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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속의 중국 절 화엄사 주인 필중화 씨

2005-10-01 2005년 10월호

 













 


 


 


 


 


 


 


 


 



인천 속의 중국 절
화엄사 주인 필중화 씨


필중화(畢重華) 씨는 중국인이다. 그리고 일승(一乘)이라는 법명을 쓰는 승려다. 우리에게는 좀 낯설지만 중국 절 화엄사(華嚴寺)의 주인(主人)이다. 주지라고 부르는 것보다 주인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느낌에 가까운 것은 그의 외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어려서 가졌던 이 절에 대한 인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데다 절이 마치, 필중화 씨 혼자 사는 저택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절이 우리나라 불교 무슨 종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중국, 우리나라 양쪽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외딴 절일지 모른다.
자유공원에서, 재작년에 대륙 무슨 도시에 있는 중국인들이 돌을 가져다가 새로 지은 선린문(善隣門)을 지나, 또 새로 보수한 긴 돌계단을 내려서면, 북성동과 송월동을 잇는 사이 길을 만난다. 거기서 청관(淸館) 반대 방향, 즉 송월동 방향으로 몇 발짝을 가면 왼쪽 가로, 집들이 죽 늘어서 있는 중간에 우리나라 절과는 담벼락부터 다르게 생긴 붉은 벽돌로 쌓은 그리고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은 대문을 단 절이 나온다.
의선당(義善堂). 이것이 이 절의 옛 이름이다. 사(寺)나 암(庵)을 쓰지 않고 당(堂) 자를 붙여, 전에는 절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절에 딸린 한 부속 건물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절 전체라고 해야 고작 몇 십 평 정도에 불과해서 다른 법당이나 요사(寮舍)를 가질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문이 열려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적만 감돌던, 고요 속에 죽은 듯이 닫혀 있었던 의선당.
과연 절이 맞는지, 맞는다면 그 안에 승려 같은 사람은 있는지…,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특히 이 절이 그 유명한 소림사(小林寺)의 분실쯤으로 여겨졌다. 절은 절이지만 불경 대신에 무술을 주로 연마하는 도장이라는 둥, 중국 권법(拳法)을 하는 곳이라는 둥, 그런 종류의 소문이 돌던 곳이었다.
그래서 십팔기(十八技) 같은 무예를 닦는 중들이 있는지, 언월도(偃月刀)를 여반장(如反掌)처럼 마음대로 쓰는 고승이 있는지…, 그러다가 엉뚱하게도 손오공에 대한 상상으로 번지기도 하고, 끝내는 우리 머리 속에 호걸 노지심(魯智深)이 나오는 수호지의 장면들도 등장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심정적으로는 가까이 가지지가 않던 절. 아주 가늘게 문틈으로 보이던 그 우중충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작은 마당의 잡초와 적막과 괴괴함 속에 저녁 거미줄이 내리던, 그 궁금증 가득했던 작은 소림사. 그 절이 마침내 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어린 날 우리들이 했던 상상 때문이었을까. 절에는 놀랍게도, 영판 없는 역사(力史), 무술인으로 보이는 덥수룩하게 수염이 난 호걸풍의 주인이 있는 것이다. 그가 바로 이 절의 7대(代) 주지인 승려 필중화 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혹 오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육십 중반에 이르러서 본격 출가를 한 늦깎이 승려이면서, 외모와는 달리 평생 쌍수도(雙手刀) 같은 무예는 흉내도 내 본 적이 없는 온순한 화교 승려다.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탄허(呑虛) 스님 밑에서 5년간 수행을 하기도 했고, 그 후 대만에서, 앞서 말한 일승이란 법명으로 계를 받은 정식 승려이고 금년 1월 25일 폐허처럼 버려지다시피 한 이 절을 인수해서 지금 한창 중건에 몰두하고 있는 참한 스님인 것이다.
물론 필중화 씨는 결혼을 했고,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있다. 그의 아들 하나는 중구 신포동에서 제법 유명한 한의원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식구들은 속계에 두고 자기만 이 자유공원 허리춤에 속절없이 홀로 앉아 노을처럼 스러져 가던 의선당을 불현듯 화엄사로 고쳐 출가를 한 것이다.
일승 스님, 필중화 씨. 그는 실상은 인천 사람이다. 오히려 웬만한 인천 사람보다 훨씬 인천 토박이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화교 2세이기는 해도 인천 학익동 570번지 노적산 밑에서 1941년에 출생했고, 오늘날까지 인천을 근거로 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중국 국적을 버리고 어엿한 한국인, 인천인이 된 것이다.
일승 승려는 위로 누나 하나가 있는 6남매 중 둘째, 아들로서는 맏이였다. 학교는 청관에 있는 중산(中山)중학교, 그리고 60년대까지 신흥동에 있던 항도(港都)고등학교 야간을 마쳤다. 그리고 지금의 서울예술전문대학 전신인 동랑레퍼토리극단 부설 시청각교육원을 다녔다.
“그때는 내게도 좀 무슨 끼 같은 것이 있었는지….”
그곳 설립자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 선생을 말할 때는 눈가가 빛난다. 실제로 연극 같은 것에 관심을 두었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어찌어찌 서울 인사동에 진출해서 골동품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골동에 대해서도 상당한 안목을 가진 전문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신의 삶에는 더욱 거추장스럽다는 것을 그는 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그것이 머리를 깎은 이유.
늦여름과 초가을이 아직은 섞여 있는 옹색한 법당 마당, 옆집 담장을 타고 호박 넝쿨이 누렇게, 벌거벗은 어린 아이 배만한 호박을 두 놈이나 매달고 있다. 말을 하다가 문득 그가 그 호박을 유심히 쳐다본다. 스님의 눈으로는 그 벌거벗은 호박이 어떻게 보일까. 그런 소박하고 유한 풍경 속에서도 중생이 겪는 끝없는 삶의 질곡과 허무를 하나하나 속속들이 느낄지 모른다.
그래서 그가 거처하면서 사무를 보기도 하고, 또 내방객 접대도 하고, 불경도 읽는 이른바 종무실(宗務室) 겸 선방(禪房) 천장에 구차스런 대로 파리 끈끈이가 두 줄 걸려 있는 광경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는 그걸 바라보며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阮堂, 破公書曰…’ 운운하는 글도 읽고 달밤이면 비스듬히 벽에 기댄 거문고를 내려 내키는 대로 뜯기도 할 것이다.
그가 이 방의 호를 ‘風雲夜歸’로 지어 붙이는 데에 무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인가…. 1960년대 무렵처럼, 근처 자장면집에서 얻어 온 밀가루 포대 종이를 벽지 대신에 바른 처량한 바람벽이나, 누더기 방충망이나, 이를테면 대웅전이랄 수 있는 법당 지붕, 깨진 기왓장을 덧씌운 비닐 포장이나, 불자인 듯한 마을 아낙이 안고 오는 몇 개비 화목(火木) 나부랭이나 다 그의 마음, 그의 불심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절이 우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이 사실이다. 불당 안에는 석가여래도 모셔져 있고, 문수보살도, 보현보살도 계신다. 그러나 다른 한켠에는 용왕(龍王)도 서 있고, 관운장(關雲長) 상도 있고, 낯선 청나라 신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도 오랫동안 우리에게 이 절이 좀 특이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던 이유의 하나였을 것이다.
일승(一乘)이라면 모든 중생이 부처와 함께 성불한다는 석가모니의 교법이 아니던가. 일체(一切) 것이 모두 부처가 된다는 법문. 그 뜻을 법명으로 해서 계를 받은 인천 태생 화교 2세 필중화 씨가 오늘도 화엄사에 쌓인 먼지며 쓰레기를 치우느라 분주하다. 소담한 7층 석탑도 가난하게나마 기단을 새로 쌓았고, 법당 벽돌에도 붉은 색을 새로 입혀 온통 새 당우를 만들었다.
의선당, 100여 년 이 화엄사가 주지 필중화 씨의 손에 의해 이제 비로소 음침하고 퇴락한, 마을 안에 있던 한 흉가 비슷한 절집도 아니고, 쿵푸 같은 무술을 연마하는 도장도 아닌 고요한 작은 사찰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하자면 인천 사람은 다 아는 인천의 청상(淸商) 인창덕(仁昌德)이나, 대창반점(大昌飯店)과 관장 노수덕(盧樹德) 씨 등등, 절 이야기보다 한없는 속계의 사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일인가. 문득 이 스님과 한잔 하면 어떨까, 하는 참으로 발칙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언덕을 내려오는 저녁노을이 그날따라 몹시 시장해 보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글 _ 김 류(시인·eoeul@hanmail.net) / 사진 _ 김보섭 (자유사진가·ericahk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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