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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실려온 도공의 숨결

2005-05-01 2005년 5월호
문성환(박문초 4학년)이와 연지웅(같은학교 4학년)이는 친한 친구다. 자연스럽게 엄마끼리도 흉허물이 없는 사이가 됐다. 성환이는 프로바둑기사가 꿈이다. 인터넷 바둑 3단 실력이며 지난 3월엔 전국대회 4학년부 3위를 차지했다. 호기심이 많은 지운이와 동생 지민이는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가방에 있는 게임기에 욕심이 갔지만, 오늘은 ‘타임캡슐’ 뚜껑을 열어 역사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거친 손마디 느껴지는 곳
작은 바람에도 날아갈 양으로 잎사귀를 흔드는 봄은 하루가 다르게 꽃들이 피어나고, 푸르러지고, 향기가 가득하다. 녹청자 도요지 가마터는 따스한 봄볕을 받아 푸른 풀밭이 되었다. 작은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아크릴판 지붕은 온실과 같이 열을 흡수하고 습한 기운을 간직해 가마터를 유달리 훈훈하게 덥혀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땅바닥엔 잎자루가 넓어 서로 싸안고 피어난 질경이들과 보라색 깽깽이풀꽃이 질펀했고 가장자리엔 쑥 향이 물씬 퍼져있다.
옛 도공들이 흙 반죽을 하고 그릇을 빚던 곳, 일주일 내지는 열흘씩 활활 장작개비가 타오르던 가마터였다는 것, 지금은 빈터에 잡풀들만이 땅의 고마움을 아는 듯하다. 저 바깥 에덴동산과 같은 너른 잔디밭에서 전속력을 다해 날아오는 흰 공들의 위력에 역사는 앉은키를 한껏 낮추고 조용히 옛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녹청자 도요지는 서구 경서동의 한 골프장 안에 자리하고 있다. 탐방일행은 공을 피하느라 종종걸음을 치며 눈치를 보고 다녔는데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지가 이런 곳에 있다니…’ 탐방에 참여한 엄마 유영소(36) 씨와 김희은(34) 씨는 속상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설마, 이곳이… 예전에 이곳 클럽에 온 적 있는데 이곳이 문화재인 줄 몰랐어요. 그때는 ‘왠 사람들이 골프장안으로 들어와서 위험하게 왔다 갔다 하나?’ 했어요.”
김희은 씨는 학창시절 박물관 배낭여행을 다닐 정도로 문화재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우리 질그릇을 좋아해서 결혼 혼수품도 가마터에 가서 직접 골랐다고. “상차림을 할 때, 김치는 꼭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내놓아요. 옹기가 주는 차가운 질감, 투박한 그릇의 인정미가 좋지요.” 플라스틱 김치 통이 아닌 항아리에서 꺼내는 김치는 아삭아삭 입맛을 돌게 만들뿐더러 후덕한 아낙의 치마폭처럼 풍요롭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청자발생의 근원
“여기가 녹청자 도요지란다. 그런데 도요지가 뭘까?” 이경희(45) 문화유산 해설사가 묻자 막내 지민의 볼에 불룩한 바람이 차 올라왔다. 영 모르는 기색이다. “하찮은 웅덩이처럼 보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돼 1965년부터 1966년 5월까지 4차에 걸쳐 발굴 조사한 유적으로 10~11세기의 고려시대 녹청자 가마터이지.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몇 안 되는 청자가마터 중의 하나고 우리나라 청자 발생의 근원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가마 유적이란다.”
발굴된 기종은 대접, 완접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자배기, 반구장 경병 항아리가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에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출토품의 모두가 문양이 없고, 유약을 긁어 장식을 시도한 흔적이 있다. 유약의 빛깔은 녹갈색과 암록색으로 불투명하고 광택이 없으며, 표면에 반점 같은 것이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부유층보다는 고려시대 전기에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서민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곳은 토기에서 자기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에서 생산된 녹청자를 생산한 곳이다. 이 도요지에서 생산된 사기그릇은 배를 이용해 전국 각지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5~6기의 가마와 사기장인의 집터 등이 더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경희 해설사는 전해 내려오는 구전을 들려준다.
“옛날 어느 상인이 이곳에서 사기그릇을 사서 배에 싣고 가려고 했는데 날이 어두워져 부득이 닻을 내리고 배위에서 하룻밤을 쉬고 가기로 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해서 살펴보니 글쎄 수렁 위에 닻을 내렸지 뭐예요. 배는 점점 가라앉았고 선원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를 요청했대요. 다행히도 뭍에서 밧줄을 던져주어 그 줄에 의지해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는군요. 하지만 배는 계속 가라앉아 형체를 찾을 수 없이 파묻혀 버렸대요. 배에 실었던 물건과 자기들도 건지지 못했다고 하네요. 이후부터 마을에는 수렁에 빠진 사기배 얘기가 전해오고 있지요.”
“어머! 그럼 바닷속에 골동품이 잠자고 있겠네요?” 지웅이 엄마가 묻자 해설사는 “그렇지 않아도 전남 신안군처럼 해저유물 발굴 작업을 하자는 여론이 있기도 해요.” 한다.
이 가마에서 주목되는 것은 완만하게 경사진 요상 표면에 흙으로 만든 원형의 도지미(개떡)를 배열하고 있는 특수한 양식이다. 도지미란 자기를 굽기 전에 그릇의 굽이 직접 요상에 닿지 않도록 마련한 굽 받침을 말하는 것. 굽 받침은 모양이 마치 말굽 모양으로 앞쪽이 두텁고 뒤쪽은 얇게 빗어서 경사진 요상위에 두꺼운 쪽을 아래편으로 놓아 그릇이 평형으로 놓이도록 되어 있다.
당시 이러한 양식의 도요지가 일본에서만 발견되어 일본은 독자적인 것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가 발굴되어 우리나라의 도요기술이 일본에 전파되었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2도의 경사면에 만들어진 이 가마는 길이 7.3m, 폭 1.05m, 봉통(아궁이) 폭 1.2m로 보기 드문 소규모 가마이다. 녹청자란 거친 태토(자기를 만드는 흙에 모래 등 이물질이 섞여 있음) 위에 녹갈색 유약을 발라 구운 자기로서 녹갈색 색상을 띄고 있는데, 구운 후 기공이 많이 생기는 등 유면이 고르지 못한 조질의 자기를 말한다.
문화재 탐방은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도 재미있어 한다. 안내표지판과 소책자가 전하지 못하는 그 뒷얘기들을 해설사는 마당에 널부러진 자기의 파편을 주워 담듯 천천히 들려주었다.
“경서동 원주민들은 이 일대를 깊이 파보면 문화적인 가치가있다고들 해요. 이미 개인 사유지가 되어버려서 손을 못 대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이 동네 어르신들은 간혹 사료관을 찾아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와 아련한 추측을 털어놓고 가시지요. 옛날에는 산을 넘어야 동리를 가는데 숯쟁이들이 모여 살았고 숯가마가 있었다고. 그래서 숯 골 어딘가 파보면 이곳 전시품 이상으로 많이 있을 거라고…. 증명할 길은 없지만 아쉬워서 찾아옵니다.”
일행들도 시나브로 역사가 없어지는 현실이 아쉬웠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위대하고 큰 흔적들만 역사의 발자취로 획을 그을게 아니라 적게는 아름아름 없어지는 작은 역사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활활 타오르던 장작 불꽃이 시들고 열이 내리면 옹기가 태어난다. 갓 구워낸 항아리처럼 일행들은 한 끼 밥보다도 유용한 질그릇의 희망을 가마 안에 한 가득 구워내고 싶어 했다.

 

글 _ 조은숙 (부평사람들 기자·eyagi9090@yahoo.co.kr)
사진 _ 김성환 (자유사진가·koin1@incheon.go.kr)
 


경서동 녹청자도요지 사료관
도요지 인근에는 경서동 녹청자도요지 사료관이 있다. 사료관 1층에 들어서면 먼저 녹청자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밀랍인형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흙을 캐고 물로 개어서 자기를 빚는 모습을 디오라마 기법을 이용해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도자기의 변천과정과 역사 등을 설명한 패널이 전시돼 있고 한쪽 구석에는 이 부근에서 발굴된 녹청자와 그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녹청자를 제대로 보려면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을 찾아야 하는 점이 좀 아쉽다. 인천시립박물관은 대접을 비롯해 완접시, 자배기, 항아리 등 경서동에서 출토된 녹청자 2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층이 감상공간이라면 2층은 실습공간이다. 2층에는 방문객들이 직접 도자기를 빚을 수 있는 작은 공방이 있다. 흙덩이를 물레 위에 놓고 빙빙 돌려 자신들이 원하는 자기를 만들어 보고 흙가래성형, 토우만들기, 손도장찍기, 핸드페인팅, 악세서리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563-4341, 560-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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