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가고싶은 바다 외
바다. 바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속초가 떠오른다. 열살 때쯤 속초 바닷가에 가서 해수면을 본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바다를 처음 보았고 파도도 심했기 때문이다. 오륙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멋진 장관 이었다. 어둑한 날씨에 파도치는 소리와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는 모습은 기억에 또렷이 새겨졌다. 어렸을 때 그곳에 간 뒤로는 바다에 가본 기억이 없다. 요즘 학교문제나 집안문제로 우리가족도 서로 챙겨주지 못하고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 동해안쪽 바다를 가본다면 어떨까하는 마음과 바닷가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젠가 바닷가에 가서 다시 한번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넓디넓고 많은 생물을 키워내는 바다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흐르지 않는 물 같은 사람이 아닌 바다와 같이 넓으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지혁 (부평구 갈산2동)
사랑하는 바다
갈매기는 거침없이 노래 부르고
사랑하는 나의 바다는
고요히 흘러가네
저녁 되면
해는 바다에 입맞추고
사랑하는 바다는
별의 세상으로 빛나는 것을
영원토록 잊지 않네
새벽 되면 희미한 빛으로
우리를 끌어 안으며
우리 모두의 가슴을
또 한번 뛰게 하는 바다
이재성 (만수북초등학교 5)
바다야 고맙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강릉에 있습니다. 그래서 경포며, 망상이여 바다 좋기로 유명한 곳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 기말고사를 엉망으로 본 후,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안목으로 바람 쐬러 갈까?”“오호, 좋지!” 이렇게 해서 맘 맞는 친구들 셋이서 안목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버스 안에서는 시험걱정에 다들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후 멀리서 들리는 갈매기 소리와 짭쪼름한 바다냄새에 우리는 금방 미소를 띠었지요. 우리는 바다까지 힘껏 달렸습니다.
“너무 시원하다.”“아~~좋아”
우린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마냥 신났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진도 찍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친구 한 명이 모래사장에 글을 썼습니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그렇게 바다와 함께 하면서 우리는 시험 때문에 우울했던 마음이 확 풀렸습니다.
‘바다야, 고맙다.’
이미현 (서구 가좌3동)
무의도에서 담은 바다의 기억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니까 1972년도로 기억된다. 방학을 맞아도 마땅히 휴가라는 걸 떠난 기억이 없는 우리 남매는‘바다’ 하면 그저 흑백 텔레비젼으로 보여지는 넘실대는 파도를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달콤한 유혹이 찾아왔다. 경찰공무원이신 아버지께서 포상휴가를 받아서 앞집 경택이네와 같이 무의도로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엄마는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같이 가는 경택이네 어머니에게 우리들을 부탁하셨다.
엄마의 걱정스런 눈빛을 뒤로하고 우리 남매는 신나는 여행길에 올랐다. 연안부두에 처음으로 배도 탔다. 1시간30분을 달려 섬에 도착했다.
어느 자연풀장이 달린 민박집에 우리는 짐을 풀었다. 밤에는 처음 보는 도깨비불에 놀라던 일, 썰물 때 가까운 갯벌로 나가 소라 줍던 일이 떠오른다. 하루는 산을 두개 넘어 모두 조개를 잡으러 갔다. 물이 빠져버린 갯벌에서 손으로 긁기만 해도 조개가 너무 많이 나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조개를 잡았다. 조개를 민박집까지 가져가려고 하다 산하나 넘고 1포대 버리고 산 하나 넘고 나머지 포대도 버리고 반포대만 가져와 맛있게 조개요리를 해먹었다.
그때 무의도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포즈로 사진도 한 장 찍었는데, 그 사진 또한 나의 첫 여름바다 사진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강건우 (연수구 연수동)
바닷가의 소중한 기억
몇년 전 여름,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로 휴가를 가던 날이 생각난다. 정확한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1993년 7월 중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의 차를 타고 한참을 가던 끝에 내린 곳은 동막해수욕장.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아빠와 형은 텐트를 치고, 엄마와 누나는 식사를 준비했다. 할머니와 나는 어딘지 모를 슈퍼를 찾아 다녔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이었을까? 덥기는 무척 덥고 짜증은 짜증대로 나는데, 슈퍼에 들렀다 나온 사이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디로 가야 우리 가족이 있는 곳에 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나마 혼자가 아닌게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길 눈이 어두우신 할머니와 함께라니….
이리저리 찾아 헤매었다.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한 손에는 쮸쮸바를 물고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버린 내 모습이란 지금도 상상하기 싫다. 할머니는 나를 달래준다며 어부바를 해주셨고,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다 경찰아저씨를 만나 저녁이 다 되어 겨우 우리 가족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로 돌아가긴 정말 싫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마지막 휴가를 떠났던 곳이 동막해수욕장이었고, 할머니와 마지막 추억을 남긴 곳도 그곳이라 자꾸 돌아가고 싶어진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할머니의 얼굴 빛 조차 흐릿하지만 난 그날을 기억한다. ‘할머니 또한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며 내가 기억하는 그날을 회상하시겠지.’
오늘따라 바다가 그립고, 할머니가 자꾸 그리워진다.
윤남혁 (중구 항동)
바닷가에서 즐긴 달밤에 체조
고등학교시절 친구들과 숙소를 빠져나와 바다에서 밤새도록 뛰어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선생님께 들키면 달밤에 체조하듯 기합을 받고 혼날줄 알면서도 미친 듯 뛰며 소리지르고 놀던 모습이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소풍이 정해지고 며칠동안 무엇을 할지 생각해온 터라 소풍가서는 할일도 할말도 많았습니다. 친구들 또한 늦은 밤 자유시간에 취해있었습니다. 어찌나 재밌게 놀았는지 저는 다쳤는지도 몰랐습니다. 상처는 깨끗이 나았지만 아직도 욱씬거리는 것같아 그냥 웃음만 나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영광의 상처를 나눈 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 문은 모두 잠겨있고 창문은 여름이라 방충망이 돼 있었습니다. 우린 약속을 한 듯 제자리에 앉아 한숨만 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막막해져 있었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생님 눈에 발견돼 장날에 개 끌려 가듯 질질 끌려가 우리가 예상하던 달밤에 체조를 마음껏 했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너무 힘들었지만 마음은 왜 이렇게 신나고 즐거운지… 벌 받으면서도 마냥 웃기만 했던 우리들.
내 고등학교 때 가장 소중한 추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해봅니다.
김상진 (부평구 부평1동)
새벽바다
어둠은 걷히고
태양은 잉태되듯
바다위로 솟아오른다.
용광로인지
불바다인지
나의 모습은
그
붉은 빛으로
온통 물들어 버렸다.
태양은
헤엄치고
그바다에
내가 눕고
지난밤
성난파도
거센 비바람도
아침으로 가는
길목에선
모두 잠들어 버렸다.
고요하다
자연이 연출해 낸
멋진 드라마에
내가 도취되고
침묵으로 연기하고
넓은 공간에
바다와 나
우리는 그저
하나이고저 했다.
얼마만큼
지났을까
나의 맥박이 빨라지고
바다의 호흡소리
커질때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다.
새벽이
우리를 버리고
아침을
맞이했기 때문에
이영숙 (계양구 작전동)
다음달 테마는 여름방학
다음달 테마는 ‘여름방학’입니다.
여름방학과 관련된 글(200자 원고지 3매)과 재미있는 사진을 보내 주세요.
책에 실린 분께는 작은선물(문화상품권 1만원권 1장)을 보내드립니다. 사진을 돌려받기 원하시는 분에게는 돌려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실 곳
우편번호 405-750 인천광역시 남동구 시청앞길 25(구월동 1138번지) 인천광역시청 공보관실 <굿모닝인천> 독자마당 담당자 앞 / 인터넷 신청 : www.incheon.go.kr → 굿모닝인천 메뉴 클릭 → 독자마당에 올려주세요. 마감은 7월 20일까지 입니다. 응모하시는 분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정확하게 기재하셔야 접수가 됩니다. (문의 _ 44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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