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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넋에 영혼 바친 고독한 선구자

2005-08-01 2005년 8월호

우현(又玄) 탄생 100주년 기념 고유섭의 생애


조선의 넋에 영혼 바친 고독한 선구자

인천 용리(현재의 중구 용동)에서 태어난 우현(又玄) 고유섭은 미학과 미술사라는 학문이 생소하던 시절, 일찍이 우리의 미와 우리 미술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미학을 바탕으로 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가이다.

미학의 물줄기 열다
고유섭은 일찍이 양부모가 이별해 어린 시절을 주로 조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아버지 고주연(1882~ ?)과 의과를 나와 인천에서 의사로 활동한 셋째 삼촌 주철을 비롯한 삼촌들의 영향으로 어린 고유섭은 학문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별, 그리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고유섭은 점차 말이 없는 의기소침한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3·1운동 때에는 태극기를 만들어 동네아이들에게 돌리고 인천 용동 일대를 만세를 부르며 돌다가 붙잡혀 3일간 구류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일화에서는 강한 성격의 일면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외로움과 우울함을 시·시조·수필 등의 문학작품으로 표출하였으며 때로는 어디론가 홀로 떠나 스케치를 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문학청년으로 변해갔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고유섭은 경성제국대학 예과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가정적인 우울함과 내성적인 면을 문학으로 표현하였던 고유섭은 학부과정에 들어가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학문적인 관심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미에 대하여 연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우리나라 최초로 철학과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었다. 이후 경성제국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사람은 광복 때까지 그가 유일하였다.
이렇게 유일한 미술사·미학의 전공학생이었던 고유섭은 1930년 졸업과 동시에 연구실의 조교로 남아있게 되었다. 1929년 12월 5일자 그의 일기를 보면, ‘조수 1년 안에 서양미술사를 하나 쓰고 2년 안에 경주 불국사연구와 불교미술사를 연구하자’라고 다짐한 내용이 보인다.

맨걸음으로 전국 누비다
1934년 고유섭은 오랫동안 공석인 채로 있었던 개성부립박물관의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개성으로 자리를 옮긴 고유섭은 조수시절부터 착실히 다져온 미술사에 대한 학문을 본격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는 개성을 비롯한 전국의 각 지역을 답사하면서 우리 고대 미술의 진상을 규명하고 미술사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또한 조교시절부터 착수한 석탑조사 외에 회화사의 문헌수집, 고려도자의 연구 등 점차 연구의 범위도 넓혀갔다. 1936년부터는 이화여자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기도 한 그는 1941년 발간된 ‘춘추’ 7월호에 낸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전승문제’라는 논문에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비정제성’, ‘무관심성’, ‘구수한 큰 맛’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동원해 한국적 미의식의 탐구를 설명했다.
도시락을 허리춤에 달고 흰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전국의 유적지를 맨 걸음으로 다니거나 먼지나는 길을 달구지를 타고 조선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던 고유섭은 1940년 초 건강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의 지식인으로서 울분과 고통을 간간이 술로 달래었던 고유섭은 1940년 과로로 쓰러졌고 이후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어 갔다.
고유섭은 어린시절부터의 꿈이었던 한국미술사에 대한 개설서를 쓰는 문제와 공민왕 소재의 문학작품에 대한 두 가지 문제를 필생의 과제로 남긴 채, 간경화증으로 1944년 6월 26일 40세를 일기로 개성 수철동 묘지에 묻히고 말았다.

글 _ 유동현 (편집위원·batubatu@incheon.go.kr)


1905년 인천 용리 출생
1925년 보성고등보통학교 졸업
1927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 전공
1930년 경성제국대학 연구실 조수
1931년 「동아일보」에 ‘협전관평’으로 등단
1933년 경성부립박물관 관장
1936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및 연희전문학교 출강
1944년 병사(病死)

<우현 관련 도서>
고려청자 (1954, 을유문화사)
한국미술사급미학논고 (1963, 통문관)
한국미술문화사논총 (1966, 통문관)
한국탑파의 연구 (1975, 동화출판공사)
조선화론집선 (1976, 경인문화사)
우리의 미술과 공예 (1977, 열화당)
한국의 미 산책 (1977, 동서문화사)
고유섭 전집 (1993, 통문관)
 


통학시절 인천문화운동에 씨 뿌려

인천창영초교를 졸업한 고유섭은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 곽상훈, 전종혁, 조진만, 고일 등이 활약하던 경인선통학생친목회에 가입한다. 당시 인천에는 인천공립보통학교와 박문학교, 영화학교 등에서 매년 200~4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졸업했는데, 중등학교는 인천남상업학교와 인천북상업학교, 인천고등여학교가 고작이라 많은 학생들이 부득이 서울로 유학할 수밖에 없었다. 고유섭은 인천~서울간을 통학하면서 ‘경인팔경’등 고향 인천에 대한 애향심이 물씬 풍기는 시와 수필을 남기며 인천문화운동에 씨를 뿌리기도 했다. 경인선통학생친목회 회원들은 이후 인천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제물포청년회나 칠면구락부, 인천청년연맹 등 여러 단체를 만들거나 관여하게 된다.
인천에는 고유섭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30주기를 기념하여 1974년 문무대왕 해중릉이 바라다 보이는 경북 감포와 고향인 인천의 자유공원에 각각 기념비와 추모비가 세워졌다. 자유공원 추모비는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92년 9월 인천 새얼문화재단은 제 1회 새얼문화 대상 수상자로 우현을 선정하고 인천시립박물관 마당에 선생의 동상을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매년 우현학술제가 민예총 인천지회 주최로 열린다.

우현(又玄)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 & 전시회

우현, 그가 우리 곁에 돌아오다

인천문화재단은 광복 60주년과 인천에서 태어난 한국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제학술심포지엄과 그의 삶과 저술활동을 되새겨 보는 전시기획을 마련했다.

국제학술심포지엄 ‘근대 미학의 기원…’

우현 고유섭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은 ‘근대 미학의 기원-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8월 12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우리 문화예술의 근간이 되는 한국미에 대한 고찰을 우현의 미학 정신을 중심으로 국내외 미학 연구의 석학들이 주제발표를 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축사를 하고, 중국인민대학 장파 교수(중국근대 미학의 발견과 형성과정), 국제미학회장을 역임한 동경대 명예교수 사사키 겡이치(일본근대 미학의 발견과 형성과정), 그리고 일본의 독도 양심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쓰다쭈쿠 대학 다카사키 소지 교수(아사카와 다쿠미와 야나기 무네요시가 바라본 한국의 미학)가 발제자로 나선다.
이밖에 계명대 김임수 교수(우현 고유섭의 미학 체계)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인범 교수(우현 고유섭 미학 해석에 대한 고찰) 등도 주제발표를 한다.

전시기획 ‘우현 - 한국미학의 선구자’
국제학술 심포지엄과 더불어 일반인들이 우현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회가 8월 12일(금)부터 18일(목)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린다. 우현의 삶과 연구를 재조명하고 인천의 문화적 이미지를 홍보하는 이번 전시회는 총 6개의 존으로 나뉘어 열린다.

Zone 1. 우현의 삶 (고독한 학자의 길)
우현의 가정배경과 가계도, 그리고 우현이 살다간 인생과 삶의 주변에 대한 개요적 서술을 중심으로 전시물을 구성함으로써 그의 학문적 배경의 연관성을 유추케 한다. 고유섭의 스케치, 펜화, 고유섭의 가족관계를 밝혀주는 각종 사진이 소개된다.

Zone 2. 우현과 인천 (근대의 관문에 서서)
인천의 지리적,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나게 된 우현의 젊은 시절을 서술하면서 창영학교와 부두, 기차역 등 인천의 근대모습을 연대별로 현장을 생생히 느끼게 한다.

Zone 3. 우현과 근대학문 (미술사와 미학)
경성제국대학 미학전공 1호 졸업생인 우현의 학문세계가 틀이 잡혀져 가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전시한다. 한국의 미를 주제로 열정을 불살랐던 근대 미술사의 태두로서 우현의 학문세계를 조명하며 보성고보 시절, 경성제대 법문학부 시절, 미학연구소 연구원 시절 등 근대적 학문 체계 아래서 그의 학문이 발전되어 가던 생생한 현장을 되돌아보는 장으로 구성한다.

Zone 4. 우현과 개성 (인천과 개성의 가교 - 우현)
개성박물관 관장 시절은 우현이 가장 왕성한 저술활동을 벌였던 시기이다. 당시의 개성박물관의 모습을 생생한 사진자료로 보여주며 아울러 <송도고적> 등 우현의 대표 저작 원고를 통해 송도의 중요한 고적들에 대한 우현의 이해를 엿보고자 한다.

Zone 5. 우현의 저술 (선구자)
짧은 인생동안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쳤음에도 아직까지 우현의 모든 저술이 출판되지 않은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미 간행된 저서들과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우현의 미간행 저서 원본들을 살펴보는 전시의 장이다. 또한 간행 및 미간행 원고의 원본과 초고 등을 통합, 전시하여 생생한 학문적 업적의 창조과정을 실제 피부로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조선탑파의 연구>, <전별의 병>, <송도고적>, <조선건축미술사초고>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Zone 6. 우리 미의 미래 (우정의 동아시아를 향하여)
한국적 아름다움의 본류에 대한 이해와 미학, 미술사학의 미래, 총체적 문화 콘텐츠로서 우리의 미가 갖는 의의에 대해 되짚어 보고 우리의 미를 더욱 바르고 깊이 있게 이어 가야 할 우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전시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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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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