회없어요”
십년이 훨씬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 있다면, 일단 믿고 볼 일이다. 더욱이 그 일이란게 돈되는 것도, 딱히 표나는 일도 아니고 그저 봉사하는 마음 하나로 남들 뒤치다꺼리하는 귀찮은 일이라면야 더 말할 것도 없겠다.
권영순(65세) 씨에게는 얼마 전까지 한국소비자연맹인천광역시지회장(이하소비자연맹인천지회)이라는 타이틀이 붙어다녔다. 한국소비자연맹이란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직접적인 피해구제를 하거나 소비자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소비자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 1991년 2월에 부임해서부터 지난 2004년 2월까지 꼬박 13년 동안 그 테두리안에서 살아왔으니, 권 씨가 보낸 그 세월이 바로 인천의 소비자운동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10여 년을 한결같이 출퇴근 하던 생활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좀 여유를 즐기고 있을까 싶었는데 권 씨를 찾아간 날, 그이는 외출에서 막 돌아온 참이라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얼마 전 서울로 분가한 아들 내외 집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다 정이 든 탓에 아직도 할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세 살배기 손주를 돌보러 아침과 저녁 하루 두차례씩 서울 광화문까지 다녀오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모처럼 맞이하는 휴식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다고 푸념이지만, 그이의 낯빛은 더없이 밝다.
그이가 소비자연맹인천지회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인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인천은 소비자운동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10년을 넘기는 동안 인천지부는 전국 180여개 소비자단체 가운데 상담건수, 처리율 등의 면에서 2위를 차지할 만큼 훌쩍 성장을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의 털털한 성격이 한몫을 했다. 분쟁을 해결하는데 특별히 담당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회장이라는 자리를 그저 감투로만 여겨 책상만 차지한 채 앉아있는 타입이 아니어서 전화상담이든 직접 찾아오는 내방객이든 가리지 않고 직접 상담 일선에 나섰다.
그의 전문역할은 다른 상담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분쟁을 도맡는 ‘해결사’역할. ‘인천회장’하면 다들 무서워 할 정도로 소신과 뚝심을 갖고 밀어붙여 분쟁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로 유명했다.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상담 온 소비자가 처한 상황이 바로 내 자신이 당한 문제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노인들이 광고에 현혹되어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하거나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소리에 솔깃해 다단계업체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 등 소비자가 잘 모르거나 순간적인 실수로 저지른 문제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구제하려 애썼다. 일전엔 남편의 사업실패와 외도로 우울증에 빠진 주부가 1200만원 어치의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했다가 이를 다시 환불 받을 수 있게 해결해준 일도 있다. 그 주부의 심정이 되어 ‘반호소, 반협박’으로 업체를 설득해 일구어낸 결과였다.
이 모든 뒤치다꺼리를 해주는데 받는 댓가는 없다. 그런만큼 그는 ‘고맙다’는 말한마디를 가장 값진 수수료로 여겼다. 하지만 그네들의 수고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얄미운 소비자’를 만날 때는 가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단다.
몇 년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허리통증이 심해진데다 한쪽 눈에 녹내장까지 겹치는 등 건강문제로 어쩔 수 없이 사회활동을 접게 된 만큼 앞으로 당분간은 ‘그냥 놀고 싶다’는게 그의 계획. 하지만 그가 마냥 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램을 덧붙이는 걸 보니 그가 몸을 추스린 뒤 돌아올 자리도 대충 짐작이 간다. 그곳이 볕 잘 드는 양지가 아닌 ‘그늘’인 것 만은 분명하다.
글 _ 박상영 · 사진 _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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