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지난호 보기

독자 마당 이번달 주제 '여름 방학'

2005-08-01 2005년 8월호

내 이름은 오광복
나는 1984년 8월 15일 밤 8시에 태어났다. 그 때문에 남자도 아닌 여자인 내 이름은 오광복이다.
오광복이란 이름 때문에 학교 다니기도 창피했다. 아니 다니기 싫었다. 항상 친구들 생일파티에는 꼬박꼬박 선물을 들고 가면서 내 생일만 되면 생일파티는 커녕 축하한다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내 생일은 항상 여름방학이었으니까. 여름방학이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일도 못하고, 나만 집에서 뒹굴뒹굴 도는 처지였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는 남원에 있는 할머니댁에 놀러갔었다. 2주일동안 할머니에게 맡겨진 나는 동네 아이들과 친해져야 했다. 옆집에 진실이란 여자 아이가 살았는데 할머니랑 옆집 할머니가 친해서 우리도 친해졌다. 하지만, 점점 동네 아이들을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에서 이름을 말하기가 그렇게 창피할 수 없었다.
“안녕, 넌 어디서 왔어? 이름이 뭐야?” “난, 인천에서 우리 할머니네로 놀러온거야. 내 이름…오…광…복…이야…” “뭐, 이름이 뭐라고?” “…오광복이라고!”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고, 나는 또 풀이 죽어서 할머니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곳 아이들은 나를 너그러이 받아주었고,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고 더욱 잘 대해주었다.
아이들과 강가에 놀러 갔다가 내가 물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 사람들을 부르러 갔고, 동네 사람들도 할머니도 달려와서 나를 불러댔다. “광복아! 광복아!”난 물에 빠져서 다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듣고 비웃는다는 생각에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그 후로 할머니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보면 ‘광복아!’ 하고 한번씩 불렀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 싫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름이 특이해서 사람들이 나를 더 기억해주고, 내 존재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를 더욱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이제 오광복이란 이름이 전혀 창피하지 않다.
오광복 (남구 학익1동)


 





친정이 좋은 이유
이제 십여일만 있으면 아이들의 신나는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친정이 속초라 우린 따로 피서지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짐을 꾸려 아이들과 함께 떠나기만 하면 시원한 바다와 울창한 숲이 우릴 반긴다.
새벽잠을 깨우는 매미와 하늘 높이 나는 잠자리 떼를 아이들은 하루 종일 쫓아다닌다. 작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 음악축제가 친정인 속초에서 있었다. 조카와 딸은 저녁 7시에 생방송인데 오후 1시부터 그 더운 땡볕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보아와 동방신기를 보기 위해서…. 그냥 집에 앉아 TV로 시청하면 좋을 것을 아무리 말려도 일주일 내내 그 일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트로트 가수들이 공연하는 날이 있었다. 친정 부모님과 언니 내외 그리고 우리부부는 아침부터 줄을 서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딸 아이의 한마디. “엄마도 그냥 집에서 TV시청을 하시지 왜 공연장을 찾아요” 말에 가시가 있다.
그래도 그날 공연은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보고 왔다. 10년 묵은 체기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올해도 7월말쯤 친정에 갈 예정이다. 벌써부터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를 들으면서 싱싱한 회 한 접시에 우리가족은 행복감에 빠져들 것이다.
여러분 속초로 놀러오세요~ (천진 해수욕장으로…꼭이요!)
황금숙 (서구 가정 3동)



잔디씨 뽑는 여름방학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여름방학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숙제는 편지봉투 반 정도 잔디 씨를 채워오는 일이다. 매일 조금씩 뽑아 놨더라면 개학이 임박할 즈음 그리 바쁘지 않았을텐데…. 다른 숙제는 둘째 치고라도 잔디 씨를 가져오면 점수가 후했다.
개학이 코 앞에 닥칠 즈음 코가 빠져라 뒷산 무덤을 쑤셔댄다. 잔디 씨가 콩알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 언니와 함께 더위도 잊고 집 근처 산에서 들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숨바꼭질을 했다. 숙제 핑계 삼아 산에서 들에서 뒹굴다 저녁 어스름에 내려와도 용서가 되던 그때가 좋았다.
지금 아이들은 방학이 싫다고 할 정도로 이 학원 저 학원 스케줄로 빡빡하니….
방학 때만이라도 맘껏 뛰어 놀 수 있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지각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황순미 (부평구 산곡2동)

여름방학과 태풍과 한여름밤의 꿈

벌써 10년 전인 고등학교시절, 여름방학이 되자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 몰래 2박3일 코스로 지리산 계곡에 놀러갔었다. 막상 지리산 계곡에 도착하고 보니 명당자리는 고사하고 텐트 칠 만한 곳이 없어 우린 이리저리 헤매야 했다. 한참을 헤매고서 찾은 장소는 계곡 시냇물 한가운데 위치한 조그마한 바위 언덕이었다. 첫날 저녁 우리는 그야말로 여름피서의 기분을 맘껏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 오후쯤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와 나의 친구들은 내리는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가며 놀았다. 한참을 그렇게 게임을 즐기는데 라디오에서 이상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태풍 애니’가 북상중이며 남부지방에 태풍주의보가 내렸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나는 여전히 카드게임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잠시 후 텐트 밖에서 싸이렌 소리가 울리더니 경찰차가 우리를 향해 불빛을 비추며 “거기 텐트에 계시는 분들 대피하십시오”라며 방송을 했다. 과연 친구들과 밖으로 나와 보니 텐트주위 바위언덕까지 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 즉시 도로가 있는 언덕으로 이동을 해야 했건만 우리의 머리 속엔 온통 아까한 게임만이 가득했었다.
텐트로 다시 돌아와 한참 게임을 하고 있는데 새벽 3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우리가 앉아있는 텐트 밑으로 차디찬 무언가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서서 텐트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우리는 텐트 채 급류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흘러갔을까? 텐트가 무언가에 부딪쳐서 멈췄고 우린 텐트 밖을 내다봤다. 텐트가 간신히 바위에 부딪쳐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지 않는 거였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였다. 제발 비가 그쳐주길 기도했고 계곡에 불어난 물이 줄어들기를 기도했으며 또한 어서 아침이 와주길 간절히 기도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지금은 이렇게 그 때 일을 회상하지만 그날 저녁은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박판기 (계양구 계산동)
 


여자에겐 더티한게 매력이 될 수 없다

대천에 가기 전날 서울에서 밤새 취재하다가 온양온천에서 바로 신문사 MT. 머리를 감지 않아서 손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묶고. 렌즈 세척을 못해서 안경도 썼어요. 신문 발행 때문에 철야작업으로 4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봤자 빨래를 하도 안해 갈아입을 옷이 없어 룸메이트 정은이 군복 점퍼를 살짝 입고~ 대학생들의 놀이터 대천에 갔답니다.
여자에게 더티한게 매력이 될 수 없다면 나의 여성성의 인생은 너무 우울한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 걱정하지 마시라~ 여자에겐 더티한게 매력이 될 수 없어도 나의 본연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여성들이여 멘토를 가져라~ 더티한 그대들의 멘토는 바로 저랍니다.
김주현 (연수구 동춘1동)

가족봉사

신랑은 대부도, 정확하게 말하면 불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고, 바다에서 조개와 굴을 캐는 것으로 어머님은 생계를 꾸리셨습니다. 둘째 아들인 신랑은 어머님의 바지런함과 따뜻함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다섯 자식 중 그 누구보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늘 어머님 손이 가야 하는 자리에 신랑은 먼저 움직여 그 일을 해 놓곤 하는 효자랍니다.
중학교부터 인천으로 유학을 와서 혼자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녔던 신랑은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불도로 내려가 어머님을 도왔다고 합니다. 조개를 캐고, 게를 잡고, 그것을 내다 팔고, 밭을 메고, 풀을 뽑고, 감자를 캐고, 그런 농사꾼으로, 어부로서의 일상으로 방학을 보내곤 했답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고, 밭에선 모기와 풀벌레에게 쏘이면서도, 땀으로 등짝이 흠뻑 젖어 들어도 불평 한번 하지 않는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찐감자와 찐빵이 간식의 전부였던 시골집의 여름. 하지만 신랑은 그 여름이 너무도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합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만큼 엄마가 덜 힘들겠지. 내가 좀 더 움직여야지.’라고 말입니다.
신랑이 보냈던 여름방학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속깊은 아들의 여름방학. 그걸 알고 계시는 어머님의 아린 마음. 모두가 제 가슴에 향기롭게 남았습니다.
변정임(서구 심곡동)

여름방학과 생일

내가 11살(초등학교 5학년), 8월 4일 엄마는 귀엽고 깜찍한 여동생을 낳으셨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날이었다.
원두막에 가서 참외도 먹고 냇가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고기도 잡고 여름방학 동안에 하고 싶은 일이 많았었는데 엄마가 몸조리를 하셔야 되니 나는 계획이 깨져 혼자 중얼거리며 투덜댔다. 엄마는 왜 이렇게 더울 때 동생을 낳으셨을까? 시원할 때 낳으시지….
뒤집고 기어 다니고 앉고 서고 걸음마 하고 엄마 맘마 언니! 하고 따라다닐 동생을 머릿속에 그리며 신기해서 들여다 보는걸로 여름방학이 훌쩍 지나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 밀린 일기를 쓰느라 쩔쩔 맸었는데….
내가 결혼해서 36살에 엄마가 동생을 낳으신지 24년 후 8월 4일에 아들을 낳아 엄마와 딸 2대가 여름방학 중에 같은 날 아이를 낳았답니다.
원경아! 48번째 생일, 재호야 24번째 생일 축하한다. 사랑해. 언니, 엄마가.
조원옥 (강화군 선원면)
 

첨부파일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계정선택
인천시 로그인
0/250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