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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의 하루
가난과 역경속에 허덕이며 살아온 터전이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반겨주는 넉넉한 바다와 물려받은 고깃배가 있기에 내일의 꿈을 안고 삼용이는 오늘도 출어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운 포구의 아침, 새벽잠에서 깨어난 낯익은 갈매기가 배웅을 하면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포구에 메아리친다.
선창가, 고기 많이 잡고 무사히 돌아오라며 마을 어귀에서 뱃머리 주변까지 손을 흔들며 늘어 서있는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는 남모르게 주고받는 이쁜이와 삼용이의 정겨운 눈인사도 어김없이 끼어 있다. '고기 많이 잡아 가지고 무사히 돌아오라'고, '서울 갈 생각하지 말고 며칠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때묻은 옷을 입고 얼굴은 온통 숯처럼 검어도 '어기 영차' 그물을 당기는 삼용이의 무쇠같은 억센 팔뚝엔 내일의 꿈이 움튼다.
이쁜이는 섬섬옥수 고운 손이 굴 껍질 소라껍질에 상처 난 채로 거칠게 변해 갈지라도 정든 바다와 갈매기가 곁에 있고 속마음 알아주는 삼용이가 있기에 오늘도 쉬지 않고 바닷가로 나간다. 그까짓 것, 옷 잘 입고 미끈하고 말 잘하는 서울 총각들보다 누가 뭐래도 건강하고 인정 많고 믿음직스러운 삼용이만 하겠는가. 포구의 뱃사람들, 낡고 작은 고깃배와 조상의 혼백이 잠겨 있는 정든 바다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손바닥에 바윗돌 같은 굳은 살이 박히도록 노를 젖고 그물을 당기며 거친 파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하늘이 내려주신 천직으로 삼고 살다가 또 그렇게 숨져가지 않았던가.
살아 생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고깃배 한 척을 소유해보겠다던 그 소망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가슴에 맺혔던 한을 마지막 임종 때까지도 차마 잊지 못해 유언으로 남기던 소박한 포구의 뱃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온종일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바위 틈새에서 굴을 따고 돌아오는 이쁜이 모습, 얼굴은 소녀인데 손은 할머니를 닮았어라. 잡초가 돋아난 초가지붕 위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끼 낀 채로 반 넘게 허물어진 돌담 사이로 다람쥐가 숨바꼭질하는 정든 집을 찾아간다.
어촌의 짧은 해는 어느덧 어둠이 깔려 제대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는데도 용케도 주인을 찾아내어 꼬리치며 골목까지 마중 나오는 강아지를 가슴에 안아보는 이쁜이의 양 볼엔 보조개 가득 행복과 사랑이 고인다.
내일은 먼바다로 고기잡이 떠난 삼용이가 돌아오는 날이다. 이쁜이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마련했다는 희미한 앉은뱅이 경대 앞에서 보물처럼 간직해두었던 화장품을 조금씩 발라도 보면서 얼굴을 붉힌다. 고요가 찾아오는 포구의 밤. 저 멀리, 고깃배의 희미한 등불이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속없이 뱃고동의 외마디 소리가 잠이 몰려오는 포구의 적막을 흔든다.
북두칠성이 곤두박질 치는 깊은 밤에 삼용이가 보고파 끝내 단잠을 못 이루는 이쁜이의 조바심 나는 마음을 달랠길 없어 비릿하고 찝찔한 갯벌냄새가 풍기는 포구 선창가에서 양팔을 한껏 벌려 바닷바람을 하나가득 끌어안고 수많은 별들을 하나둘 헤아려도 본다.
포구(浦口)는 밤이 깊어 잠이 든 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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