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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시스터’ 신인미 마리 임마누엘 수녀님

2005-08-01 2005년 8월호

 















 


 


 


 



영원한 ‘시스터’
신인미 마리 임마누엘 수녀님


계양구 계산2동 40번지, 계양산 자락에 자리잡은 노틀담수녀회, 그 밑 솔숲 안에 아주 편안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붉은 벽돌집 노틀담복지관, 거기 관장인 신인미(申仁美) 마리 임마누엘 수녀님을 만난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유쾌한 일이었다. 감자 찌는 가마니 솥처럼 끓는 날씨였는데도 우선,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물론 몸에서 땀은 흘렀겠지만 전혀 그걸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두 시간 남짓 ‘시스터’께서 여기저기를 보여 주고 설명하면서 내 영혼에 전염시킨 삶의 행복감, 기쁨, 그런 것 때문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시간 내내 머리 속에서는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그 유쾌한 코미디 <시스터 액트>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온 치외법권 지대 수도원. 범죄 현장을 목격한 위험한 증인이어서 외부와 단절된, 바로 그곳 수녀원에 숨겨진 들로리스, 그리고 원칙주의자 원장 수녀, 성가대, ‘I Will Follow Him’의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 이렇게 끊임없이 즐거운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실상 마리 임마누엘 수녀님에게서 엉뚱하게도 문득 영화 속, 성가대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시스터 들로리스의 생기와 천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맞았다. 노틀담복지관 관장, 지휘자 임마누엘 수녀님. 시스터의 지휘봉은 하루하루를 아주 자연스럽게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세속 나이야 어떻든, ‘사진을 예쁘게 찍으라’는 장난기 어린 시스터의 음성은 여전히 작은 종처럼 밝게 댕그랑거리고, 눈동자는 젊은 처자처럼 늘 웃고 있고, 거기에 신바람과 활기 넘치는 걸음걸이! 시스터의 지휘봉 앞에 누가, 어떤 식구가 침울할 수가 있고 곁의 누가 웃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더욱 여기 식구들은 모두 행복하고 화목하고 우애로써 삶을 사는 것이다.
“이리로 시집온 것 말이지요? 팔자지요.”
왜 수녀가 되었느냐는 이쪽 ‘세속 진때’가 던진 어리석은 질문에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시원시원하게, 시스터는 또 그, 세계에서 가장 밝은 모습의 작은 소녀처럼 답한다. 이 노틀담수녀원에 입회한 것을 시집온 것이라고, ‘성소(聖召)’를 팔자라고 해 버리는 함축과 은유. 그리고 여기로 시집왔으니 여기 ‘여자들’이 평생 지켜야 할 세 가지 ‘부덕(婦德)’ 즉, ‘정결(貞潔), 순명(順命), 청빈(淸貧)’을 말한다. 창밖 한여름의 녹음이 더 짙다.
“애초부터 가톨릭 집안은 아니었어요. 인천 토박이, 송림동 출신이지요. 학교는 인천여고를 나왔고요. 여학교 나온 뒤 가톨릭에 입교를 하게 되었고, 영세를 받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을 한 거죠.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뭐, 그냥,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렇게 수도자로서 사는 것도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입회를 했어요. 나이에 비해 좀 늦은 편이었어요.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한 해가 1991년이던가…. 지금은 두 분 부모님 다 가셨지만, 어머니께서는 죽어도 눈 감지 못 한다고 하셨지요.”
그래도 궁금한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이쪽을 위해 덧붙여 해 주는 대답 속에는 육신의 어머니께서 그토록 반대하시던 것과 아버지께서는 의외로 ‘네가 선택한 길이니 네가 책임지고 후회 없이 잘 살아라’하시던 사연들이 들어있다. 이렇게 행복하고, 이렇게 아름답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가슴이 저미는 듯한 인간의 이야기, 성모님의 이야기, 주님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실 일도 아니고, 또 봉사도 아니예요. 장애인들과 사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고 기쁘게 느끼는 사람들이 그냥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까 일이란 말도 틀리고, 봉사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지요. 내가 말할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기서 생활하는 것은 그저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그런 행복한 과정일 뿐이지요.”
이상하게 한 가지 물건에만 집착하는 아이, 크게 목소리를 내는 소녀, 늘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 사람, 마음이 아픈 소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청년, 이렇게 너무나 많이 아픈 하느님의 자녀들과 사는 일. 시스터는 그들을 돌본다는 말조차 인간으로서의 겸손을 넘어선다는 것을 지적한다. 인간은 다만 같이 사는 것.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일 뿐. 그리고 이것은 고스란히 노틀담복지관의 관훈으로 살아 있다.
“하나 된 우리!” ‘하나’라는 정상화의 이념으로 장애인과 직원, 지역 주민이 동등한 ‘우리’로서 하나 되는 사회 통합을 강조하는 의미!
수녀님과 복지관측 식구들은 어제 이미 다들 먹었다며, 이쪽 세 사람만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삼계탕을 내놓는다. 새삼, 넓은 식당 안의 장애인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봉사자들이 만들어 내는 터질 듯 팽팽하고 그러면서 환하고 고운 분위기, 그 아름다운 활기를 느껴 본다.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그것이 여기 사람들은 누구나 알아듣는 ‘그 아이의 자기 표현’인 줄을 조금 뒤에야 깨닫는다.
천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상의 음식을 먹는다.
장애인을 위한 노틀담복지관은 노틀담수녀회의 작은 집이다. 그렇다고 무슨 상하관계나 종속관계를 의미하는 ‘작은 집’이 아니다. 따라서 두 집의 살림이 다르고, 방도 다르고 식구도 다르다. 같은 것들이 있다면 똑같이 보이는 하늘, 똑같은 성모상, 똑같은 성당, 똑같이 둘러싼 소나무 바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정상인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두 집 식구 모두가 마음을 다해 똑같이 기도하는 일이다.
이 노틀담복지관은 1987년 수녀님들이 오로지 기도 하나만으로써 시작한 ‘노틀담장애인교육원’이 그 시초이다. 장애인들 자활을 위해 귀금속, 섬유, 칠보공예 등의 기술과 자수, 제도, 제과제빵 등의 직업 훈련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에는 어려운 일, 힘든 고비가 많았다. 지금은 시 행정 기관에서 얼마간의 예산을 지원받지만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시스터들은 누구도 어려운 얼굴을 하지 않는다. 팔의 인대가 늘어난 또 한 시스터에게 복싱을 하다가 다쳤다는, 그런 식의 농담으로 끊임없이 웃어넘기는 마음의 풍요와 여유, 수도(修道).
“자 이제 성당을 보여드릴게요.”
언제나 밝은 시스터를 따라 나선다. 14처(處)가 있는 정원을 지나 특이하게 지은, 수녀원과 학생 교육원 사이의 성당에 올라간다. 잘 닦인 나무 계단, 성자들의 숨소리가 들릴 듯한 고요, 유리 사이로 들어오는 한 조각의 햇빛, 성화, 작은 묵상의 방들, 묵상의 책들, 기도서, 수건, 고상, 그 밑의 장궤틀에 무릎을 꿇은 젊은 수녀들…. 눈을 감아 본다. 오랜만에 아주 짧은 기도를 해 본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다. 사진을 찍고 있는 시스터, 신인미 마리 임마누엘 수녀님의, 지상에서 착한 한 여인의 주름잡힌 옆얼굴을 본다. 시스터의 곁으로 가자. 그 작은 종소리처럼 울리는 목소리와 천진과 생기를 만나러 가자.
글 _ 김 류(시인·eoeul@hanmail.net / 본명 김윤식) / 사진 _ 김보섭 (자유사진가·ericahkim@yahoo.com)




시스터를 만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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