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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보며 생각하며

2001-05-16 2000년 6월호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때(1948년)는 국민소득이 50불을 맴돌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3학년 때는 6.25 동란까지 겪어야 했다.

어느 가정이나 경제난에 시달렸다. 어엿한 학용품 한 점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쓰레기장을 뒤졌다. 공기통으로 기어 들어가 교실 마루 밑을 훑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양손에 움켜쥐고는 기뻐 뛰었다. 그러기에 더욱 귀했나 보다. 다 쓴 공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의 것은 난리 통에 분실했지만 4학년 때부터 대학까지의 공책은 보물처럼 여겼다. 1951년부터니까 50년째 간수하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50권, 중학교 100권, 고등학교 128권에다 대학노트 11권 등 모두 289권이다. 낡고 보잘것없어 보이나 들추니 너무나도 귀한 자료였다.

초등학교 5학년(1952년)부터 제대로 된 공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질면에서도 1952년까지는 마분지 수준을 겨우 면한 상태였다. 하도 얇아 지우개를 사용할 때에는 마음 죄야 했다. 장수면에서 중학교 2학년(1955년)까지는 겉장을 포함해 10매와 12매 짜리로 볼품없었다.

고교 때(1957년) 나타난 대학노트 역시 16매에서 38매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표지가 제법 견고하면서 100매까지 갖춘 최고의 대학노트가 등장한 것은 37년전인 1963년쯤으로 예상된다. 중2(1955년)까지는 작은 32절지였으나 중3(1956년)부터는 정상크기의 공책이 선보였다.

필기구 사용 시대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중학교 시절(1954년-1956년)은 잉크에 펜촉을 애용했다. 부주의로 잉크병을 엎어 새하얀 교복을 더렵혔기에 어머니의 마음 고생을 시켜 드렸던 불효도 있게 한 필기 용구였다. 고등학생(1957년)이 되면서는 만년필을 쓰게 되어 어찌나 편안했던지 촉이 무디어지도록 써댔다. 대학까지 말이다. 하지만 필기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볼펜은 1964년까지도 쓰여지지 않았다.

아마도 만년필을 고집하다 늦지 않았나 생각된다. 더욱 관심을 끈 것은 초등5,6학년 때의 시간표에서였다. 자연과가 '잇과'로 체육이 '보건'으로 불리었고 도덕과와 실과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6학년 때의 수업이 토요일까지 6교시까지 꽉 차 있음을 보면서 입시에 시달렸던 추억을 아련히 떠올렸다.

그밖에도 셈본, 과학, 사회생활이 산수와 잇과, 사회와 함께 쓰이고 있어 교과명의 과도기가 아니었나를 예측했다. 또한 초등 6학년 교과시간 배당에서 주당 사회과가 7시간에 보건(체육)이 4시간이나 배정되어 있어 사회과에 도덕과가 통합되었나를 짐작하면서 보건 중시의 전시체제임을 느꼈다.

289권의 공책! 우리 교육의 변천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필적도 한눈에 볼 수 있어 더욱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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