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호젓한 그 섬... 백로처럼 노닐
2004-06-01 2004년 6월호
섬은 하루종일 안개에 묻혀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바다 위에 드라이아이스를 피워 놓은 것 같은 해무(海霧)는 섬을 한층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교동도는 베일에 싸여 있는 듯 하다. 이 섬의 북쪽 해변은 황해도 연백군과 마주하는 DMZ의 남방한계선이다. 지석리 망배단에 서면 황해도 연안읍이 보이며 그곳에서 운행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섬은 그 옛날 연산군, 안평대군 등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교동도가 실제거리보다 멀게 느껴지는 이유들이다.
# 섬 속의 호수
스크루를 힘껏 돌린 화개호는 갈매기의 호위 속에 물살을 가르며 서서히 교동도로 다가갔다. 잠시 후 안개 속에 우뚝 솟은 교동도의 진산, 화개산(259m)의 산자락이 눈에 들어 왔다. 월선포 선착장에 내려 먼저 고구저수지로 향했다. 모내기 물을 가둬 놓은 논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하얀 백로들이 교동도의 풍경을 한폭의 동양화로 그려낸다. 고구저수지로 가는 샛길 양편에는 키 큰 나무들이 사열하듯 서있어 잠시나마 삼림욕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다.
잠시 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쓰임새에 의해 ‘저수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호수’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섬 속의 호수…. ‘고구지’란 이름은 예전에 고구려의 읍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낚시꾼들의 ‘손맛풀이 명소’로 새롭게 자리잡은 고구저수지는 담수능력이 28만평에 이른다. 몇몇 강태공들이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금새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 갈길 잃은 포구
화개산 기슭에는 천년고찰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화개사는 고려시대의 사찰로 목은 이색이 독서를 하였던 곳이라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는 교동팔경(喬桐八景)에 들 정도로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그러나 1840년과 1967년 두 번의 화재로 절을 고쳐지으면서 이제는 고풍스러운 맛을 느낄 수 없어 다소 아쉽다. 다만 절 마당에서 내려다 본 강화 앞 바다의 섬들은 예나지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화개사 옆 남쪽 기슭에는 유서 깊은 교동향교가 있다. 고려 충렬왕 때인 1286년 유학자 안유(안향)가 원나라에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 닻을 내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공자의 화상을 모신 향교이다. 옛날에 교동도는 중국을 오가는 바다 길목에 있어 대부분의 배들은 그곳을 거쳐 갔다. 안유 역시 중국에서 돌아올 때 교동도를 거쳐야만 했다. 초여름 한낮, 바다 건너 석모도의 자태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향교에는 글 읽는 학동 대신 이름 모를 산새들만이 교정을 차지하고 장난치며 놀고 있다.
섬에 와서 바다를 접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남쪽 해안 남선포로 나갔다. 고려 때 바닷길로 다니던 송나라 사신들이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던 당집이 있었고 조선 인조 11년(1633)에는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통어영지가 설치됐을 만큼 해양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제는 포구 갯벌에 걸린 몇 척의 고깃배와 한가롭게 자맥질하는 갈매기만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 남북의 바닷길이 끊기면서 포구는 그렇게 쇠락했다.
글 _ 유동현 · 사진 _ 김정식
가는 길 _ 강화대교를 건너 읍을 지나 송해면으로 향한다. 하점초등학교와 하점면사무소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창후리 방향으로 달리면 창후리선착장에 닿는다. 교동도 가는 배(화개해운 933-3212)는 수시로 있다.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섬이지만 선착장에서 신고서를 간단하게 기재하면 별 어려움 없이 배를 탈 수 있다. 요금(편도)은 일반 750원이며 승용차는 12,000원(운전자 포함)이다.
# 섬 속의 호수
스크루를 힘껏 돌린 화개호는 갈매기의 호위 속에 물살을 가르며 서서히 교동도로 다가갔다. 잠시 후 안개 속에 우뚝 솟은 교동도의 진산, 화개산(259m)의 산자락이 눈에 들어 왔다. 월선포 선착장에 내려 먼저 고구저수지로 향했다. 모내기 물을 가둬 놓은 논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하얀 백로들이 교동도의 풍경을 한폭의 동양화로 그려낸다. 고구저수지로 가는 샛길 양편에는 키 큰 나무들이 사열하듯 서있어 잠시나마 삼림욕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다.
잠시 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쓰임새에 의해 ‘저수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호수’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섬 속의 호수…. ‘고구지’란 이름은 예전에 고구려의 읍이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낚시꾼들의 ‘손맛풀이 명소’로 새롭게 자리잡은 고구저수지는 담수능력이 28만평에 이른다. 몇몇 강태공들이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금새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 갈길 잃은 포구
화개산 기슭에는 천년고찰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화개사는 고려시대의 사찰로 목은 이색이 독서를 하였던 곳이라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는 교동팔경(喬桐八景)에 들 정도로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그러나 1840년과 1967년 두 번의 화재로 절을 고쳐지으면서 이제는 고풍스러운 맛을 느낄 수 없어 다소 아쉽다. 다만 절 마당에서 내려다 본 강화 앞 바다의 섬들은 예나지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화개사 옆 남쪽 기슭에는 유서 깊은 교동향교가 있다. 고려 충렬왕 때인 1286년 유학자 안유(안향)가 원나라에 다녀오는 길에 이곳에 닻을 내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공자의 화상을 모신 향교이다. 옛날에 교동도는 중국을 오가는 바다 길목에 있어 대부분의 배들은 그곳을 거쳐 갔다. 안유 역시 중국에서 돌아올 때 교동도를 거쳐야만 했다. 초여름 한낮, 바다 건너 석모도의 자태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향교에는 글 읽는 학동 대신 이름 모를 산새들만이 교정을 차지하고 장난치며 놀고 있다.
섬에 와서 바다를 접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남쪽 해안 남선포로 나갔다. 고려 때 바닷길로 다니던 송나라 사신들이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던 당집이 있었고 조선 인조 11년(1633)에는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통어영지가 설치됐을 만큼 해양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제는 포구 갯벌에 걸린 몇 척의 고깃배와 한가롭게 자맥질하는 갈매기만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 남북의 바닷길이 끊기면서 포구는 그렇게 쇠락했다.
글 _ 유동현 · 사진 _ 김정식
가는 길 _ 강화대교를 건너 읍을 지나 송해면으로 향한다. 하점초등학교와 하점면사무소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창후리 방향으로 달리면 창후리선착장에 닿는다. 교동도 가는 배(화개해운 933-3212)는 수시로 있다.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섬이지만 선착장에서 신고서를 간단하게 기재하면 별 어려움 없이 배를 탈 수 있다. 요금(편도)은 일반 750원이며 승용차는 12,000원(운전자 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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