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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보다 더 싱싱할 순 없다
새벽 4시, 삼산농산물도매시장의 첫 경매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긴장감이 감도는 경매장. 경매 전에 산지에서 막 올라온 야채를 미리 살피려는 ‘중도매인’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이윽고 익숙한 모습의 경매사가 등장하고,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톤 높은 목소리로 첫 경매를 시작하는 순간, 시장은 모든 세상의 새벽을 깬다.
“허어--어--%8#9$%&.”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스쳐가듯 올렸다 내리는 손짓도 그러하려니와 잠깐 잠깐 경매가 누군가에게 낙찰되었다는 ‘도리’라는 말소리가 귀에 들어 올 뿐. 익숙한 모습으로 경매에 임하고 있는 중도매인들과 경매사들이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같다.
‘야채동’ 건물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벽경매는 ‘무·배추동’에서 ‘과일동’으로 이어지며 3∼4시간 동안 진한 삶의 모습을 연출해 낸다. 경매의 절정은 새벽 4시부터 5시까지의 야채동에서 이루어진다. 과일동의 경매는 다소 늦어 5시부터 시작된다.
과일동에서 또 한번의 ‘치열한’, 하지만 익숙한 모습의 경매가 이어지고 질 좋은 과일을 적정한 가격에 낙찰 받기 위한 숨가뿐 이어달리기가 연출되고 나면 시장은 여느 재래시장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새벽시장의 또 다른 연출자들은 소규모의 야채과일상들과 슈퍼를 운영하는 소매상들, 그리고 값이 싸다는 말을 듣고 먼길을 마다않고 무·배추를 사기 위해 오는 음식점 사장님들이다. 가지고 온 차마다 무와 배추를 가득 담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재촉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계양구청 앞에서 쭈꾸미와 꼼장어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황하진 씨와 그의 아내는 가지고온 차에 배추 150포기를 실어갔다.
야외에 쌓아 놓은 야채들이 얼지 않도록 상인들은 부지런히 야채주위에 난로를 피워대고 출출한 속을 채우기 위해 난로 위에 얹어놓은 냄비에 라면을 끓인다. 보글보글 라면끓는 소리가 강해지면, 난로 주변에는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고 잠깐이지만 이야기꽃도 피어난다.
현재 삼산농산물시장에는 ‘경인농산’, ‘부평농산’, ‘원예농업협동조합’등 3개 유통회사가 입주해 있다. 이 3개 회사에 30명 가량의 전문경매사들이 소속되어있으며, 이들의 손에서 삼산농산물시장의 모든 농산물이 유통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현재 부평농산에서 영업부 차장을 맡고 있는 김종팔(43)씨는 삼산농산물시장이 문을 열 때부터 지금 까지 2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있다. 그는 여기서 근무하기 전에 구월동농산물시장에서 오랜 동안 같은 계통의 일을 한 베테랑이다.
“유통 쪽에서 22년을 보냈어요. 숭의동, 구월동을 거쳐 여기까지 온거죠.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농산물들이 소포장화 되어가고 있고 또 도매시장의 기능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거죠.”
대규모 할인매장과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사실상 도매시장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도매시장이 살아나가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란다. “할인매장에서 파는 가격의 반 가격이면 살 수 있어요. 어떤 것은 10분의 1가격에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매시장이지요.”
삼산농산물시장은 대지 3만2천여 평에 주차장이 1천5백 평 규모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관리사무소(소장 강성원)에는 시설담당, 관리담당, 유통담당, 시장담당의 조직에 19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새벽 2시부터 나와 취재를 도와준 정충호 씨는 관리사무소에서 시장 쪽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상인들의 어려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물 경제의 척도가 시장이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이 IMF이후에 가장 소비가 위축되어 작년 하반기부터 시장의 매출이 많이 줄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 인생이 고달파지거든 시장에 가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시장 중에서도 새벽시장을 가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먼동이 트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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