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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테마 - ‘애장품’

2005-09-01 2005년 9월호

 











 




IMF도 견딘 끈질긴 놈


한창 사진에 취미를 붙였을 때 명품이라는 이놈을 장만하고 어찌나 뿌듯했던지…. IMF때 그동안 장만한 카메라 몇대를 팔아먹었지만 이놈만은 결코 버릴 수 없었던 끈질긴 놈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제 재산목록 1호랍니다.


이상일 (부평구 부평동)



 


7080 상고생의 필수품
7,80년대만 해도 부모님들은 상고를 나와야 취직해서 돈벌고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주산, 부기, 타자 2급은 필수였습니다. 대학진학은 10명 이내, 60%는 구미공단, 나머지는 그야말로 경리로 취직을 했죠.
책가방 무겁죠, 타자기에 보조가방까지 3년을 들고 다니면서 2급을 땄지만 졸업 후엔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컴퓨터는 잘 못해도 한타, 영타는 자판위에 올라서면 자동입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급수증을 10년 넘게 보관하다 버렸는데 얼마 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인천으로 이사를 오시면서 교복이랑 타자기마저 버렸다고 하시네요. 순간 지난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거 있죠.
대신 우리 4남매 고등학교까지 성적표 모아두셨던 것은 갖고 오셨는데 누렇게 빛바랜 성적표를 딸아이 아들아이와 함께 보았습니다.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죠. 한때 방황했던 시절 성적이 뚜~욱 떨어진 것 빼고요.
사진 한 장 없는게 아쉽지만, 부모님께서 제게 큰 보물을 주셨듯이 저도 우리 아이 성적표를 빠뜨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시집 장가갈 때 선물로 줄까 합니다.
노미옥 (남동구 만수 6동)

일기장은 오랜 나의 친구
요즘의 나는 일기대신 육아일기를 쓴다. 학창시절에는 거의 매일을 쓰다시피한 일기. 시골 서랍이나 박스 속에서 먼지를 수북이 뒤집어쓰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의 일기장과 메모장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몇 권이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곳에 있다. 3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어서, 너무나 소중해서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젠 소중한 나의 친구가 되어버린 나의 일기장들. 철자도 엉망이고 문장도 어색하고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단어선택에도 정겹기만 하다. 그 시절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나의 과거의 친구.
10년 전의 일기 속에는 짝사랑도 있고 내 성적도 있다. 가끔씩 꺼내어 펼쳐보고 미소를 지을수 있게 도와주는 나의 일기장은 오랜 나의 친구이자 없어서는 안 될 애장품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하는 육아일기를 쓰고 있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난 또 내 서른 몇 해의 일상들을 징검다리를 건너듯 그렇게 띄엄띄엄 적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 또한 내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리라….
윤금숙 (부평구 부평2동)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 메달
지금까지는 별다른 애장품이 없었다. 드디어 지난 4월 내게도 오직 내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 생겼다.
반복되어 가는 하루 일상에 지쳐가고 있을 때 게시판에 붙은 마라톤 대회포스터를 보게됐다.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정말 열심히 뛰었고 힘들면 걸었다. 그것도 잠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이 차 헉헉거리며 ‘내가 이걸 왜 했을까 미쳤지 미쳤어’하며 후회하고 있을 때 저 멀리 큰 아이가 보였다. 아마도 내가 오지 않아 마중 나왔나 보다. 갑자기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었을 때처럼 힘이 났다. 내 옆에서 “엄마 힘내. 조금만 가면 돼. 파이팅”소리치며 같이 뛰어준 아이 덕분에 사람들한테 많은 박수를 받으며 완주 메달을 받았다.
지금도 일하다 힘들고 짜증날 때면 그 메달을 걸어본다. 그 때의 감격이 온 몸에 퍼져 기분이 좋아진다.
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런 물건이라면 애장품으로 삼아도 문제없겠죠?
손기정 (계양구 작전동)

종이학
이번 주제를 보고 머리를 스치는 동시에 책상위에 학이 가득 든 유리병에 눈길이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흔한 천마리 학이라며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저에게 단하나뿐인 소중한 첫사랑을 갖게한 애장품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친구 또한 몇 없을 때 같은 반에 선머슴이라 불리는 여자아이가 다가와 저의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까지 전 그 아이에게 제일 친한 친구였고 그 아이는 저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발렌타인날 고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며 학을 접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 아이는 일산으로 이사를 간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며칠 뒤 가버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찌나 슬픈지 세지도 못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주지 못한 학은 버릴 수도 없어 제 책상위에 놔두었는데 5년이 흐른 지금 제가 아끼는 애장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항상 밝고 웃는게 이쁜 김용주. 잘 지내냐? 보고 싶다.
김상진 (부평구 부평1동)

297권의 학창 시절 노트
1948년, 계양구에 있는 부평초등학교(당시 교명, 계동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국민 소득 50불을 맴도는 가난에다, 3학년 초에는 6·25 동란까지 겪어 한층 더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어엿한 학용품 한 점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러기에 쓰레기장을 뒤졌고, 교실 마루 밑을 훑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양손에 움켜쥐고는 기뻐 뛰었다.
그래 너무 귀했나 보다. 다 쓴 노트를 보관하기 시작했다. 초등 3학년까지의 것은 난리가 난 통에 오간데없지만, 4학년부터 대학까지의 노트를 보물처럼 여겼다. 1951년부터니까, 4·50년 넘게 간수하고 있는 셈이다. 줄곧 인천에 있는 학교(송도중, 인천고, 인천교대)에 다니면서 초등학교 51권, 중학교 104권, 고등학교 126권에다 대학 노트 16권 등, 모은 노트가 모두 297권! 낡아 보잘것없어 보이나 문구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어 귀하기 짝이 없다.
1952년까지 이면지를 묶어 씀, 지질은 마분지를 겨우 벗어남 - 1953년 공산품 노트 등장 - 1955년까지 10매와 12매 짜리 작은 32절지 - 1956년까지 잉크와 펜촉 사용 - 1957년 대학 노트와 만년필 쓰기 시작 - 1965년 초에도 볼펜글씨는 안 보임. 그 밖에도 교과명의 바뀜과 주당 교과 시간 배당 등, 우리 교육의 변천사도 엿볼 수 있다.
컴퓨터 시대에 1950·60년대의 노트! 필체의 흐름도 한눈에 볼 수 있는 학창 시절의 보고이기에, 나만의 귀한 애장품이 아닐 수 없다.
홍성덕 (부평구 청천1동)

삶에 향기를 더해준 플룻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게 뭐예요?”언젠가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가 학교 숙제라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너희 삼남매지. 너희들이 엄마의 희망이자 미래요 꿈이잖아.”“그런 것 말구요.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거나 아끼는 물건 같은 거요.”“글쎄 뭐가 있을까? 조금 더 생각해 봐야 겠는데…”
한참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스스로 자괴감이 들면서 학창시절 생활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악기 하나 배워 두지 못한 것이 늘 한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늘 생각으로 끝났지만 나 혼자만이 즐기고 만족할만한 악기를 한 개쯤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때부터 몇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소리도 맑고 청아하며 은빛 반짝이는 플룻이 좋을 것 같아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약간의 무리를 해서 플룻을 가지게 되었다. 나 없는 사이 아이들이 만져서 고장이라도 날까봐 화장대 속에 숨겨두고 배우기 시작한게 벌써 햇수로 5년. 중간에 사정이 있어서 끊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제법 이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가끔씩 불어보는 아름다운 선율에 나도 몰래 마음이 넉넉해지고 지친 삶에 활력을 주는 것 같아 더없이 소중하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애장품 1호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플룻. 가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두는 것 만으로도 큰 부자가 된듯 마음이 넉넉해진다.
조효순 (부평구 삼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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