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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띠 처녀의 온통 부산스러움과 생기, 활기 같은 것들과 …

2005-01-01 2005년 1월호

프로 농구 인천 전자랜드 블랙 슬래머 팀 치어 리더 이민숙(李珉淑) 양의 영토는 온통 부산스러운 것들과 끊임없이 향기를 뿜어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고막을 찢는 음악 소리가 그렇고, 나풀거리는 그 얇고 현란한 공연복 자락이 그렇고, 온몸이, 사상이, 삶이 온통 소리와 움직임, 물에서 금방 건져낸 생선 같은 펄펄 뛰는 생기, 향기, 활기 그런 것들로만 차 있는 것이다. 채광창 안으로 떨어지는 낡은 겨울 햇빛조차도 그렇고, 거기 그 햇빛 속에 부유하고 있는 미세한 먼지들 하나하나의 반짝임마저도 그렇다.
장딴지 근육이 조금 땅기고 간혹 무릎 관절이 시큰거리기도 하지만, 또 아주 간혹 외롭고 이상한 밀물에 가슴이 젖기도 하지만, 지금 살아 있는 것, 지금 웃고 있는 것, 지금 먹고 있는 만두국, 지금 들어야 하는 힙합의 음향은 지상 어느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이 겨울의 고요와 정밀(靜謐)과는 정반대, 화산 같은 열광이고 분출이고 아득한 높이에서의 곤두박질이고 향기로운 현기증이다.
더 말해 무엇 하랴? 스물네 살짜리 닭띠 아가씨가 아닌가. 하루 종일을 그렇게 살고도 남을 이 건강하고 어여쁜 처녀의 날개와 등뼈 부분을 이 방 안에서 살짝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이 칼칼해지고 머리가 띵한 것이 아니냐. 한 묶음 안개꽃이나 손톱만큼 작은 국화 종자, 그런 꽃묶음의 어지러움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혼곤히 쓰러져 잠드는 그날의 일기 속에는 더 비밀스런 향기가 나지 않겠느냐.
“이따가 3시가 게임이거든요. 안양 SBS하고 시합하는데, 2시쯤 관중석에서 페이스 페인팅 서비스가 있어요.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그리고 게임 시작 직전에 개막 공연, 그 다음에는 선수 소개, 그리고 게임 중에는 작전 타임 때, 그리고 3쿼터 마치고 나가서 율동, 그렇게 해요. 보통은 2시쯤에 8명이 모여서 게임 전 공연 리허설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다른 곳에 행사가 있어서 못해요. 시간이 안 돼요.”
그래서 1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체육관 치어 리더 대기실에는 세 명의 아가씨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다. 인대가 늘어나 다리를 절뚝이는 연정(娟貞)이, 좀 전까지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먼 눈빛으로 피곤한 얼굴을 하던 막내 선단(善丹)이, 그리고 민숙 양. 또 하나, 이들이 펄쩍 뛰어 오르며 율동을 할 때, 사이사이 짧은 음악을 담당한다는 차가운 눈빛의 모르는 아가씨 하나.
키가 1미터 73이니 74니 하는 이 다리가 한없이 긴 아가씨들이 슬슬 화장을 하고는 늦게 도착하는 언니들, 동료들을 위해 운동화와 공연복 따위를 꺼내 정해진 자리에 놓아 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행사를 마친, 서울 어디서 무슨 프로 야구팀 팬 사인회에 참석하고 온다는 몇 명의 또 활기찬 파도 떼가 문을 밀고 들어온다. 와! 코 속이 더욱 매캐해진다. 코피가 날지 모른다. 셔터를 눌러대던 사진 작가와 함께 문 밖으로 잠시 쫓겨난다. 참,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얼굴 화장도 해야 하지.
“솔직히요. 시 같은 거 읽은 적 없어요. 그냥 피곤해서 집에 가면 쓰러지거든요. 혹 가다가 SF 소설이나 한 권 읽을까…. 새해에는 한번 읽어 볼게요.”
코트로 들어가는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예 질문을 잘못 던지고 말았다. ‘공화국’ 어디에도 시와 시인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또 깜빡 잊은 것이다. 그것은 2천 몇 백 년 전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연습 시간, 문경은의 3점 슛이 림을 통과하고 폭죽이 터지는 듯한 수백 명의 함성이 체육관 천장을 흔든다. 그렇다. 저것이 시(詩)인 것이다. 현대의 시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흔들림 없이 림을 통과하는 송곳 같기도 하고 쾌락 같기도 한, 대중의 ‘소요(騷擾) 사태’ 비슷한 것이다. 민숙` 양은 몸의 율동으로 또 그 폭발의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보람 있어요. 후회는 없지만 피곤해요. 그리고 외부에서 볼 때는 아주 화려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 뭐, 조금 무질서한 부분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은 그렇지 않아요. 한 마디로 오해지요. 꼭 그렇게 화려할 것도 없는 직업이고, 또 우리들 스스로가 건실하고 건강하게 이미지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거든요.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 불미스런 행동이나 몸가짐 절대 우리 스스로 용납 안 해요.” 민숙 양은 ‘그건 이런 직업 가진 우리 모두 공멸(共滅)의 길, 곧장 망하는 길이잖아요’라고 뒷말을 붙이고 싶은 것이다.
눈 그친 나뭇가지 달빛처럼 서늘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아가씨다. 그렇구나. 이 어린 아가씨들도 제 자신의 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구나. 종아리에 뿌린 파스 냄새처럼 찌를 듯 선명하게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구나. 부산스럽고 와글거리면서도 풀잎의 싱싱함을 잃지 않고 있는, 마냥 천방지축 같으면서도 저토록 어른스러운, 활기와 함께 몸속 어디엔가 다소곳하고 풋풋한 여자의 예쁨을 가지고 있는 파랑새떼들.
이제 시합이 시작된다. 홈팀 코트, 엔드 라인 바로 뒤 치어 리더들 앉는 자리에 동료들과 줄지어 앉아서 두 손에 든 종이 꽃술을 흔들고, 작전 타임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영화 속의 서양 수도승들처럼 머리까지 덮는 검은 망토를 몸에 걸치고 특이한 춤을 한바탕 추었다. 다음에는 다시 붉은 해트를 쓰고 나와 아주 발랄하게 율동을 마쳤다. 그것으로 게임 전 공연은 끝이 났다. 20초짜리 작전 타임에는 아주 짧고 간결하게 흥을 돋워야 한다. 오늘은 다른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처음 3, 4분간, 잘못해서 지는 날이면 꼴찌로 떨어지기 때문에 긴장한 탓인지 양 팀 모두 득점을 올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11-8로 앞서던 전자랜드가 거푸 실점을 하는 바람에 작전 타임. 로마 병사가 입는 가죽 띠로 만든 짧은 스커트 같은 것을 입고 몸을 흔든다. 순식간에 다시 게임 시작을 알리는 버저가 울린다.
“농구는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요. 정신없이 금세 4쿼터가 끝이 나요. 그런데 야구는 보기에는 여유가 있지만 아주 길고 지루해요. 어떤 날 연장전까지 하면 4시간 넘게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완전 녹초가 되는 거죠.”
어려서부터 음악만 나오면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 그것이 기초가 되어 체력은 문제가 없다. 일 년 내내 야구장으로 농구장으로, 그리고 또 가끔가끔 특별한 이벤트를 맡는,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버텨 내는 육체적 중노동이지만 28살쯤까지는 계속하고 싶단다. 그때쯤 결혼해서 안무가가 되는 것이 꿈.
3쿼터까지는 근소하지만 인천 팀이 이기고 있다. 이제 가야지. 저 꽃송이들이 꽃송이를 들고 쿼터 사이에 잠시 튀어 오르고 있다. 예쁘다. 향기롭다. 오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민숙 양은 긴 거울 앞에 서서 열심히 눈썹을 붙이고 입술을 칠하고 하면서도 미리 이런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멘트 덩어리, 함성과 소란과 먼지와 폭풍과 활기와 말할 수 없는 향기 같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체육관 안에서도 비릿한 풀내음이 났다.
“우리가 코트에 들어가면 그냥 가실 거죠? 그럼 미리 인사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1월호에 나가는 거지요? 고맙습니다. 이쁘게 써 주세요. 정말 오늘 즐거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참, 책 나오면 여기 소영이한테 전화해 주시고요. 그리고 전자랜드 팬 여러분, 인천 시민 여러분, 닭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예쁜 닭띠 아가씨야, 너도 복 많이 받으렴.

 

글 _ 김윤식(시인·eoeul@hanmail.net)
사진 _ 김정식 (자유사진가·jsjsm@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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