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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산 기슭에 울리는 공자님 왈…

2005-01-01 2005년 1월호
어제까지 3일간 교육을 받고 와서 허둥대며 왔네요. 아침밥도 못 먹이고 애들 겉옷 입은 것 좀 보세요. 오늘 추워서 어쩌죠?” 비누냄새가 찬 공기와 만나 묘한 상쾌함을 느끼게 하는 이영주(35)씨는 아들 (박정훈·만수초 1년)과 아들이 친형처럼 따르는 최도영 (같은 학교 5학년)군을 데리고 왔다.
도호부청사 앞마당에 있는 전래놀이기구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은 굴렁쇠, 제기차기, 비석치기, 줄다리기, 팽이, 딱지, 널뛰기 등에 헉헉거리며 호기심을 여지없이 분출했다.
“엄마! 이것도 공부죠?” “그래, 얘들아, 큰 공부하러 가자.” 추정호(60) 문화유산 해설사는 승학산을 깨웠다.

마음이 지나는 문
문학경기장 건너편에 인천향교가 있다. 향교는 지방 공립학교로서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유학을 강의하는 명륜당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시대 때의 관청인 인천도호부청사와 학교인 향교가 문학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이 인천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관교동(官校洞)이다.
향교 입구에는 조선시대 인천에서 근무했던 부사들의 선정비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밑에 있는 작은 비석하나가 눈에 띈다. 해설사는 일행을 반원으로 모이게 했다. “우선, 향교의 배치부터 알아야 합니다. 향교가 설치된 곳에는 홍살문이 맨 먼저 서있고 그 옆엔 하마비(下馬碑)가 꼭 서있습니다. 조선시대 종묘·궁가·문묘 등의 앞에 세워놓은 표석으로, 사대 성인 중 한사람인 공자를 뵈러 가는데 말을 타고 들어 갈 순 없지요. 임금님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향교를 출입하는 이는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글을 적은 비석입니다.”
도영이는 하마비의 설명을 듣고 순간적으로 생각에 잠긴 듯하다. “학교 앞에서도 예를 갖췄다니…스승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 섬김과는 다르게 우리 학교에선 고개만 끄떡, 그것도 걸어가면서 말로만 인사하는 애들이 많아요.”
하마비를 지나면 높다랗게 뻗은 홍살문이 나온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홍살문은 담장과 문짝이 없어 길 위에 외롭게 서 있다.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세운 문이 아니라 홍살문이 있는 곳에서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경건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정훈이는 홍살문이 서 있는 이유를 미리 공부하고 온 듯하다. “가로대 화살 모양의 위는 신이 다니는 신도(神道)이고, 아래는 사람이 다니는 인도(人道)예요. 홍살문은 몸이 아닌 마음이 지나는 문이래요.”

공자, 증자, 안자, 맹자, 자사…성인들 모두 계시네
홍살문을 지나 오르면 전형적인 조선시대 학교 건물이 늘어서 있다. 언제 향교를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세조 때에 다시 건축되었다고 한다. 일직선으로 약 50m 가량 올라가면 외삼문이 좌우의 담장을 두르고 서 있다. 그 문을 들어서면 막돌로 쌓은 높이 약 6m의 축대가 서있고 중앙으로는 계단이 나 있다. 계단을 오르면 좌측으로는 명륜당이 있고 대문에 들어서서 뒤를 돌아보면 마을 전체의 모습이 한 눈에 펼쳐진다.
화단에 단추모양 소국들과 겨울장미가 삐죽 아랫마을을 향해 향기를 쏟고 있다. 전선주 위 새떼들이 재잘대는 모습, 차량이 쉴 새 없이 지나는 모습이 다 내려다보인다. 현장학습 나온 학생들의 교복차림이나,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경적이 왠지 안 어울린다. 역사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 현실감각을 잃어버린다.
명륜당은 향교의 본래 기능인 공자의 사상을 받들어 유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던 곳이다. 윤리를 밝게 하고 도덕을 펴는 장소이며 사람 사는 도리는 인(仁)을 근본으로 삼았다. 조선 초기에는 12세가 되면 향교 입학자격이 주어졌고 조선중기 이후에는 15세 넘어서 40세 까지 교생(공부하러 온 생도)이 될 수 있었다. 향교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배우는 공간으로서 강학장소인 명륜당이 맨 앞에 배치되고, 그 좌우로 지금 기숙사와 같이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동재(양반자제)와 서재(평민자제)가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뒤에는 대성전이 있는데 좌우로 동무와 서무가 마주하고 있다. 동·서무는 제사에 필요한 제기들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대성전의 단청은 ‘붉을 단(丹)’과 ‘푸를 청(靑)’을 결합한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자세히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단정하다. 단청장이는 목욕재개 후 정신을 바짝 모으고 자신의 감정을 배제했다. 자연의 원리인 오행설과 관계된 단청의 기본색은 청·적·황·백·흑 이다.

사람 사는 도리 … 仁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비롯해 중국의 4대 성인 (증자, 안자, 맹자, 자사)과 우리나라 유학의 18명의 위인 (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 중기 이후 향교는 점차 무력화되어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사림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사학인 서원이 거의 대신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향교는 지방 양민들이 군역을 피역하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향교는 이름만 남게 되고 단지 문묘에 대한 제사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훈이 엄마는 주부답게 향교를 보는 각도가 달랐다. “옛날지붕의 이름이 여러 개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대성전은 맞배지붕에 한식 골기와 형태이고, 명륜당은 팔짝지붕이 나팔치마처럼 퍼져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아파트나 빌라에도 이런 예쁜 지붕이 올려졌으면 좋겠네요.”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과 현장학습이나 체험학습도 하지 못한 까닭에 <굿모닝인천>을 보고 신청한 것인데 좋은 추억이 되었다고 미소 지었다. 추위에도 엄마의 미소는 얼지 않았다.
탐방이 끝날 즈음 문화유산 해설사는 총정리를 할 겸 아이들에게 한가지 귀한 교훈을 전해주었다.
“공자님이 제일 주장하는 게 뭐예요? 인(仁)입니다. 사람 사는 도리는 인을 근본으로 합니다.”
인천은 조상의 따뜻한 숨결과 수많은 얘기를 간직한 오랜 고장이다. 인천향교에서는 교화사업으로 일반인대상 사서경전 강의, 초등학생 충효교실 생활예절, 주부대상 서예, 소학과 예절, 다도 교육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향교 안에 장의(관리인)가 거주하고 있어서 언제든 상담이 가능하고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글 _ 조은숙 (부평사람들 기자·eyagi9090@yahoo.co.kr) / 사진 _ 김성환 (자유사진가·koin1@incheon.go.kr)

※이 코너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여를 원하는 분은 둘러보고 싶은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정해서 전화(440-2072) 또는 이메일(happyjka@incheon.go.kr)로 신청하세요. 참가하는 분께는 문화상품권(1만원권) 2매를 드립니다.

어명이오…교육기회를 넓히시오
우리고장에는 인천향교를 비롯해 부평·강화·교동향교 등 4개의 향교가 있다.
부평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 5)에 ‘주(州)마다 학교를 세워 교육기회를 넓히라(諸州立學廣敎)’는 왕명에 따라 계양산 남쪽 기슭인 계양구 오류동 산4번지에 세워졌다. 1165년 (의종 19)에 안남도호부가 계산동(온수골)으로 이전함에 따라 향교도 그 부근으로 옮긴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역의 인재들을 길러 낸 부평향교는 병자호란(1636)의 난리통에 문묘건물이 완전히 타버렸다. 1688년(숙종 14)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호란 당시 공촌동에 피신시켰던 열성위판(烈聖位版)을 다시 옮겨와 개교했다.
강화향교는 인종 5년(112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백성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세워졌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내외 삼문이 있고, 동·서문은 터만 남아 있다. 맞배지붕의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과 송조 6현, 한국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교동도에 있는 교동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먼저 공자상을 중국으로부터 가져다 봉안한 유서 깊은 향교다. 고려 충렬왕 때인 1286년 유학자 문성공 안유(안향)는 원나라에 갔다오는 길에 이곳에 닻을 내려 공자의 화상을 향교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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