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색色 홀리다
색色 홀리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를 알리는 불꽃이 어두운 하늘을 밝게 물들인다. 그 빛은 하늘에 닿고 다시 땅에 내려앉는다. 형형색색의 불꽃은 서서히 몸을 낮추며 산과 들로 흩어진다. 세월을 허리에 두른 고목뿐만 아니라 아직 세상모르는 여린 가지도 ‘가을’ 이라는 이름으로 단풍 옷을 곱게 입는다.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 참석한 국가 중에는 ‘가을’이 없는 나라도 적지 않다. 그들, 제대로 왔다. 인천 곳곳에 깊이 내려앉은 또 다른 ‘불꽃’을 원 없이 보게 될 것이다. 그 황홀함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글·사진 김민영 자유기고가
강화북문
가을 빛에 눈멀어 길을 잃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 누군가와 동행하되 고요하고 싶다. 눈을 휘감는 고즈넉함에 취해 일상을 놓아버리는 강화 북문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이곳의 단풍은 이미 절경으로 입소문이 났다. 화려하되 고요한 가을. 그 절경은 ‘진송루’에서부터 시작이다.
아담한 성문 양 옆에는 단풍나무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길을 새로 잡아드는 고개에 세워진 누각과 성벽은 인간 세상과의 선을 또렷이 그어놓은 듯 적막하다. 진송루는 색의 경계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붉게 물든 단풍을 뒤로하고 그 문을 지나면 노오란 세상이 펼쳐진다. 강화나들길 제1코스이기도 한 이곳은 강화 역사만큼 나이든 거목들이 줄지어 오솔길을 만들었다. 오솔길의 폭은 좁다. 깊은 가을이면 이 길목에 황금빛 융단이 깔린다. 노오란 불꽃이 가을바람에 나부끼며 내려앉는다. 그 길 위에 선 이의 등이 작아짐에도 슬프지 않은 것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일 게다.
월미산
바다와 색깔을 합치다
50여년 간 닫혀 있던 월미산이 2001년에 봉인 해제 됐다. 반세기 동안 숲은 스스로 크며 우람한 품을 만들었다. 군사지역으로 발이 묶였던 월미산은 그만큼 서해바다를 깊이 바라 볼 수 있는 원시림 지역이다. 시민들에게 활짝 열리면서 묵묵히 잠자며 뿌리를 단단히 내린 산이 기지개를 폈다.
사시사철이 아름다운 월미산은 누구나 오르고 싶은 산이 됐다. 전국에서 산책하기 좋은 산 ‘탑10’으로 선정될 만큼 그 용모는 수려하고 빼어나다. 무엇보다 입은 옷 그대로 구두를 신고 오를 수 있어 더 값지다. 순환산책로에는 우직하게 산을 지탱하고 있는 거목과 다양하고 희귀한 야생화로 가득하다. 서해를 물들인 석양이 깊어지면 월미산의 단풍은 더 깊은 색을 낸다. 달팽이가 돌듯 동글동글 곡선을 따라 올라도, 나무계단을 따라 직선으로 올라도 월미산을 덮은 화려한 색은 고스란히 그 산에 담겨있다. 월미산 정상에 서면 바다도시 인천의 현재가 고스란히 펼쳐진다. 항구와 도시, 섬과 바다 그리고 시간. 월미산을 지키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만큼 가을색은 다채롭다.
소래습지생태공원
흑백 추색이 더 화려하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의 가을은 흑백이다. 그곳은 절제와 고요. 예전부터 고요했던 것 같은 착각 때문인가, 염부가 굵은 땀을 흐린 한여름이 이곳에 있었다는 기억이 희미하다. 1934년부터 소금을 생산했고 1996년 폐염전이 되었다.
소금을 영글게 한 자리는 이제 바닥을 보인다. 시간이 멈춘 듯 걸음은 느리다. 갓길에 핀 코스모스를 따라 줄지어 선 소금창고. 한여름의 땀을 삼키고 입술을 굳게 닫은 그곳이 비밀스럽다. 그 옆으로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소금창고 몇 개가 안쓰럽게 서 있다. 기둥은 알몸을 보이듯 엉성하게 서로 부둥켜안고 세월 탓을 한다. 낡았지만 시간을 품고 있어 멋진 풍경을 연출하는 이곳은 출사족들의 단골 장소다. 소금배가 들어올 만큼 갯골도 깊었다. 지금은 갯골도 시간만큼 단단해졌다. 자전거로 달리는 속도만큼 가을은 이곳에서 재빠르게 깊어진다. 갯골을 따라 휘도는 바람도 흑백의 가을을 쓸쓸히 달린다.
송도센트럴파크
달빛 속 은빛 억새가 춤추다
스카이라인 송도국제도시 중심에는 녹색 양탄자가 길게 깔려 있다. 센트럴파크에는 9경이 있다. 인공수로를 달리는 수상택시, 서해로 넘어가는 진홍빛 석양, 세계 이웃들의 얼굴을 형상화한 지구촌 얼굴, 작은 초원의 꽃사슴, 아웃도어를 잠시 느낄 수 있는 바비큐장, 공원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누각 송하정의 달빛. 숨은 그림 찾듯 곳곳에 자리한 볼거리들이 센트럴파크의 사시사철을 멋스럽게 한다.
이 공원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메신저는 황금빛 억새다. 달빛도 차오르는 가을이면 더욱 은은한 은빛 물결이 일렁인다. 센트럴파크에 바람소리가 깊어지면 억새도 깊어진다. 연인들의 속삭임도 삼켜 버리는 억새밭은 데이트 장소로 인기다.
인천대공원
팔레트처럼 총천연색으로 물들다
가을이 오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유난히 인천대공원으로 향한다. 그곳에 오묘한 색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완연하게 보여주는 인천대공원은 단풍도 한 가지 색조가 아니다. 갈색으로 물드는 참나무류와 붉은색 단풍나무, 그리고 진초록의 잣나무들이 어우러져 마치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 같다. 흥분된 마음으로 관모산 정상에 올라서면 발아래는 단풍으로 물들어 아찔하다. 가는 길을 잡는 색의 유혹으로 자꾸 시간이 늘어진다.
이곳은 한번 들어오면 빠져 나가기 쉽지 않은 마법의 공간이다. 긴 호흡으로 공원을 거닐며 만나는 호수에서 잠시 여유를 찾는다. 깊어지는 가을을 따라 수목원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야생화와 거목에 숨통이 트인다. ‘시크릿 가든’인 이곳은 인공적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환경에 찌든 도시민에게 새로운 힘과 재충전의 활력을 선사한다. 질 좋은 순도 100%의 산소가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계양산
가을 끝자락 잡으며 산에 오르다
인천에는 설악산, 지리산 같은 웅장한 산이 없다. 크고 높은 산이 없다고 깊은 가을이 없는 게 아니다. 인천의 북쪽에 자리 잡은 계양산은 부평벌과 김포평야 사이에 우뚝 솟은 산이다. 벌판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실제 높이 보다 높아 보이고 그 만큼 추색(秋色)도 깊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도시민에게는 깊어가는 가을도, 먼 산에서 날아오는 단풍 소식도 그저 딴 나라 이야기일 뿐. 그럴 때 해답은 ‘가벼운 트래킹’이다. 반나절의 시간만 내도 가을 풍광에 푹 젖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계양산이다.
등산로를 따라 곳곳에 가을 ‘눈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산마루에만 가을이 있는 게 아니다. 한동안 개발 문제로 관심을 끌었던 산 북쪽 사면에는 분위기 좋은 숲길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현대제철 주말농장 앞길부터 목상동 토속음식마을까지의 기다란 오솔길은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데다 굽은 길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운치를 더 해준다. 곳곳에 소나무 숲이 있어 돗자리 펴 놓고 솔향을 맡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적십자병원길
이름 모를 소녀를 만나다
산에 오르지 않고 몇 걸음 만에 닿을 수 있는 도심의 오솔길에서도 만추를 느낄 수 있다.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대면 바로 ‘그림’이 되는 연수구 적십자 병원과 대우1차 아파트 사잇길은 원래 벚꽃길로 유명하다. 이 벚꽃 가로수들이 가을에는 도심에선 보기 드물게 예쁜 풍경을 연출한다. 길은 배수지공원과 연결돼 산길 산책도 가능하고 쪽문을 통해 들어가면 병원 정원의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 병원은 원래 결핵요양소로서 1960,70년대 영화촬영 단골 장소로 꼽힐 만큼 목가적 풍광이 좋았던 곳이다. ‘이름 모를 소녀’ 등 우수에 찬 노래를 불렀던 김정호도 여기서 잠시 요양을 하며 이 풍광을 바라보며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만들었다.
- 첨부파일
-
- 다음글
- 우리 모두 승리자이자 챔피언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