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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주제는 '친구'
2005-04-01 2005년 4월호
비밀일기장에서
학교에 갔다 왔다. 다시 혼자가 됐다. 나는 다영이가 부럽다. 행복한 가정도 있고, 언니와의 우정도 있고 가족과의 사랑도 있고.
완전한 칼립소 여신의 섬에 오디세우스가 놀러 왔을 때와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은 왜 좋지 않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서일까? 아니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거나 말거나 똑같다. 내 생각에는 다 같이 모여서 무슨 대화를 하지도 않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로였다.
나는 진짜로 언니가 도서부 좀 안했으면 좋겠다. 맨 처음에는 우리 가족도 꽤 괜찮았다. 그런데 이혼을 하고부터, 언니가 도서부를 하고 부터, 엄마가 회사를 다닌 후부터 이상하게 다영이가 부러웠다.
이제 그래도 조금 좋아졌다. 혼자여서 좋은 게 아니라 비밀을 들어줄 일기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일기를 쓸때마다, 볼때마다 슬프고 눈물이 많이 난다. 집에 갈 때부터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늦게 끝나는 친구를 기다려보고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니어도 기다려 본다. 또 언니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도 한다. 언니는 나를 미워하나보다.
이제 혼자가 지겹다. 혼자가 정말로 싫다. (비밀일기장에서)
이미정 (남구 도화3동)
나는 개똥벌레
나는 어려서부터 말수가 없었다. 그런 탓인지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같이 가는 현경이가 유일한 친구였고 둘은 엇비슷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꽤 먼 거리였지만 대화가 없었다. 현경이란 친구는 남자지만 예쁘장하게 생겨 여자 친구들이 많았다. 그 원인은 친 누나들이 많다는 것이었을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동네친구들 하고는 멀어졌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없이 얌전히 앉아있는 세 친구들을 잘 보아 주셨다. 집에 오는 길에 세 친구는 또 말이 없다. 확실히 친구란 소중하다 말없이 자란 나는 사회에서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말이 없다보니 주변 분위기가 그리 좋은 편은 못 되었다. 말 안한다고 뭐랄 사람은 없지만 집안 내력인걸 어쩌나. 나는 성격을 고치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술자리를 같이 하는 친구, 내 속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 나와 필이 맞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형구 (부평구 부평1동)
친구야 힘내
얼마 전 영화 <친구>를 보면서 친구의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수백 명, 수천 명인데 그 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3년 전 어릴 때 한동네에서 스스럼없이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소연하듯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사정이 너무 딱해 마이너스통장에서 돈을 빼 5백만원을 빌려줬다. 친구는 한 달 안에 갚아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친구는 급기야 빚에 몰려 살고 있던 집도 넘어가고 연락도 끊어졌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이 나에겐 빚으로 남아 이자만 갚으며 어렵게 지냈다.
그런데 작년 10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금씩이라도 갚아가겠다면서…. 그날 이후 다달이 친구는 가족의 생활비 조금만 남겨놓고 빌려간 돈을 보내오고 있다. 그렇게 하는 친구가 고마웠다. 좀더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친구야! 힘내.
강건우 (연수구 연수동)
뜻맞는 친구들
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한지 5년. 희준·한수 씨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신문에 난 봉사자 모집 광고를 보고 모이기 시작한 만남이 지금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느낄 정도로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매주 목요일 10시면 어김없이 모여 커피 한 잔을 시작으로 70명 분의 어르신들 식사준비를 위해 다듬고 지지고 볶고 끓이고 사랑의 점심을 준비한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서먹해 마찰도 있었고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이해하고 어려울 때에는 힘이 되어주며 위로하고 감싸 주면서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생일이 있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천원짜리 빵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함박웃음 짓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끈끈한 정을 느꼈다.
비록 만남은 보잘 것 없었지만 지금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친구와의 만남.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유기연 (연수구 옥련동)
친구와의 첫만남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면단위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된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첫 등교를 하게 되었다.
시내로 가는 버스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있던 때였는데 긴장한 탓인지 잠을 설치다가 늦잠을 자 버렸고 급기야 타야할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부랴부랴 시내 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도착을 하고 보니 지각은 안했지만 마음대로 앉게 되어 있는 교실에 남은 자리라고는 맨 앞자리 뿐이었다.
키가 큰 편이었던 나는 쭈삣주삣 맨 앞자리에 앉았고 조금 있으니 나보다도 더 늦게 도착한 키가 좀 작은 아이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서로 낯설어하며 앉아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한 달간 그 자리에 앉으라고 하신다.
얼떨결에 짝이 된 친구 선희. 나와 선희는 키 차이는 좀 났지만 지각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사이로 남아 있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아직도 가끔씩 친구와 고등학교 때의 지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날 지각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친하게 되진 않았을 거라며….
한영옥 (남동구 남촌동)
친구야, 잘 있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네. 그래도 봄을 알리는 꽃의 여신은 나를 반기러 오겠지. 너 생각나니? 내가 임신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을 때 먼 길 마다않고 반여동에서 아구찜을 사 가지고 왔지. 처녀가 냄비 들고 오기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17년 전의 일인데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구나.
부산에서 남편의 발령으로 인천으로 온지도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처음 인천으로 오던 날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무섭기도 하고 겁나기도 했던 나에게 서울로 시집와서 살고 있는 넌 큰 힘이 되어 주었지. 네가 있어 외롭지만은 않았단다.
친구야! 넌 내가 얼마전 부친상을 당하고 슬퍼할 때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한 걸음에 달려와 날 위로해줬지.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있겠지만 너와 나는 대학 때 만나서 지금까지 변함없는 우정으로 서로에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지. 너 또한 나로 인해 행복해지면 좋겠단다.
친구야! 40이 넘은 나이에 대학편입해서 공부하는 너 정말 대단해. 힘들지? 복지관 실습은 무사히 마쳤는지 모르겠구나. 너 실습 마치면 한번 만나자꾸나 내가 맛있는 점심살께. 잘 지내고 만나는 날까지 몸 건강해라. 그럼 안녕!
우성순 (남동구 간석1동)
친구란!
친구란!
기대되고 설레게 하는
‘하트’예요.
왜냐면 늘 새로운 면을
찾을 수가 있어서
친구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거울’이예요.
왜냐면 늘 비밀 없이 터놓고 대화하니까.
친구란!
물과 같은 존재예요.
왜냐면 물 없이는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으니까.
친구란!
어려움에 처하면
알 수 있어요.
왜냐면 진정한 친구는
나의 두 손을
꼭 잡아 주거든요.
친구란 말은
정말 좋아요.
서로가 서로의 소중함을 알 때
내 마음도 부자가 되지
않을까요?
박은솔 (제물포여중 1)
학교에 갔다 왔다. 다시 혼자가 됐다. 나는 다영이가 부럽다. 행복한 가정도 있고, 언니와의 우정도 있고 가족과의 사랑도 있고.
완전한 칼립소 여신의 섬에 오디세우스가 놀러 왔을 때와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은 왜 좋지 않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서일까? 아니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거나 말거나 똑같다. 내 생각에는 다 같이 모여서 무슨 대화를 하지도 않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로였다.
나는 진짜로 언니가 도서부 좀 안했으면 좋겠다. 맨 처음에는 우리 가족도 꽤 괜찮았다. 그런데 이혼을 하고부터, 언니가 도서부를 하고 부터, 엄마가 회사를 다닌 후부터 이상하게 다영이가 부러웠다.
이제 그래도 조금 좋아졌다. 혼자여서 좋은 게 아니라 비밀을 들어줄 일기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일기를 쓸때마다, 볼때마다 슬프고 눈물이 많이 난다. 집에 갈 때부터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늦게 끝나는 친구를 기다려보고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니어도 기다려 본다. 또 언니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도 한다. 언니는 나를 미워하나보다.
이제 혼자가 지겹다. 혼자가 정말로 싫다. (비밀일기장에서)
이미정 (남구 도화3동)
나는 개똥벌레
나는 어려서부터 말수가 없었다. 그런 탓인지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같이 가는 현경이가 유일한 친구였고 둘은 엇비슷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꽤 먼 거리였지만 대화가 없었다. 현경이란 친구는 남자지만 예쁘장하게 생겨 여자 친구들이 많았다. 그 원인은 친 누나들이 많다는 것이었을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동네친구들 하고는 멀어졌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말없이 얌전히 앉아있는 세 친구들을 잘 보아 주셨다. 집에 오는 길에 세 친구는 또 말이 없다. 확실히 친구란 소중하다 말없이 자란 나는 사회에서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말이 없다보니 주변 분위기가 그리 좋은 편은 못 되었다. 말 안한다고 뭐랄 사람은 없지만 집안 내력인걸 어쩌나. 나는 성격을 고치려 부단히 애를 썼지만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술자리를 같이 하는 친구, 내 속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 나와 필이 맞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형구 (부평구 부평1동)
친구야 힘내
얼마 전 영화 <친구>를 보면서 친구의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수백 명, 수천 명인데 그 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3년 전 어릴 때 한동네에서 스스럼없이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소연하듯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사정이 너무 딱해 마이너스통장에서 돈을 빼 5백만원을 빌려줬다. 친구는 한 달 안에 갚아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친구는 급기야 빚에 몰려 살고 있던 집도 넘어가고 연락도 끊어졌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이 나에겐 빚으로 남아 이자만 갚으며 어렵게 지냈다.
그런데 작년 10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금씩이라도 갚아가겠다면서…. 그날 이후 다달이 친구는 가족의 생활비 조금만 남겨놓고 빌려간 돈을 보내오고 있다. 그렇게 하는 친구가 고마웠다. 좀더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친구야! 힘내.
강건우 (연수구 연수동)
뜻맞는 친구들
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한지 5년. 희준·한수 씨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신문에 난 봉사자 모집 광고를 보고 모이기 시작한 만남이 지금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느낄 정도로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매주 목요일 10시면 어김없이 모여 커피 한 잔을 시작으로 70명 분의 어르신들 식사준비를 위해 다듬고 지지고 볶고 끓이고 사랑의 점심을 준비한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서먹해 마찰도 있었고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이해하고 어려울 때에는 힘이 되어주며 위로하고 감싸 주면서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생일이 있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천원짜리 빵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함박웃음 짓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끈끈한 정을 느꼈다.
비록 만남은 보잘 것 없었지만 지금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친구와의 만남. 소중히 간직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
유기연 (연수구 옥련동)
친구와의 첫만남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면단위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된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첫 등교를 하게 되었다.
시내로 가는 버스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있던 때였는데 긴장한 탓인지 잠을 설치다가 늦잠을 자 버렸고 급기야 타야할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부랴부랴 시내 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학교에 도착을 하고 보니 지각은 안했지만 마음대로 앉게 되어 있는 교실에 남은 자리라고는 맨 앞자리 뿐이었다.
키가 큰 편이었던 나는 쭈삣주삣 맨 앞자리에 앉았고 조금 있으니 나보다도 더 늦게 도착한 키가 좀 작은 아이가 내 옆자리에 앉는다. 서로 낯설어하며 앉아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한 달간 그 자리에 앉으라고 하신다.
얼떨결에 짝이 된 친구 선희. 나와 선희는 키 차이는 좀 났지만 지각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사이로 남아 있다.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아직도 가끔씩 친구와 고등학교 때의 지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날 지각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친하게 되진 않았을 거라며….
한영옥 (남동구 남촌동)
친구야, 잘 있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네. 그래도 봄을 알리는 꽃의 여신은 나를 반기러 오겠지. 너 생각나니? 내가 임신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을 때 먼 길 마다않고 반여동에서 아구찜을 사 가지고 왔지. 처녀가 냄비 들고 오기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17년 전의 일인데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구나.
부산에서 남편의 발령으로 인천으로 온지도 어느덧 4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처음 인천으로 오던 날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무섭기도 하고 겁나기도 했던 나에게 서울로 시집와서 살고 있는 넌 큰 힘이 되어 주었지. 네가 있어 외롭지만은 않았단다.
친구야! 넌 내가 얼마전 부친상을 당하고 슬퍼할 때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한 걸음에 달려와 날 위로해줬지.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인연들이 있겠지만 너와 나는 대학 때 만나서 지금까지 변함없는 우정으로 서로에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지. 너 또한 나로 인해 행복해지면 좋겠단다.
친구야! 40이 넘은 나이에 대학편입해서 공부하는 너 정말 대단해. 힘들지? 복지관 실습은 무사히 마쳤는지 모르겠구나. 너 실습 마치면 한번 만나자꾸나 내가 맛있는 점심살께. 잘 지내고 만나는 날까지 몸 건강해라. 그럼 안녕!
우성순 (남동구 간석1동)
친구란!
친구란!
기대되고 설레게 하는
‘하트’예요.
왜냐면 늘 새로운 면을
찾을 수가 있어서
친구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거울’이예요.
왜냐면 늘 비밀 없이 터놓고 대화하니까.
친구란!
물과 같은 존재예요.
왜냐면 물 없이는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으니까.
친구란!
어려움에 처하면
알 수 있어요.
왜냐면 진정한 친구는
나의 두 손을
꼭 잡아 주거든요.
친구란 말은
정말 좋아요.
서로가 서로의 소중함을 알 때
내 마음도 부자가 되지
않을까요?
박은솔 (제물포여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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