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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테마 - ‘수학여행’

2004-06-01 2004년 6월호

딸과 함께 한 수학여행지
지난 토요일 딸과 속리산 가는 첫 버스에 몸을 실었다. 1975년 봄 나는 시골의 여고 2년생으로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시절이었고, 유독 형제들이 많아 수학여행을 가는데도 부담이 컸다. 어머님 생각을 하면 학용품 하나 사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내겐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선생님이 수학여행이란 말씀을 하셨을 때 ‘수학여행을 갈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하지’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행상을 하시며 근근히 생활을 꾸려 나가시던 엄마에게 수학여행비를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걱정스런 마음에 방과후에 집에도 가지 않고 남아있는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 오셨다. 나는 쑥스럽게 사정을 선생님께 얘기했고 선생님께서는 내게 “선생님이 수학여행비를 선물할게 우리반 모두 수학여행을 떠나자”라는 얘기만 남기고는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던지….
수학여행지 속리산 법주사 경내를 둘러보고 대웅전의 단청과 거대한 석불을 배경으로 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께서는 점심시간에 한쪽에서 풀이 죽어있는 나를 이끌어 활기차게 춤을 추게 하셨다. 수학여행지의 자연을 통한 산 교육을 전해 주셨다. 속리산 정상 문장대를 등반 한 것은 수학여행에서의 하나의 큰 소득이었다.
아름다운 유적이 많은 속리산. 여고시절의 수학여행지인 그곳을 언젠가 미련을 갖고 다시 찾겠다고, 못 다한 이야기 꽃일랑 그 때 맘껏 피워보자고 돌아왔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 나이 마흔 일곱이 되어 그 때의 추억이 생각나 대학에 다니는 딸과 함께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던 수학여행지인 속리산을 등반했다. 이처럼 자랑할 만한 일을 했기에 마음이 뿌듯하다.

 

강현숙 (남동구 간석2동)

 

작은형의 메모를 보며
책상서랍이 지저분해 정리를 해본다. 오랜만에 맞는 휴일, 이것 저것 바꿔보며 분위기를 쇄신해본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다보니 눈에 익은 메모가 눈에 띈다. 작은 형의 글씨다. 뭘까? 아, 그래. 형이 일생동안 내게 준 유일한 메모지다. 그 무뚝뚝한 사람이 내게 준 유일한 메모지….
구깃구깃 접힌 메모지를 펼쳐 읽어 내려가자니 불현듯 20여 년 전의 중학생인 나로 되돌아간다. 그땐 작은형과 내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의 설렘으로 괜시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형은 그 당시 차로 달걀장사를 했는데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며 파는 일이었다. 항상 형은 늦게 돌아왔는데 그 날도 역시 늦은 귀가였다.
나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려고 애를 썼는데 좀체로 잠이 오지 않았다. 형이 나를 깨웠다. “너, 내일 수학여행이지? 이거 여행 가서 써라. 나도 너 처럼 중학생일 때 가정형편이 너무 안 좋아 안 가려고 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하고 수학여행비를 개인 돈으로 보태주셔서 겨우 다녀왔었어. 지금은 그 때처럼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가면 사고 싶은 물건, 돈 쓰일 데가 많을 거야.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유용하게 잘 써라.”
평소 무뚝뚝한 형이 갑자기 쥐어준 돈! 잠을 청하면서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형이 돈 5만원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란을 팔아야 할까…. 계란 1판에 500원 남으니까 5만원 나누기 500을 하면… 이런 생각을 하니 도무지 그 돈을 받는 것이 미안했다. 아직 형도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형이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일어나 스탠드를 켜고 메모를 남겼다. 메모의 요지는 난 형이 어렵게 번 돈을 절대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돈을 메모와 함께 책상 위에 놓고 잠이 들었다.
스르르… 잠이 잘 왔다.
이윽고 아침이 되어 생전처음으로 동해안을 따라 설악산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바다를 보면서 저게 바다구나 하는 생각과 탁 트인 공간에서 여유로움과 해방감에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과 재잘거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집을 떠나 새로운 세상, 공간이 있음을 알게되는 신기함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잠시 친구와 함께 숙소를 나와 산책을 하다 무심코 잠바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뭔가가 잡혔다. 분명 돈이었다. 아, 어제 분명 형에게 줬는데…. 꺼내보았다. 형이 다시 돈을 내 호주머니에 넣어 둔 것이었다.
형의 메모와 함께. 형이 예전에 어렵게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사연을 간략하게 적어놓은 메모. 가난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싫었던 형의 학창시절….
형은 내게 재미있게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글을 맺고 있었다. 그 날 나는 형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이 메모지만은 꼭 잘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앨범 속 한 귀퉁이를 항상 차지하다가 결혼과 함께 이곳 인천에까지 와서 서랍 한 켠을 지키고 있었구나.
문득 메모지를 보니 예전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고향에 있는 형에게 안부전화라도 해야할 것 같다.

 

최연규 (계양구 계산동)

 

그땐 그랬지
삼십 여년 전 당시의 수학여행은 여행이라는 개념이 기껏해야 친척집 방문이 전부였던 우리들에겐 최고의 이벤트였다. 놀이공원도 생소했고, PC방도 없던 때라 집 떠나 며칠을 낯선 곳에서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었었다. 여행은 부자들이나 가는 전유물쯤으로 알고있던 때였으니까.
수학여행이 잡혀있는 학기초에 접어들면 교실은 이상하게 흥분된 분위기에 사로잡혀있었고, 5월로 접어들면서 부터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수군수군 대며 그 흥분을 감추었었다.
날짜가 잡히면 체육복도 깨끗이 빨아 놓고, 운동화도 눈이 부시게 하얗게 씻고, 카메라가 있는 친구에게 빌좀 붙자고 예약도 해놓았다. 핸드폰도 없고, 디카도 없었던 그 시절엔 흑백카메라와 야외용 카세트가 최고의 인기품목이었고, 젊음의 상징이었으니까.
친구 집에 모여 기차 타고 가며 선생님 골탕먹일 계획과 캠프파이어할 때 우리 반이 일등할 아이디어도 짜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간 여행은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반찬이 시원찮아도 잠자리가 불편해도 친구들과 낯선 곳에서 며칠을 보낸다는 경험 자체만으로도 즐거웠었다.
아침에 일어나 부시시한 친구의 얼굴도 보게 되고, 잠버릇도 알게되고… 다 비슷비슷한 유적지지만 열심히 브이자 그려가며 사진도 찍고, 엄마에게 선물할 조잡한 목걸이도 열심히 고른다. 연이틀을 꼬박 세운 아이들은 돌아오는 기차간에서는 거의 패잔병수준이 되어 돌아온다. 목이 잠겨 겨우겨우 의사소통을 하면서.
며칠 전 수학여행을 다녀온 딸아이가 반찬이 맛이 없다느니 침대가 불편하다느니 불평하는걸 보면서 그래도 뭔가 부족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왜일까?

 

조미선 (서구 심곡동)

 


아들의 수학여행 사건
2박 3일 설악산으로 떠나는 아들녀석에게 조심 또 조심하고 선물은 절대 사지말고 먹고 싶은 것만 사 먹으라고 당부를 하며 용돈으로 거금 2만원을 주었다. 신나서 가는 아들 뒷모습을 보며 벌써 엄마 품에서 떠나는 것 같아 한편 서운함도 느껴졌다. 하루가 지나도 전화 한 통 없는 녀석. 그런가 하면 아빠는 걱정되어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다음날 아침 7시 반 쯤 전화해서 “엄마 저예요. 어제는 도착하니 늦어서 전화 못했어요”한다. “그래 재미있게 친구들과 멋진 추억 만들어라”하며 끊었다.
2박 3일이 끝나고 드디어 도착하는 날이 되었다. 5시경에 도착 예정이라고 해서 예약한 병원에도 급하게 다녀왔다. 집에 오니 5시 반. 그런데 소식이 없다. 조금 늦으려나 하고 기다렸다. 아들이 좋아하는 고추장 삼겹살을 해주려 슈퍼에 다녀왔다. 저녁 준비를 하다보니 시간이 6시 반이 되었다. 학습지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왔으니 수업을 몇 시에 가야 하느냐고.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할까? 누구한테 전화를 해야 될까? 이 생각 저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혹시 내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왔다가 열쇠가 없어서 학원으로 갔나하고 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학원에도 안 왔다는 것이다.
손발이 떨리고 진정이 안되어서 안절부절하고 있다보니 7시가 되었다.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왜 이제 오냐니까 지금 도착했다고 한다. “다른 애들은 5시 30분에 다 왔다는데?”하니까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PC방에서 놀다 왔어요”한다. “그럼 전화를 해야지. 엄마는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는지 아니?”하니까 “죄송해요. 전화가 없어서…”하면서 가방을 뒤적이더니 술병 같은걸 꺼내놓는다. “뭐니?”하고 물으니 “선물이예요. 몸에 좋은 거라고 해서 샀어요. 강원도 산 속에서 나는 열매로 만든 거래요”한다. “고맙다”하며 “지현아 엄마는 심장이 안좋아서 신경 쓰면 안돼. 너 때문에 엄마 수명이 몇 년은 단축되었을 거야”했지만 한편 기특했다.
선물이라고 사온 걸 보며 흐뭇했다.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셔서 온 가족이 모여 술 아닌 술을 꺼내서 한 잔 씩 따라 마시며 아주 달콤한 맛과 행복을 느꼈다.

 

이순행 (연수구 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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