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도심 속 ‘순도100% 산소통’
햇빛은 들판의 곡식과 과일 그리고 이름 모를 잡풀에게도 ‘젖’을 물린다.
# 맨얼굴을 한 동네 뒷산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는 숲만 한 게 없다. 인체에 이로운 피톤치트 향이 숲에서 발산돼 숲속을 걷다보면 머리는 물론 영혼까지 맑아진다.
남동구청 뒤쪽에 있는 작은 산은 ‘도심의 산소통’이다. 딱히 불려지는 산 이름이 없지만 그곳에 가면 가을의 맨얼굴을 볼 수 있다. 제풀에 지쳐 떨어지는 잎, 형형색색 만개한 가을꽃과 단풍 그리고 토실토실한 결실들을 만날 수 있는 가을 숲.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남동구 수산동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사람들이 오래 살 수 있는 터전이란 뜻에서 예로부터 수산리(壽山里)로 불려졌다. 아직도 찬우물, 능골, 남말촌 등 때묻지 않은 자연부락이 형성돼 있으며 곳곳에 배 밭 등 과수원이 넓게 자리 잡고 있어 전원풍경을 연출한다.
지금은 한적한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교통의 요지였다. 산 남쪽 기슭에 있는 경신마을에는 고려 때 설치했다가 1896년에 문을 닫은 경신역이 있었다. 한양에서 인천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숙소와 역마(驛馬)가 있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또한 부근이 간척되기 전까지는 배가 닿았다는 ‘배려터’가 있는 것으로 봐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던 지역으로 추측된다.
# 소박한 하늘과 숲
산에 오르는 길은 사방팔방으로 나있지만 크게 동쪽과 서쪽 두 갈래 길이 있다. 동쪽 길은 남동구청에서 소래 길을 가다보면 ‘수산동’이라고 쓴 커다란 돌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접어들고, 서쪽 길은 호구포길에서 GS주유소를 끼고 냉정(冷井) 마을로 오르면 된다. 어느 길을 택하든 마을을 지나 조금만 들어가도 도시와 완전히 결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댕기풀이길, 달맞이길, 성마달길… 마을 생김새만큼 이쁜 길들을 따라 오르면 갖가지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산은 하늘을 방해 할만한 높이가 아니라 좋다. 그래서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돌다보면 사람들에게 맨 처음 다가오는 것이 하늘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문학경기장, 한국씨티은행경인본부, 인천시청 등 도심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시야도 좋다. 회색도시인들에게 그 큰 하늘은 ‘자유’로 다가온다.
숲 또한 빽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아 좋다. 나무들은 사람 키 하나만큼씩 떨어져 서 있다. 굳이 길이 아니더라도 길을 내며 걸을 수 있을 만큼 서로 사이를 두고 있다. 회화나무, 밤나무, 벚나무, 두릅나무, 단풍나무, 싸리나무, 느티나무…나무 한그루에 달려 있는 천장 만장의 잎새들이 색잔치를 펼치며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 수산동의 노스탤지어
주발을 엎어놓은 듯한 이 작은 산은 배 농장, 라이브카페, 사슴목장 등 다양한 테마를 품고 있다. 전망 좋은 곳에 ‘노르웨이 숲’ ‘향수’ 같은 라이브 카페&레스토랑이 있어 분위기 잡고 가을에 푹 젖어 볼 수 있다. 손두부, 황토오리 등 토속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곳곳에 있어 산행 길의 시장기를 해결해 준다.
카페 ‘향수’ 건너편 양지바른 언덕에는 우리고장의 큰 인물이 잠들어 있다. ‘훈맹정음(訓盲正音)’의 창시자인 박두성 선생의 묘가 있다. 그는 한글점자를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선사했다.
제2경인고속도로 인근에는 인천시녹지관리소 남촌나무밭이 있다. 2,600여평의 나무밭에는 청단풍, 은행나무, 둥근향나무, 명자나무 등의 묘목들이 자라고 있다.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아이들과 나무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남촌나무밭 앞 오솔길은 양쪽에 숲이 우거져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노르웨이 숲’ 뒤로는 남동구자연학습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현재는 운영되고 있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있다. 그 앞 쪽 숲속의 쉼터 나무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나무를 옮겨다니며 도토리를 모으는 청설모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모든 생물체들은 수산동 가을 하늘 아래서 서로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글 _ 유동현 (편집위원·batubatu@incheon.go.kr) / 사진 _ 김성환 (자유사진가·koin1@incheon.go.kr)
단맛 뚝뚝…남동배
수산동 언덕에 오르면 우리는 풍성한 ‘토종가을’을 만날 수 있다. 토실한 열매에 절로 군침이 돈다.
수산동 배 농원에는 맛 좋기로 소문 난 ‘남동배’가 재배된다. 끈기가 있는 질찰흙 토양과 밤낮의 온도 차이 그리고 멀리서 불어오는 해풍이 맛 좋은 배를 만들기에 최적이다. 다른 지방에서 재배되는 것보다 당도가 2도 정도 높은 ‘꿀배’다. 이 지역에서 배를 재배하는 곳은 19 농가. 더 맛난 배를 생산해내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남동배연구회’를 만들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 결과 남동 배는 진화했다.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4농가는 ‘수정산야’를, 게르마늄농법으로 재배하는 6농가는 ‘맛두배’를, 그리고 인삼농축액으로 재배하는 9농가는 ‘인삼먹은 배’를 생산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나는 배는 10월 초가 제일 맛있다. 남동배는 시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5㎏(특품 20개들이)가 4만5천원선, 7.5㎏(10개)가 2만3천원선이다. 농원의 배나무 아래서 돗자리를 깔고 즉석에서 베어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간단한 먹거리를 싸들고 반나절 배 밭에서 놀다보면 잃어버린 과수원의 옛추억이 아련히 떠오를 것이다.
문의 _ 남동배작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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