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산성 따라 걷다보니… 온몸에 가을 빛
바람은 계절을 가장 정직하게 말해준다. 전등사 남문 주차장에서 매표소에 이르는 짧은 길목엔 그 바람에 철모르고 나뒹구는 나뭇잎이 가을냄새를 풍기고 있다. 종해루(宗海樓)라 쓰여진 문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왼쪽으로 꺾어져야 돌성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삼랑성, 혹은 정족산성(사적 130호)이라 불리는 이 성은 정족산의 세 봉우리를 따라 단군이 부우, 부로, 부여 등 세 아들을 시켜 돌로 쌓았다는 성이다. 산성을 따라 정족산(鼎足山)을 넘어보기로 한다. 마니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길상면 온수리에 이르러 다시 세 봉우리를 만든 정족산은 산의 생김새가 마치 세 발 달린 가마솥 같다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단군 시절에 쌓은 성이라…가늠하기 힘든 세월의 때가 붙어 있는 돌덩어리들은 서로 견고하게 버티어주며 성의 모양을 유지시키고 있다. 제법 가파른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탄력이 붙으면 발걸음은 금세 가벼워진다. 앞서간 이의 뒤꿈치만 쳐다보며 걷기를 7∼8분 여, 오르막이 평지로 바뀌는가 싶더니 사람 사는 동네가 어느새 발 아래에 있다. 어느 해 벼락에 최후를 마쳤는지 비장하게 서있는 소나무 잔해에 다다르면 한번쯤 쉼표를 찍어도 좋다.
그리고 다시 본격적인 오르막. 허리 춤 정도 되는 높이로 쌓아올린 산성을 옆구리에 끼고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바다를 보며 걷다보면 꽤 넓은 너럭바위가 나온다. 비로소 세 개의 봉우리 중 첫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대여섯 발자국 더 나아가 소나무 뒤에 있는 바위를 딛고 서면 고구려 시대의 고승 아도화상이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전등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찰 경치를 고스란히 내려다볼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경내를 오가는 이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귀를 기울이면 풍경소리도 들릴 것처럼 가깝다.
빠르고 급해야 내리막답다. 첫 봉우리를 내려오는 일도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등 떠밀려가듯, 허겁지겁 걷기를 5분 여만에 다시 평평한 땅. 첫 봉우리에서 두 번째 봉우리로 이어지는 이 길은 햇빛 한 점 만나기 힘든 울창한 삼림욕장이다. 2∼300미터 남짓 잡초가 수북한 길을 걷고 나면 또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별다른 표시가 없지만, 정족산에서는 길 잃을 염려가 없다. 그저 돌성을 따라 돌면 된다. 두 번째 봉우리에도 어김없이 성의 흔적이 계속되고 있다. 이정표 삼아 그것을 보고 오르다보면 어느새 우리의 두 발은 산 정상을 딛고 선다.
산 속의 시간은 더디 흐르나보다. 꽤 오래 산을 탄 것 같지만, 정상에 올라 시계를 보니 산을 타기 시작한지 불과 30분쯤 지나있었다. 전등사 입구 가게에서 사온 음료수의 온도에 변함이 없을 만큼의 높이로 정족산(220m)은 서있다.
정상은 스무 평 남짓한 평평한 풀밭. 듬성듬성 박혀있는 큰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른 뒤 360도로 몸을 회전시키며 보면 먼바다부터 가까운 길상면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을 물이 서서히 들고 있는 나무, 자로 그린 듯 곧게 다듬어진 논과 수로, 잘 닦인 도로, 강화대교, 그리고 정족산의 맑은 물과 공기 덕에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는 장수촌이 된 온수리까지 이 산 꼭지점에서 만나는 강화는 참 잘생겼다.
정상에서 세 번째 봉우리로 가기 위해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완만한 길을 걷다 보면 언제 시작되었나 싶게 마지막 봉우리로 가는 오르막길에 들어서 있다. 이 봉우리의 끄트머리는 지금까지 옆에 거느리고 왔던 것과는 느낌이 다른, 요즘 새로 쌓은 돌성과 맞닿아 있다. 그 성은 비스듬한 사선을 그으며 전등사 동문까지 곧장 이어진다. 그러나 산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삼랑성 산행의 진정한 마침표는 전등사로 들어가 차가운 약수를 마시며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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